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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선 Jan 21. 2020

천천히 부드럽게 붕대를 감싸는 방법

윤이형, <붕대 감기>

윤이형, 붕대 감기, 작가정신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쭈뼛거리며 나에게 말을 걸듯 말 듯 망설이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야망 있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데, 그러면 그렇지 않은 여성의 삶은 존경할만한 것이 아닌가? 모든 페미니스트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동안 야망 있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은 사회에서 환영받기 어려웠고 그래서 비춰지지 않았으니 이제는 한 명이라도 더 나타나서 비춰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곧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여성으로서 보란 듯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높은 곳에서 더 강한 사람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내 무의식 속에서 성공과 힘을 기준으로 나를 검열하는 시선이 차곡차곡 만들어졌다. 이 검열의 시선에 대해 무엇인가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내 속에 기대를 한아름 품고서 반짝이는 눈빛을 한 것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신화를 버리지 못한 마음과 개인적인 열등감과 보상 심리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만들어진 것이니까. 그런데 잠깐, 내가 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 내 마음의 크기보다 커지고 있었다.


바닥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헛디뎠다. 다행히 발목의 아픔은 금세 사라졌는데,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숨이 가빠졌다. 이상하게 몸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에 가서 빨리 일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한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p.76


1 기대와 무게

소설 속 '세연'은 고등학교 시절 자기 외모에 대한 혐오감으로 인해 그 당시 아무도 하지 않던 화장을 혼자 하고 다녔고 그 이유로 왕따를 당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는 20살의 문턱을 넘자마자 화장할 것을 권유하는 쪽으로 돌변해버린 사회에 배신감을 느끼고 오히려 화장을 하지 않고 다니는 쪽을 택했다.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고자 하는 욕망에 대한 혐오,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어버리면 나는 자신이 부끄러워 견디지 못할 거(p.136)'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살아온 세연은 중년이 되어 책을 기획하는 일을 하다가 여성의 우정에 관한 책의 단독 저자가 될 기회를 얻다. 책에 실릴 이야기를 모으기 위해 여성들을 인터뷰하는 가운데 세연의 마음은 점점 복잡해진다.

     세연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보다 어린 여성 학생들이 자신을 성공한 비혼 여성 롤모델로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세연이 야망을 품고 이 길을 걸어 여기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살다 보니 여기에 와있던 것뿐이었다. 오히려 세연의 이십 대 때 우상은 여성 변호사나 여성 과학자처럼 권위 있는 여성이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그의 우상은 낭만적인 이미지의 커트 코베인이었다. 하지만 함께 인터뷰하는 누구에게도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다. 자신의 우상이 커트 코베인이었다는 것을 알리면 젊은 학생들은 실망하고 자신을 도태된 사람으로 취급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성주의자들에게서 배제되면 고등학교 때처럼 또다시 혼자가 될까 두려워서이기도 했다. 세연의 본심은 커트 코베인에 가 있었지만 그는 원래부터 성공한 비혼 여성을 꿈꾸었고 그 과정을 차곡차곡 밟아서 지금 원하던 만족스러운 위치에 있게 된 것처럼 학생들 앞에서 연기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위해 재테크나 적금, 대출 같은 것은 진작에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세연은 여성의 우정에 대해 학생들을 인터뷰하면서 이제는 서먹해져 버린 고등학교 친구 진경이 자꾸 생각나 혼란스러워진다. 진경은 세연이 따돌림당하던 시절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함께해준 유일한 고등학교 친구다. 하지만 지금은 진경이 '좋아하는 분홍이 부끄럽고,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귀걸이가 부끄럽고, 내가 사랑하던 너의 문장들이 부끄러워'(p.141)진지 꽤 오래됐다. 세연은 진경의 모습을 보면서 사실 여성주의 관점을 가진 다른 사람 들으로부터 또다시 따돌림당하게 될까 봐 두렵다고 그래서 자꾸 너의 모습을 판단하게 된다고, 자신은 도태되는 것이 두려워 진심을 감추는 너무도 미성숙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진경 또한 세연이 미묘하게 자신과 함께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자신에게 무심하게 대하는 것을 느끼면서 세연이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있음을 짐작한다. 진경의 연락에도 세연은 차갑게 대한다. 서로 연락은 닿지 않지만, 둘은 각자의 일상에서 고등학교 교련시간에 붕대 감기 실기시험을 보았던 장면을 떠올린다. 아무도 짝이 되어주지 않을 게 뻔한 세연과 진경은 짝이 되어 붕대 감기를 함께 했다. 시험 때 세연은 진경에게 붕대를 감아주다가 긴장한 나머지 한 바퀴를 더 감아버렸고 붕대 길이가 부족하게 되었다. 세연은 당황해서 붕대 감기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잊어버렸고 길이를 맞춰보려고 자기도 모르게 쭉 잡아당겨버렸다. 진경은 '악!' 소리를 질렸다.


