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사랑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오랜만에 들른 도서관, 누군가 이 문장에 그어놓은 밑줄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왜 하필 이 문장이었을까. 이름 모를 누군가의 ‘사랑받지 못한 기억’을 몰래 훔쳐본 것만 같아 마음이 아릿했다.
그 누군가의 마음처럼, 소설 속 모모의 사랑은 내내 처연하다. 부자 여인에게 오백 프랑을 받고 애지중지하던 강아지 쉬페르를 떠나보낸 뒤, 그 돈을 하수구에 처넣어버리던 순간부터 그랬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사랑하는 존재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할 줄 아는 모습이 못내 짠했다.
눈물을 쏟는 아이보다 눈물을 꾹 참고 있는 아이를 볼 때 더 슬프다. 상처가 많은 아이가 너무 빨리 어른이 되는 것처럼. 로자 아줌마의 죽음을 곁에서 배웅할 때까지, 모모의 상처는 아물 새가 없었다.
타인의 상처를 바라보며 이토록 마음이 아픈 건, 내 마음 깊숙이 묻어둔 상처들이 갑자기 제 이름을 불린 듯 깨어났기 때문은 아닐까.
결국, 사랑해야 한다. 모모의 마지막 고백처럼. 사랑만이 그 깊은 상처를 다시 다독여 묻어줄 수 있을 테니까.
책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