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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12. 2024

행복해질 거라고 말해주세요. 제발요.

2024년 11월 11일-행복하고 싶어요

순간의 소중함은 그것이 추억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가 없다 -닥터 수스


에어컨 없이는 버틸 수 없었던 여름이 지나가고, 차가워진 공기가 만들어낸 채도 낮은 노란빛이 온 거리를 덮어내는 가을이 되었다. 출근하다 잠시 뒤돌아본 거리는 황금빛 햇살에 뒤덮여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온 세상이 금빛이었다.


출근길에 올라 버스를 타고 멍하니 단풍을 바라본다. 고개를 숙인 채 끝부터 메말라가는 잎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자신의 끝을 아는 것 언젠가 떨어져 나갈 잎사귀들이 떠올랐다. 봄부터 붙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또 그 열매를 떨구기까지 그 시간을 함께한 존재가 떠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라디오에서 데이식스의 HAPPY가 흘러나왔다. 경쾌한 비트와 멜로디에 무겁지 않은 보컬이 어우러진 노래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마법은 꽤나 효과적이었다. 


'So help me 주저앉고 있어요 눈물 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제발요 Tell me it's okay to be happy'


힘들지만 희망을 바라보는 그런 밝은 노래인 줄만 알았기에 가사를 듣는 순간 얼어버렸다. 행복에 대한 염원을 넘어 간절함과 지금에 대한 울부짖음. 밝음 안에 담긴 가슴 아픈 말들이 남 얘기 같지 않게 들리기 시작했다.


7년 전, 누군가 물어왔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 같아?”

 ”행복하려고요.”

 “행복한 게 어떤 거야? 행복한 인생이란 거 말이야.”

 잘 모르겠어요. 근데 저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만든 집에서 가족들이 오손도손 살고 싶어요. 그러면 좀 괜찮지 않을까요?”


너무나 막연한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은 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이 너무 힘들다 보니 뭐라도 위안이 될만한 존재를 꿈꾸지 않았을까. 행복한 가정에 대한 갈망이 컸던 나는 자식을 낳게 되면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 아이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늘 행복하다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이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물밀듯 밀려왔다.


내가 행복하면 엄마가 행복하고 그 반대면 힘들어진다는 공식. 엄마를 사랑하기에 내 행복을 엄마를 위해 바치는 것.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에 엄마와 나는 올라타 열심히 돌았던 것 같다.


엄마가 행복할 수 있도록 괜찮은 척을 했고, 꽤나 그럴싸한 결과물을 가지고 갔다. 매번 전화는 똑같은 말로 끝이 났다. `응, 나 괜찮아.' 20대 후반에 접어들며 깨닫게 된 것은 하나였다. 둘은 서로에게 종속될 수 없으며 독립된 존재여야만 한다는 것을. 그래야 너의 행복이 내 행복이 된다는 그 명제가 참이 될 수 있었다.


행복하다는 것. 무언가. 있어야만 행복할 것이란 착각 속에 살았던 20대. 무언가 있지 않아도 내가 나로 존재해야만 행복하다는 것을 이젠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돌고 도는 인생은 수많은 사건을 모두에게 던진다. 지금 당장 먹고살기 힘든 순간, 외로운 순간, 배신과 상처로 물든 순간, 목표를 잃은 순간 등. 행복감도 언젠가 고통으로 물들기도 고통은 다시 희망을 그리고 해소되어 가며 다시 행복감을 얻는 것, 이것이 이치이다. 내가 가져보았기에 상실하는 것.


저 지는 나무도 고통스러운 겨울을 이겨내 희망찬 봄을 맞고 다시 인내해야 하는 여름의 끝, 자식을 낳고 절정에 치달았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쏟아내고 난 후 자신의 할 바를 다한 나무의 상실감, 성취감, 후련함, 행복감을 느껴본다.


그래, 방금 전 했던 내 생각, 열매를 자신의 잎을 떨구는 것이 서글프다는 것은 미련한 인간이 하는 우견일 뿐이다. 나무의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지막까지 해낼 뿐인 것을.


그렇기에 매 순간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는 당연한 순간일 뿐이다. 내가 지금 겪는 암흑도 언젠가는 지나가 봄날이 오고 또 결실을 해내겠지.


순간은 소중하다. 또 그 순간을 견뎌내는 나 역시 너무나 소중하다. 행복감을 느끼진 못하지만, 내 하루가 소중하기에 나는 행복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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