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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보물 캐기

돌덩어리냐, 보물이냐는 태도에 달렸다.

by 윤슬

아무리 일이 많아도 밤 아홉 시에는 퇴근해야지. 다짐했지만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제도 밤 열 시를 좀 넘겨서 퇴근했다. 매일 하기로 다짐한 스쿼트 50개를 하고, 씻고,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고, 플래너를 적고 나니 어느덧 새벽 1시였다. 너무 늦게 자는데, 내일 안 피곤하려나. 약간의 걱정을 담고 잠자리에 들었다.


역시나,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잠결과 현실 사이 어딘가, 몽롱하게 헤매다 결국 알람을 끄고 잠을 택했다. 불편한 마음으로 뒤척이다 일어나니 7시 10분.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1시간이 늦었다. 모닝페이지를 쓸까, 브런치 글을 발행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모닝페이지를 택했다. 요즘처럼 잔뜩 지친 날들에는 모닝페이지로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출근해 모니터를 켜기가 망설여진다. 걱정과 불안이 뒤엉킨 마음 때문에.


오늘의 모닝페이지를 적다가 꼭 마음에 새기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출장길 버스 안에서 아이패드를 켜 한 자 한 자 기록해 본다.




비몽사몽 두서없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끄집어내는 모닝페이지를 펴는데 한숨이 퍽, 하고 튀어나왔다. 논리적으로 일을 분석해도 타협할 수 없는 마감기한의 일로 절대적인 시간이 빠듯하고, 연일 이어진 야근으로 인해 체력도 바닥이고.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하루가 시작됐구나. 머릿속에 튀어 오르는 불만과 짜증, 그리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다짐 등 머릿속에 이리저리 떠도는 생각들을 하나둘 붙잡아 일기장 위에 눌러써 내려갔다.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내리다가 멈칫하는 생각이 있었다. 태도에 관한 생각이었다.


시작은 업무 태도였다. 어떻게 일을 대해야 할까. 어떤 태도로 업무를 처리해야 할까. 처음 시작은 3팀 팀장님이 떠올랐다. 그 팀에 뉴스에도 나오고, 감사원 감사도 받을 만큼 꽤나 복잡하고 심각한 일이 껴있었다. 그 일 때문에 부서에 2년 있는 동안 과장님이 2번 바뀌고, 3팀 팀장님이 3번 바뀌고, 담당자가 3번 바뀌었다. 다들 버거워하고 힘들어하는 일이 분명한데, 3팀 팀장님은 언제나 유쾌를 잃지 않으셨다. 언제나 가벼운 발걸음, 입가에 반쯤 걸려있는 미소, 눈에 가득한 장난기. 자타공인 우리 과 ‘개그캐’ 담당이었다. 그 팀 직원이 안 되는 걸 해달라는 민원인에게 전화로 한참을 시달리고 한숨을 퍽 내쉬자 팀장님이 한 마디 했다. “00아, 그럴 땐 이렇게 말하는 거야. 따라 해봐. 선생님 제 공무원 모가지를 날리려고 그러세요?” 글로는 그 유쾌한 어투가 다 담기지 않아 아쉽지만, 무척이나 유쾌했다. 조용하고 심각했던 사무실이 웃음바다가 될 정도로. 3팀 팀장님은 어떤 상황에서든 유쾌함을 잃지 않으셨다. 그 유쾌함이 어려운 문제 상황을 이겨낼 만한 힘이었다. 일을 대하는 태도는 3팀 팀장님처럼.


그러고 나선 우리 팀 팀장님이 떠올랐다. 우리 팀 팀장님은 여유가 넘치셨다. 어떤 긴급한 상황이 떨어져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셨다. 지역에 꽤나 큰 사회재난이 일어난 후, 이틀에 걸러 한 개씩 커다란 폭탄이 떨어졌다. 가령 저번 주 금요일, 과장님이 상부에 보고를 들어갔다가 여섯 시 삼십 분에 돌아오셔서 당장 다음 주 월요일에 중요한 인사들이 모인 협의체 회의를 열라고 하셨다. 당황하기도, 성질이 날 법도 하지만 팀장님은 그 회의를 열어야 하는 이유가 타당하니 별다른 동요 없이 일을 하나둘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보통 신경이 날카로워 부하직원들에게 그 감정의 스파크가 튈 법도 하지만, 팀장님은 그런 게 없으셨다. 평온하지만 신속하게. 평정심이란 저런 것일까, 팀장님을 통해 배웠다. 해야 하는 일이라면 업무에 감정을 섞지 않을 것. 그저 현재 상황이 어떻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파악한 후 그 일을 처리하는 것에만 집중할 것. 그러다 일에 구멍이 생겨도 개의치 않으셨다. 해결하면 되지. 이미 일어나 버린 걸 어떡해. 일을 처리하는 태도는 우리 팀 팀장님처럼.


이렇게 팀장님들의 태도를 하나씩 곱씹고 나니, 마치 직장이 눈앞에 펼쳐진 책 같았다. 책 제목도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직장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비법들을 담은 책. 요새 ’ 일 잘하는 사람들은 단순하게 일합니다 ‘라는 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 걸까. 팀장님들의 업무 태도도 책의 한 챕터 같았다.

일을 처리하는 능력,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이었다. 이에 대한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찾아 읽기도 하고,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관련된 강의를 듣기도 했다. 시간과 돈을 별도로 들인 채. 오늘의 인사이트를 얻고 나니, 직장이 또 한 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을 만난다. 각자의 강점도 약점도 각기 다르다. 주어진 인적 자원을 잘 활용해서 성과를 내는 사람, 기획할 때 아이디어 발생이 좋은 사람, 업무를 오류 없이 꼼꼼히 처리하는 걸 잘하는 사람,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 일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 그 사람들의 장점들을 캐치하고 내 업무에 적용해 보는 건 어떨까. 반대로 약점들도 눈에 띈다. 말로 천냥 빚을 지는 사람, 의사소통을 할 때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사람, 한 번 할 일을 두세 번 하는 사람, 업무에 잔실수가 잦은 사람. 이 사람들을 반면교사 삼으면 어떨까. 업무에만 코 박고 일하지 말고 직장을 좀 더 크게 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속에 어떤 배움들이 숨겨있을까. 그걸 하나씩 기록해 볼까. 어찌 보면 직장생활 꿀팁 백과사전이 될 수도 있고, 그 직장 사람들이 창작 속 하나의 소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치 광산처럼. 직장은 배움이라는 원석들이 숨겨져 있는 광산이었다. 원석을 캐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저 실업과 무급이라는 세상 풍파를 피할 수 있는 돌덩어리 피난처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거기에 숨겨져 있는 원석을 캐낸다면 직장은 보물창고가 될 터였다. 그리고 그 원석을 어떻게 제련하느냐에 따라 나에게 어마무시한 가치를 가져다줄 장소였다. 그저 돌덩어리 동굴처럼 대할 것이냐, 아니면 온갖 보물이 묻혀있는 광산처럼 대할 것이냐. 그건 어떤 직장을 다니냐가 아니라 직장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나의 관점에 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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