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윤식 Feb 04. 2019

2. 진통제의 힘

입원일지

수액걸이는 족쇄다

입원은 오전 6시 30분부터 가능했다. 그때쯤 잠을 깨웠다. 몸이 무거웠고 정신이 없었다. 눈을 떴다. 대략 15cm, 25cm 길이의 수액이 보였다. 불투명한 주사 호스가 왼팔로 이어졌다. 바늘이 꽂힌 부위에 흰색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일어났다. 부러진 곳이 없기에 움직일 수 있었다. 통증도 적었다. 진통제를 계속 맞은 탓이다. 응급실 원무과에 들렀다. 직원에게 입원 안내 용지를 받았다. 병상에 가서 짐을 챙겼다. 오른팔로 가방을 들어 올리는데 어깻죽지가 아팠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몸이 어제와 다름이 체감됐다.


입원실에 도착했다. 병원 이름이 적힌 하얀색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8시가 조금 못 돼서 신경외과 주치의가 찾아왔다. 부러진 곳은 없으나 일단 쉬라고 말했다. 난 내일 퇴원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의사가 그건 다음에 얘기하잖다. 이때까지 난 진통제의 힘을 몰랐다.


병원의 일과는 군대와 비슷하다. 아침 식사 7시 30분, 점심 식사 12시, 저녁 식사는 오후 5시 30분에 제공된다. 환자가 자고 있으면 보조 침상에 식사를 놓고 간다. 흔히 병원식을 저염식이라고 한다. 평소 엄청나게 짜게 먹는 나에게 이곳의 식사는 절밥과도 같았다. 덕분에 식사량이 1/3로 줄었다. 이제야 식사시간마다 환자들이 컵라면을 들고 정수기 앞에 줄을 서는 이유를 알게 됐다.


수액은 족쇄다. 엄청 불편하다. 평소 땀이 나거나 기름진 느낌을 싫어하여 손발을 자주 씻는다. 여기서는 그러지 못한다. 머리 감기도 힘들다. 주사 호스가 24시간 붙어 다니면서 움직임을 방해한다. 더군다나 환자가 거주하는 병실 온도는 땀이 날 정도로 높다. 얇은 환자복을 입고 가만히 누워있어도 등마루가 축축해진다.


종일 잤다. 몸이 아주 힘들었나 보다. 저녁밥이 나올 무렵 잠에서 깼다. 통증은 약했다. 흔히 교통사고의 후유증은 시간이 지나서 나타난다고 말한다. 의문스러웠다. 왜냐면 당사자인 내가 심하지 아프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약을 먹었다. 참고로 병원은 끼니에 맞춰 미리 약을 하나씩만 준다.


연차가 높아 보이는 간호사가 찾아왔다. 불편한 곳이 없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말했다. 나가면서 한마디 한다. "앞으로 많이 아프실 거예요."


증상은 천천히 드러났다. 진통제를 맞지 않을 때는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아팠다. 몸 오른쪽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저렸다. 전신이 붓고 뜨거워졌다. 계속 아프기도 하고, 특정 자세에서만 통증이 생기기도 하고, 느닷없이 찌릿찌릿 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몸이 튕기면서 부딪힌 왼쪽 무릎과 갈비, 그리고 어깨도 아팠다. 증상을 정리하기 어려웠다.


진통제 투여는 최소화돼야 한다. 의사가 아니라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내성이 생겨서다. 하지만 더 많은 진통제를 요구하는 환자들이 계속 보였다. 그들은 정말 많이 아픈 것일까. 신음도 없는 요구를 들어주는 의료진의 행위는 진료일까 동정일까.


문득 궁금했다. 나는 무슨 수액을 맞는 걸까. 의사의 설명이 없어서 직접 알아봤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정보시스템(https://nedrug.mfds.go.kr/)과 약학정보원(http://www.health.kr/)을 이용했다. 제품명을 검색했다. 원료 약품 및 분량, 효능∙효과, 용법∙용량, 사용상의 주의사항, 그리고 생산실적까지 확인된다.


진통제의 명칭은 '트라마돌(tramadol)'이다. 수액제인 씨제이0.9%생리식염주사액 100mL에 트라마돌 50mg을 희석해 하루에 두 번 맞고 있다. 다른 마약성 진통제보다 의존성과 부작용이 낮은 편이란다.


두 가지 수액을 보고 하나는 진통제, 하나는 영양제(?)라고 생각했다. 25cm 길이의 수액은 영양제가 아녔다. 중외엔에스주사액 1000mL에 근육이완제인 갈라민(Gallamine) 앰풀, 부종과 염증 그리고 급성 뇌진탕에 효과를 보이는 마로비벤-에이(Marobiven-a) 앰풀이 섞인 수액이었다.


통증은 좁혀지고 깊어졌다. 오른쪽 귀 위쪽 두부에 통증이 계속됐다. 찌릿찌릿함과 팽팽함의 경계에 선 아픔이다. 머리에 손을 얹었다. 뜨겁지 않았다. 그런데 뜨겁게 느껴졌다.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지글거렸다. 오른쪽 관자놀이도 쑤시듯 아팠다. '아, 저기요 진통제 좀….'

매거진의 이전글 1. 귀갓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