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2018
꾸미기에 충실했던 책이다. 짧고 선명한 칼럼을 엮은 작품이다. 『더 저널리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이어 시리즈로 나왔다. 속의 알맹이는 부실하다. C급 사과를 포장한 근사한 상자처럼 느껴졌다.
키워드는 평등, 진실, 전쟁, 미래, 삶, 표현의 자유다. 주제에 관한 오웰의 글이 각 분야에 10편 내외로 실렸다. 어떤 글은 두 페이지에 불과할 정도로 대부분 짧은 글이 실렸다. 상하좌우 여백은 지나치게 넓어 공간이 아까웠다. 내용보다 다른 무언가에 더 집중한 책 같았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혹은 평론집은 10권이다. 사람의 좋고 싫음은 큰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기에 서로 중복으로 실린 글이 많았다. 하지만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에 담긴 글은 처음 접하는 칼럼이 다수다. 일부러 그렇게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세 개의 글은 새로운 생각을 던져줬다.
<‘코끼리 귀’ 조사관의 필요성>
1900년대 중반 영국에는 ‘대중조사국’이라는 국가 운영의 여론조사기관이 있었다. 정부가 여론을 확인하는 것에 우리는 쉽게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나라의 정책은 국민의 의견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볼 때 전혀 나쁘지 않다. 다만 의뢰자가 누구냐가 문제다.
<사보타주의 의미>
사보타주는 정복당한 사람들의 전술이다. 용어가 풍기는 거칠고 부정적인 냄새는 뜻과 다르다. 약자의 몸부림이다. 사보타주의 사보는 프랑스 북부 지역의 사는 농부와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나무 신발을 던지는 것에 유래한다. 그것의 이름이 사봇(sabots)이다.
<훔친 푸딩의 기억>
가장 인상적이다. 다른 책에서 본 것 같다. 버마행 여객선에서 오웰의 겪은 일이다. 그는 한 선원이 승객이 먹다 남긴 푸딩을 훔쳐 조타수에서 건네는 것을 본다. 승객의 목숨을 책임지는 선원이 그런 것이다. 오웰은 여기서 주어진 역할과 대가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조지 오웰은 글은 언제나 하나로 모여진다. 부당함에 대한 분노다. 여섯 키워드는 모두 그것으로 연결된다. 평등, 진실, 전쟁, 미래, 삶, 표현의 자유 등이 위협받고 상실되는 현실을 텍스트로 옮겼다. 그 속에 담긴 비판과 대안이 아직도 유효하다. 이 책을 볼 이유를 꼽자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