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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Mar 21. 2018

무인 주문기와 사발면


뭔가 잘못됐다. 오랜만에 롯데리아를 찾았다. 계산대에 ‘지금은 셀프 오더 타임, 무인 주문기를 이용해 주세요’가 적힌 팻말이 세워졌다. 처음 봤다. 극장에서 보던 무인 발매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주문기 옆에는 ‘기다리지 않고 간편하게 주문하는 방법’이라고 적힌 설명판이 세워졌다. 과연 그럴까?


한 아주머니가 무인 주문기의 화면을 누르면서 메뉴를 고르고 있다. 난 그 뒤에 섰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계산대로 달려간다. 주문이 끝난 줄 알고 화면에 다가서니 아직 주문 중이다. 어려워서 점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본 모양이다. 혹시 몰라 “주문 다 하신 건가요?”라고 물었다. “아직이요.” 다시 와서 주문을 이어간다.


점원의 답변에도 아주머니는 무인 주문기를 사용하는 게 어려웠다.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아주머니의 당황한 기분이 그것을 증명한다. 결국 나에게 “먼저 주문하시겠어요?”라고 양보한다. 그녀는 내가 데리버거를 한 입 베어 물 때까지 주문 기계와 씨름했다.


74석 매장에 점원은 한 명뿐이다. 무인 주문기가 있더라도 혼자서 근무하는 것은 무리다. 덕분에 아르바이트생 A는 무척 바빴다. 먼저 주문기에서 전달되는 주문 내용을 큰 목소리로 외치며 조리실에 알린다. 제품이 나오면 냅킨, 양념, 빨대 등 구성품을 채운다. 계산대에는 쟁반 5~6개가 끊임없이 채워지고 빠진다.


그 와중에 무인 주문을 어려워하는 손님들이 A에게 이것저것 질문한다. 초등학생 손님들은 컵을 들고 와 수시로 음료 리필을 요청한다. 한 손님은 화장실 위치를 물어본다. 다른 손님은 지저분한 테이블을 닦아달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A는 쟁반에 놓을 필수 내용물을 자꾸 빠트린다. 내가 시킨 데리버거 세트에는 케첩이 없었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도 포테이토, 치즈스틱, 콘샐러드, 음료 등등 무언가 없다고 A에게 말한다.


A는 여러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부족한 상품을 채워준다. 그러면서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그가 뭘 잘못했는가. 난 모르겠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아르바이트생이 웃으며 밝게 손님들을 대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A의 얼굴에 표정은 없다. 슬픔과 체념이 뒤섞인 눈빛이다. 안면근은 시험장에 앉아 있는 수험생처럼 굳어 있었다. 긴장감이 가득하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A는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A는 솔직했다. 손님에게 사과하는 A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들렸다. 실수를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는 듯 보였다.


그 실수는 왜 발생한 것일까. 내가 볼 때 A가 그 이상으로 열심히 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기시감이 든다. 실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수가 줄어들지 않는 상황, 그곳에서 난 구의역에서 숨진 김 군의 사발면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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