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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Jul 06. 2019

자책하는 당신에게 추천해요

크눌프, 1915


크눌프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7500원


당산역에서 그를 만났다. 장소는 서점이었다. 교보문고처럼 기업이 운영하는 곳은 아니었다. 동네 학생들을 위한 참고서와 아동 서적, 그리고 시중에서 화제가 되는 책과 스테디셀러인 고전으로 서가는 채워져 있었다. 아직도 실내가 생생하다. 동네 서점치고 꽤 넓었다. 직원은 카운터에서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내는 한 명뿐이었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했던 느낌으로 보아 여름 무렵이었나 보다. 그때 그곳에서 크눌프를 만났다.


그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인기가 많다. 어느 지역에 가도 자신을 환영해주는 친구가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특별한 재주가 있지는 않다. 다만 사는 방식이 남들과 다르다. 우리는 직업으로 인생을 구분  짓는다. 그러나 삶은 다른 방식으로 구별된다. 하나는 본성을 따라 자유롭게 살아가는 유별난 사람, 다른 하나는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꾸리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이다. 바꿔보면 ‘예술가와 시민’이다. 크눌프는 전자였다.


예술가는 소수다. 욕망을 실천하지 못한 자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자들을 동경하거나 부러워한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마음은 본능이다. 여기에 시민은 다수고 예술가는 소수이기에 크눌프는 인기가 많은 것이고,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고, 인기가 실제보다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잠깐 하나를 짚는다. 예술가는 화려하게 성공한 작가부터 주목받지 못했거나 시작하지 않은 잠재적인 사람까지를 포함한 내재적 방랑자를 말한다.


반대로 예술가는 시민을 어떻게 바라볼까. 정시 출근하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딸아이에게 환영을 받는 존재들을 그들은 부러워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하지만 스스로 그 생활을 거부했기에 고독한 눈으로 쳐다볼지언정 입을 열어 그렇게 살고 싶다고 쉽사리 말하지는 않는다. 그건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시민을 부러워하는 것도 시민이 예술가를 부러워하는 것도 그저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그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현재의 삶을 선택할 수 없었다. 크눌프는 본성을 좇을 존재로 태어났고, 그의 친구 에밀 로트푸스는 무두장이로 살아가면 가정을 꾸리는 운명이었다. 현재의 삶은 많은 요인이 작용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삶을 의도대로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독한 방랑자로 살아가다 홀로 눈밭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크눌프의 삶도 마찬가지다.


시민과 예술가의 삶은 안정과 자유로 치환되기도 한다. 중요한 지점은 절대 둘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살면서 안정을 누리기는 어렵고, 안정되게 살면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를 가지려다 되려 고통을 얻는다. 욕심, 구속, 집착, 이 모든 것이 그러한 진리를 거부한 대가다. 그러한 집착은 이룰 수 없는 목표이기에 좌절과 실패로 이어진다. 그리고 인간은 자책하며 괴로움의 늪에 빠진다.


작가 헤르만 헤세는 이러한 삶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모든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을 수는 없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까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로 갈 수가 없어. 만일 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뿌리를 떠나야 하는데 그것 역시 불가능하지.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하지만 씨앗이 적당한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곳저곳으로 불어댈 뿐이지.”


마음이 힘든 사람은 여기까지 글을 읽었을 테다. 그렇다면 다음 과정으로 가까운 서점을 찾아가길 바란다. 크눌프를 사서 혼탁한 카페에 들리시라.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시면서 책을 펼치시라. 숨을 거둘 때까지 ‘자신의 삶이 과연 의미 있는 것이었던가’라는 질문과 마주했던 크눌프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당신의 마음을 적셔주고 다독여줄 것이다. 절대 혼자 힘들어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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