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와 해학

by 파롤


재희와 승희는 첫 회사 입사동기였다. 이름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해서 두 사람은 금세 친해졌다.


두 사람의 대화 방식은 항상 풍자와 해학이었다. 회사 사람들이나 그 안에 속해 있는 자신들을 있는 힘껏 웃어 주었다. 우린 나름 열심히 살아서 이곳에 왔고 이 사람들을 만났고 어디도 완벽은 없으니 그냥 한껏 웃어주자. 우리가 겪는 일들에 대해서. 그런 주의였다.


하지만 3년을 함께 하는 동안 두 사람의 웃음기는 점차 사라져 갔다. 긍정의 힘을 믿었던 두 사람이지만 더 이상 웃음으로 회사를 버티는 것에 한계를 느끼는 순간, 그 회사를 떠났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안부를 물었다.


“거긴 뭐 없어? 풍자와 해학 같은 거?”


메마른 눈빛으로 승희가 재희에게 말을 건넨다.


“없지. 아, 있다고 해야 할까?”


재희가 먼 시절을 회고하듯 말을 꺼냈다.


“우리 팀장님은 너무 웃겼어. 한 번은, 외근 때문에 이동 중이었는데 상사 앞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너무 웃겨서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어깨를 들썩들썩거렸지. 상사가 이상하다 싶었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라고. ‘이걸 가지고 왜..?’라는 표정이었어. 난 그 모습마저도 웃겼어. 난 팀장님이 조정석과 조세호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했어. 근데 팀장님은 자기가 허참이래.”


승희가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었다.


“뭐가 웃겼던 거야?”


“몰라. 그냥 다 웃겼어. 아, 이건 지금 갑자기 생각난 건데. 한 번은 팀장님이 외근 중에 주유를 하려고 차에서 내린 적이 있었어. 그때 내가 너무 더워서 엉쿨 버튼을 눌렀지. 그리고 팀장님이 들어오셔서 내가 이실직고를 했어. ‘사실 제가 너무 더워서 엉쿨 버튼을 눌렀습니다.’라고 했더니 팀장님이 무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시며 한 마디 하시더라고.”


“뭐라고?”


“뜨거울 텐데..”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봤더니 내가 엉뜨 버튼을 눌렀던 거야. 너무 더워서 급히 누르느라 제대로 안 봤던 거지. 참 별 거 아닌데.. 그 순간의 표정이나 분위기가 뭔가 웃겼어.”


승희가 또 한 번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다. 재희는 그 모습을 보고 입사 초기가 생각났다.


승희는 무던하고 착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헌신하듯 잘해주었다. 동료들을 자기 집에 초대해 요리를 해주고 정성껏 이부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혼자 살면서 그 많은 이불은 다 어디서 마련한 건지. 본인은 술 한 잔도 못하면서 밤새도록 술 마시는 동료들을 어찌 그렇게 잘 챙기던지.


“넌 어떻게 그렇게 착해?”


재희는 승희에게 종종 이런 말을 묻곤 했다.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승희는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녀의 웃음을 점점 보기가 어려워졌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해탈의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나 원래 별명 보살님이었는데, 지금은 고양이가 됐어.”


“왜?”


“사람이 너무 무서워.”


재희는 잠시 숨을 죽였다. 얼마나 상처받았던 걸까. 코 끝이 찡해져서 한참을 숨죽이다가 말을 꺼냈다.


“왜~? 거긴 풍자와 해학이 없어?”


승희는 고개를 숙이며 쓸쓸하게 웃었다.


“탕비실에.. 마녀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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