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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Jul 04. 2019

소설로 가장한 사회 비평서

보건교사 안은영, 2015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1만3000원


독서는 착각에서 시작됐다. 두 글자 지명으로 된 영화 제목이 묘한 호감을 주는 것처럼 사람 이름이 들어간 책 제목이 독자를 친근함으로 이끈다. 더군다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그 영향력이 더 강해졌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편견을 심어줬다. 그 작품이 사회 속에서 여성이 겪는 부당함을 말했기에 보건교사 안은영도 학교에서 근무하는 여성이 겪는 부조리에 관해 말할 줄 알았다. 그렇게 작가 정세랑은 나를 낚는 데 성공했다.


이야기는 한 사립학교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안은영은 그곳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일들을 해결하는 유별난 보건교사다. 그는 죽은 사람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어릴 적에는 그러한 자신이 어색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살아간다. 처음에는 대학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보이지 않는 이들과 싸웠다. 그러다 점점 지쳐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직장을 지금의 M고교로 옮기게 된다.


작가는 오로지 쾌감을 위해 보건교사 안은영을 썼다고 말했다. 그 쾌감은 무엇일까. 주인공처럼 그녀도 남모르게 귀신과 소통해오다 작품으로 커밍아웃을 한 것일까. 그것은 아닐 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 가지 측면에서 재미와 희열을 느끼며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첫째는 지인을 활용하고 싶은 욕구를 실천한 것이다. 작품의 영감이 지인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는 흔하다. 그리고 그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오고 싶은 욕구도 일반적이다. 농부가 친지들에게 가을이면 햅쌀을 선물하듯 작가는 지인을 소재로 삼는다. 주인공 안은영은 작가와 함께 일했던 대학생 인턴, 아령과 민우는 절친한 친구, 지영은 좋아하는 편집자 선배, 혜민은 무명시절부터 자신을 응원해준 독자 언니이듯이.


둘째는 문제의식을 내세운 부분이다. 책 뒤표지에는 작품을 본격 학원 명랑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표현하지만 내용은 그 이상이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단순히 웃겨서가 아니다. 그 속에 담긴 공익적 메시지가 시청자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에게도 보물처럼 그러한 지점들이 발견된다. 교내에서 레즈비언 커플이 구타를 당한 일부터 크레인 사고, 집창촌 여성, 교사 간의 성추행, 장애 학생, 교과서 선정 문제 등등 시대의 수많은 단면을 틈틈이 전한다.


마지막은 상상력의 분출이다. 소설을 픽션이라고 말하지만 그것도 지루한 픽션과 신선한 픽션으로 나뉜다. 기준은 예상의 정도다. 자식의 죽음을 접한 부모가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떨어트리는 전개는 뻔한 만큼 재미도 떨어진다. 하지만 안은영의 행동은 그전의 퇴마사들과 달라 신선했다. 그녀는 묵주와 성경으로 싸우는 교황청 퇴마사와 달리 비비탄 총과 플라스틱 칼로 악귀와 맞섰다. 그뿐인가. 좋은 기운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들과 동료 교사의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안은영의 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텍스트로 접했던 그의 좌충우돌 퇴마의식이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올해 상반기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 중이다. 영화 미쓰 홍당무를 제작한 이경미 감독이 연출을 배우 정유미 씨가 주연을 맡았단다. 영상 속에서 안은영의 싸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작품이 공개될 내년 상반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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