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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15. 2024

나만의 무대

2024년 11월 14일 -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모른다.

출근 전, 회사 아래 스타벅스에 들려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연말 행사로 인해 최근 들어 많은 손님들이 오간다. 커피를 가지고 출근을 하기도 하고, 팀장님과 팀원이 앉아 대화를 하기도 한다. 종종 나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사람들도 각자만의 표정을 가지고 앉아있는다.


이들을 가만 바라보다 보면 보이지 않는 선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예쁜 선홍빛을 띤 선부터 새까맣게 타들어간 것까지 선의 색은 각양각색이다. 옆 테이블에는 혼나는 직원도 보인다. 저 대화가 끝이 나면 그들의 줄은 더 단단해지거나, 끊어질 만큼 닳거나 둘 중 하나 일 것이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출장 다녀온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배도 눈에 보인다. 예쁜 라일락색이 펼쳐져 기분이 좋아졌다. 너덜너덜해진 줄에 이끌려 엘리베이터를 향하는 이의 입술은 최고차항이 마이너스인 이차함수를 닮았다.


신기한 형상에 가만히 구경을 하다 조용히 고개를 숙여 내게 연결된 줄을 쳐다보았다. 회사로 이어지는 선은 해져 이어 붙인 흔적이 곳곳에 붙어있다. 끊어졌지만 아직 정리하지 못한 선들이 곳곳에 보인다. 상해버린 들이 여기저기서 살려달라 아우성을 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마음이 무거워진다. 별로 보고 싶지 않다. 내가 있는 곳은 행복해야만 한다는 생각, 나는 최고의 상태여야 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 회피는 글을 쓰는 지금도 선들이 뱉어내는 규탄에 그대로 눈을 감도록 만들어버렸다. 아무리 봐도 성한 선은 없었다.


출근길 읽었던 책의 대목이 떠오른다. 이헌주 교수의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일로 만드는 법칙'에 나온  'A가 우울했던 이유는 자신의 무대를 상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머릿속을 가득 매운다. 전체의 내용은 우울감을 호소했던 A 씨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면서 우울감이 줄어들게 되고 활력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인생을 항해로 본다면 키를 잡은 이는 인생의 주인을 나타내는 것, 나침반을 보고 간다는 것은 되는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설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대를 찾기 위해 우리는 키를 잘 잡고 한 손에는 나침반을 꼭 쥔 채 가야만 한다고 말한다.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일이라니. 말도 안 된다는 생각과 동시에 부럽다는 감정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있는 무대'는 '내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헤매기 시작했다. 회사, 지인, 가족 수많은 관계 내가 온전히 존재하는 무대는 어디에도 없었다는 사실에 잠시 쓸쓸히 웃는다.  마법과 같은 일을 한번 믿어보고 싶어 져 나침반을 찾았다. 내 주머니 속 깊숙이 들어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간신히 잡고 있던 키를 다시 고쳐쥐고 나침반을 보며 길을 다시 잡아보자 마음 먹어본다.


언젠가 찾은 무대에서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수많은 선들이 나에게 버거울 수 있지만, 힘든 일도 걱정도 없을 수 없지만, 이겨낼 용기가 있는 그런 사람. 아마도 우리는 우리의 무대에서 모두가 그런 존재일 것이다. 그곳에서 얼마나 멋질지 모르지만 그곳에 먼저 도착한 이들의 평온한 모습을 보며 그럴 것이라 감히 미루어 짐작해 본다. 나로서 존재하는 무대에서 꼭 만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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