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대하여

엄마 아빠는 왜 손 안 잡아?

by 윤슬yunseul

광활한 대지,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곳. 바다도 호수도 보이지 않는 척박한 이곳에서 헤매고 있다. 비가 내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수천수만 가지 새싹들이 튀어 올라온다. 비현실적으로 자라난 생각들은 그 씨를 또 뿌려놓은 채 생을 다한다. 어떤 생각은 즐거움을 가져다주지만 창피함과 맞서야 할 때가 더 많음에 오늘도 지쳐가고 있었다.


무의식의 대지 위로 어떤 자극이 비처럼 쏟아지면, 자라난 기억은 너무나 생생히 그때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가끔 학교 옆을 지나다 보면 문득, 축제날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긴 채 좋아하는 오빠에게 고백해버린 그날로 여행을 떠난다. 그 다음날 친구에게 사건의 전말을 듣고 절망에 빠져버린 채 강의시간에 열심히 오빠를 피해 다닌 순간으로도. 지하철을 타 그가 쓰던 머스크 향이 잔뜩 나는 향수 냄새가 나면 저절로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함께 걷던 어린이대공원을 떠올리곤 했다.


참 야속하기도 하지. 살며 어떤 감정을 뿌리고 살았느냐에 따라 내가 거두는 매일의 기억은 쓰기도 달기도 하다. 쓰디쓴 기억을 곱씹으며 하루를 보내는 건 사람이 할 짓이라기엔 너무나 가혹하다.


그날도 곤혹스러운 날 중 하루였다. 혼자서 어두운 방에서 끙끙 앓다 부모님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만 듣고도 심장이 내려앉았을 이들. 내 기분을 풀기 위해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다 서로의 이름을 호칭으로 부르는 커플의 비밀이야기가 톡 튀어나왔다. 아빠가 엄마에게 "오빠"소리를 듣고 싶어 했었다는 낯간지러운 이야기. 엄마는 신혼 초에 종종 그렇게 오빠라고 불렀다고 했다. 평소 여보, 자기라는 호칭은 절대 쓰지 않았기에 듣는 내내 입이 벌어졌다.


그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니 내 기억 속 엄마 아빠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우리 엄마랑 아빠는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고 생각할 만큼 애정표현이 없던 부부였다. 우리 앞에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한적 없던 경상도 커플. 테레비에서 나오는 그 흔한 손잡음 하나 없었던 그들을 보며 자랐다. 남몰래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고,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의무감으로 태어난 아이. 그러나 얘기를 듣다 보니 "나는 사랑으로 낳은 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시부모 모시고 살았던 부부가 할 수 있는 행동선은 넓지 않았다. 어렸던 나는 왕복 4시간을 출퇴근하던, 그들이 흘렸던 땀을 봐도 너무 당연하게만 여겼다. 그래, 그들은 그저 사이가 서먹한 부부가 아니었다. 아이 넷을 키우느라 지쳐 쓰러져버린 동지였고, 전우였다. 책임감만으로 이겨낼 수 없었던 시기를 함께 손잡고 걸어온 그런 사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믿음으로 똘똘 뭉쳐 하나가 된 이들의 사이에서 나는 자랐다는 것.


그것은 내 삶을 풍족하게 만들고도 남음이었다.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새로이 덧칠되고 또 몰랐던 것들이 덧씌워지며 그렇게 살아 숨 쉬었다. 광활한 대지에 아름다운 꽃들이 하나 둘 피어올라 다시 씨를 뿌리니 저 멀리 지평선까지 꽃향기가 날아올라 온 세상을 덮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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