2 붕대를 감는 순간

붕대 감기 시간에 대해 진경은 자신이 머리가 커서 붕대가 모자랐다고 자신은 '보통 붕대로는 안되'(p.94)는 거라고 생각하고, 세연은 자신이 붕대를 원래 감아야 하는 것보다 한 바퀴 더 감았다고 기억한다. 둘 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오는 부끄러움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서로 생각은 하면서도 닿지 못하는 중년의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서로가 다시 만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진경은 자신이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세연은 자신이 비겁한 인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자기를 탓한다. 진경은 '멋지고, 지적이고 재능 있고, 알고 지내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마디로 진경보다는 몇 배는 훌륭한'(p.68) 세연의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세연은 돈많이 들인 좋은 집이 아닌 올라가는 길 계단에서 '짙은 찌개 냄새와 생선 무조림 냄새, 혹은 한약 냄새'(p.78)가 풍겨 나오는 낡은 빌라 건물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작아진다.

     '오버를 하든지 아예 안 하든지 둘 중 하나인'(p.169) 서투른 세연은 붕대 감기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나머지 당황해서 실수를 하고, 붕대를 너무 꽉 당겨 진경을 아프게 해 버렸다. 세연이 진경과 거리를 두려고 하고 연락을 받지 않은 것 역시 세연이 그동안 진경에게 느끼고 있었던 감정 때문에 이 붕대를 꽉 당겨 버릴까 봐 그렇다. 진심은 진경이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고 응원하는 마음이지만 서로 멀어져 버린 시간 동안 쌓인 질투나 미움들이 뒤섞여 붕대를 너무 꽉 당겨버릴까 봐, 그래서 진경을 아프게 할까 봐 그런 것이다. 그런 자신을 마주하기 두려웠던 것이다.

     세연이 인터뷰한 학생들은 서로 뜻이 다르기 때문에, 즉 차이가 있기 때문에 친구와 멀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래서 친구보다는 동지라는 말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연과 진경 두 사람을 연결해주는 것은 둘의 공통점, 가치관이 아니다. 다친 사람을 응급 처치해주는 붕대라는 끈이다. 붕대 감기를 했던 '교련 시간은 군사교육을 받는다기보다는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p.126)에 가깝다. 오직 여성들만이 모여서 여성에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이다. 진경과 세연은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을 연결하고 있는 것은 둘의 공통점이 아니라 붕대 감기를 통해 다친 세연의 마음에 손을 건넨 순간이다.


세연은 진경과는 이제 더 이상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안타깝지만 이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진경은 세연과 무언가 공유할 만한 것이 있어서 그렇게 했을까? 그들 사이에 공통점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진경은 모두의 사랑을 받는 아이였고, 세연은 고립된 문제아였다. 그 아이는 단지 세연이 간절히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너그러움을 베풀었고, 곁에 있어준 것이었다. p.152


다양한 환경을 거쳐 다양한 관점을 가진 인간이 모여 이룬 연대가 하나같이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하나의 명제에도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이유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용실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코르셋을 권유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하는 지현도, 페미니즘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존경하는 명옥 선배를 위해 같이 살자고 선언한 효령도, 제자를 위해 성추행 사실을 학생회관에 써 올린 경혜도, 그 제자의 친구이기에 누구보다 분노하는 형은도 소설을 통해 그들의 과거와 일상을 들여다보면 모두 제각기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고 다른 현재를 겪고 있다. 모두가 다른 입장에 있기 때문에 모두가 조금씩은 다른 주장을 하고 다른 차원의 실천을 할 수밖에 없다.

     세연과 진경은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지점이 모두 모여 하나의 같은 명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 받은 사람들이 그대로 포기하고 두려워 숨어있게 두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련 수업 날 아무도 짝이 되지 않으려고 했던 세연에게 진경이 손을 내밀었듯이 서로 함께하고 치유를 도와주는 회복의 장이 되어주는 것이다. 세연과 진경이 보여준 연대란 그런 것이다.


3 상처 받을 준비, 함께 할 준비


ㅡ 우리가 반드시 같아질 필요는 없어. 억지로 그러려고 했다간 계속 싸우게 될 거야.

같아지겠다는 게 아니고 상처 받을 준비가 됐다는 거야, 진경이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이 아니고 너한테는, 나는 상처 받고, 배울 준비가 됐다고! 네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다고. 그러니까 아무 말도 안 하고 멀리서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일을 제발 그만둬. p.158


같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연대를 이룰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포용력만으로 충분할까. 진경은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 있으면,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한다. 그래야 싸우든지 배우든지 할 수 있다고. 진경은 세연과 생각을 나누고 그것을 통해 상처를 받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즉 '상처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모든 게 같아지겠다는 것도 그렇다고 모든 게 다른 체로 좋다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게 같아질 필요는 없지만,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라면 다르게 생각하며 살아왔던 과거의 내가 상처를 받더라도 그것을 배우겠다는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세연의 어떤 마음처럼 비난받을까 두려워서 따르는 것이 아니다.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목소리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함께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상처를 받더라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배우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4 자신을 변형시키지 않고도 현실에 발 디딜 수 있을까

