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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14. 2024

거 참 양보 좀 하고 삽시다

2024년 11월 13일-신이 엄마를 만든 이유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


인간이란 회색빛 생명체는 흑도 백도 아닌 그 어딘가 오묘한 빛을 내며 살아간다. 선함을 추구하지만 어디까지나 하늘에 닿을 수 없는 인간의 결핍이 만들어낸 갈망은 악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다시 신을 원망했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기 위해 원망을 쏟아낼 부두인형을 세워두었다. 신은 그렇게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밑바닥까지 내어놓았다. 이제 인간에겐 두 가지의 경우의 수가 남게 되었다. 첫째는 잘되어 그를 밟고 올라서 거고 그를 떠나가는 것. 둘째는 계속해서 같은 위치에 있는 것.


인생이 내 뜻대로 풀릴 때는 찾지 않던 이를 다시 찾게 되는 때가 오면 얼마나 교만한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는 그가 나를 안아주는 그 손길에 눈을 감고 조용히 울음을 토해낸다.


어제는 퇴근길에 버스를 탔다. 60대의 아주머니 안쪽으로 자리가 있어 "혹시 제가 짐도 많고 다리가 안 좋아서 일어나 주실 수 있을까요"라며 부탁을 했다. 대답은 "그냥 들어가요."라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말투와 눈빛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바로 다른 자리가 나서 앉을 수 있었다.


화가 났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어서 당황스러운 화였다. 머릿속에는 '양보, 분노, 악함'이 떠다녔다.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 느꼈을 충동과 분노가 이렇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그럴 수 있다며 되뇌어도 머리와 가슴은 여전히 충돌하며 그럴 수 없다고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며 성을 냈다.


도저히 가라앉지 않는 화에 집 앞에서 소주를 한병 걸쳤다. 술과 음식이 들어가니 머리는 둔해졌고 몸은 들어온 에너지원에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머리와 가슴의 퓨즈가 끊겼고 조용해졌다. 차가워진 머리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신이 떠나간 이 복잡한 사회에서, 그저 양보를 할 수 없을 만큼 각박해져 버린 이곳에서, 서로가 선을 갈망하지만 더 이상 선을 행하긴 참 어려운 곳에서 산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여유가 없었음에 회개하며 마지막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정히 받아주는 엄마를 보며 신의 사랑을 느낀다. 당신도 바쁜 일상을 보내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놓는 그녀를 보며 진하게 물들어버린 회색빛이 다시금 하얘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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