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너

by 시니

장충단공원 회양목 안쪽 깊이 숨어 있던 너

종이쇼핑백 안에 까만 비닐봉지 속에

꽁꽁 숨어 있던 너


너, 왜 그랬어?


나? 그럴 이유가 있었지

나의 주인은 시흥 텃밭 가꾸는 할아버지

정성과 땀으로 키우시더니

큰딸 윤에게 주더라고

윤은 나의 친구들 중 실한 몇 개를 골랐지

너에게 주려고 말이야

뽑힌 게 바로 나와 우리야

늠름하게 생겼지?

윤은 장충체육관 YB콘서트를

너와 보기로 한 날,

나를 들고 간 거야

근데 나를 하루 종일 들고 다니기에는

방해가 될 것 같은 거지

어디다 놓을까 고민하는 것 같더니

동대입구역 물품보관함을 찾았어

오 마이 갓!

남은 칸이 없네

흠 어떡할까?

그래, 남들 눈에 안 띄는 곳에 두자

윤 만의 보관함을 찾더라고

그러더니 윤은 드디어 찾았어

바로 그 자리 회양목 뒤쪽 깊숙한 자리에

나를 슬며시 두고는

회심의 미소를 짓더라

너희들을 기다리는 동안

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라

낯선 사람이 데리고 갈까 봐

고양이가 할퀼까 봐

산책 나온 강아지가 킁킁 냄새를 맡을까 봐

청소하시는 분이 쓰레기인 줄 갖고 갈까 봐

걱정했어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지나가는 사람들 걷는 소리, 얘기 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었어, 쿨쿨

어느새 윤이 와서 날 집어 들고는

네게 주더구나

윤과 네가 까르르 웃는 소리에

난 더없이 행복해졌어

이제는 너네 집에 무사히 도착했으니

나의 본업을 잘하려고 해


아! 그랬구나

내가 널 우리 집에 잘 데리고 왔네

오늘 저녁

우리 가족의 식탁에서 함께 하자꾸나

너는 겉은 투박하게 생겼구나

흙이 잔뜩 묻은 걸 보니

윤의 아버님 손이 떠오른다

깨끗이 씻어서

찜기에 넣고 푹 익혀본다

두 손으로 반을 가르니

네가 활짝 웃는 것 같구나

속은 샛노랗게도 이쁘다

우리 가족의 몸과 마음을

크리스마스날처럼

따뜻하게 해 준

너, 고맙다

재치와 위트와 그리고 정감 있는

윤아, 참 고마워

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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