세연과 진경, 지현, 효령 등등 이 소설에 나오는 수많은 여성 인물들은 모두 다른 무대를 살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여성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혹시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세연과 진경은 둘 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주위의 여성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둘 뿐만 아니라 효령도 해미도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지만 자기 주위의 여성들에게 힘이 되어주려는 마음은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는 여기 등장하는 여성들은 자신이 여성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혹은 비난받을 일을 하지는 않는지 검열한다. 세연은 커트 코베인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본심이 들키면 비난받을까 걱정한다. 지현은 자신이 미용업계에서 일한다는 것과 누군가의 머리를 손질해주는 것을 즐거워하는 마음을 스스로 판단하고 감춘다. 이들은 자신을 검열하느라 자신이 원하는 마음을 혹은 현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어렵다.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노력의 과정에서 그 사람의 본성과 정체성을 부정해야 한다면 그것이 그 여성을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본성이라는 게 사회가 세뇌한 것인지 정말로 내가 타고난 것인지 모르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타고난 게 있기는 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사람의 삶이 여성들로부터 배제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행위로 가득 차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작가는 여성의 연대가 젊은 사람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든 이성적인 사람이든 '자신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기를' 진경의 입을 통해 바란다.


사랑하는 딸, 너는 네가 되렴. 너는 분명히 아주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거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응원해줄 거란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약한 여자를, 너만큼 당당하지 못한 여자를,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여자를, 겁이 많고 감정이 풍부해서 자주 우는 여자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결점이 많고 가끔씩 잘못된 선택을 하는 여자를, 그저 평범한 여자를, 그런 이유들로 인해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도 나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할 거란다. p.68


야망 있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그리고 강한 힘을 가진 여성은 여전히 멋있다. 그리고 약자의 위치에 있는 여성에게는 강한 힘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람은 각자 다른 모양과 성격과 크기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모양을 따라 살아갈 때 비로소 지치지 않고 페미니스트로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나'는 페미니스트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윤이형 작가의 이전 작품 <작은마음동호회>에 포함된 작품 <승혜와 미오>에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승혜와 미오에서 아이를 좋아하는 승혜는 워킹맘이자 싱글맘인 이호 엄마의 베이비시터로 일한다. 하지만 자신의 레즈비언 정체성이나 짧은 머리를 드러내면 베이비시터로는 부적절하게 보일 거라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 이 엄마는 나를 자르겠지?'(p.48)라고 생각한다. 즉 가부장제 사회가 규정한 '아이에게 유해하지 않고', '아이를 잘 돌보는 사람'의 이미지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소설의 끝자락에서 이호 엄마는 승혜가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호 엄마는 그 점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승혜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자신을 가부장제의 이상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레즈비언 정체성이 이호 엄마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면서, 승혜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변형시키지 않으면서도 가부장제에 얽히지 않고 여성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진다.

     승혜가 아이를 돌보면서도 가부장제와 얽히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할 것이다. 소설에 등장했던 영화 <베이비 포뮬라>에서처럼 남자의 정자를 받아 아이를 낳고 여자들끼리 살 수 있다. 소설집 <무민은 채식주의자>에 담긴 정세랑 작가의 작품 <7교시>에는 '비출산을 선택한 사람이 출산을 선택한 사람 중 한 사람을 골라 지구의 자원을 쓸 권리를 선물'(p.151)하는 미래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이런 미래가 온다면 승혜는 아이를 돌보면서 원치 않는 임신이 줄어드는 세상을 지속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낭만적인 감수성의 세연에게도, 누군가의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지현에게도 그들의 ‘자기다움’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이 있을 것이다. 이 ‘자기다움’이 사회가 세뇌한 것인지 내가 타고난 것인지는 스스로 계속해서 질문하고 기존의 관념과 싸우면서 찾아가야 하는 각자의 과제. 물론 이 방법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어 가부장제와 얽힐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이탈하는 새로운 방법이 또 나타날 것이고, 새로움과 변형 서로를 추월하는 과정을 통해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방식은 다양해질 것이다.

     먼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둘러싼 가부장제의 틀을 벗어버리고 나서도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나면, 승혜처럼 이런 현실 속에서 '자신을 변형시키지 않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서서히 보일 것이다.

     이 작품은 남성으로 인해 직접적인 고통받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여성에 대한 여성의 우정과 연대를 세심하게 드러냈다는 에서 새로운 지점에 물음표를 찍는다. 작가는 여성과 여성 사이의 감정과 시선을 통해 여성주의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질문하고, ''로서 페미니즘을 실천할 수 있는 '각자의 방법'을 찾기를 바라는 듯하다.


소설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에피소드에서 에피소드로 자그마한 고리를 통해 연결되어있다. 진경과 세연이 연결되어있듯이 윤이형이라는 작가의 소설을 통해 연결되어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연대를 생각한다. 그리고 천천히 부드럽게 붕대를 감싸지 못하고 붕대를 너무 꽉 당겨버려서 떠나간 사람들과 그럼에도 함께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때 내가 '이런 나'와 '저런 너'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좀 더 천천히 부드럽게 붕대를 감쌀 수있었을까.


작가의 말을 잠시 빌려본다. 나도

'그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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