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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선 Dec 02. 2019

나는 마음이 작다

윤이형, <작은마음동호회>

윤이형, 작은마음동호회, 문학동네




1

나는 마음이 작다. p.9


     '작은마음동호회'의 경희는 마음이 작다. 그래서 경희는 작은마음동호회에 대해 설명하는 서문을 쓰는 것이 부담스럽다. 남이 비웃기도 전에 먼저 자신을 우습게 보고 만다. '승혜와 미오'에 나오는 승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승혜는 자신의 동성 애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와 자신의 비루한 가정환경에 컴플랙스를 가지고 있다. 그 마음은 사랑받으며 자랐을 것 같은 미오에 대한 질투심으로 이어진다. 첫 문장이 강렬해서였을까,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마음이 다 작아 보다. 엄청난 야망이 있다던지, 고통을 극복할 만큼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던지, 연민을 쉽게 지나칠 만큼 계산적이라던지 하는 사람은 없다. 연약하고, 여리며, 유치하다. 이 마음은 내 마음처럼 익숙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런 인물들에게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삶 안에도 그만의 방식과 빛나는 것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2

     '님프들'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혼돈 속에서 중심을 잡으며 읽느라 인내심이 필요했지만, 다 읽고 난 후에는 이런 형식을 선택해서 글을 썼다는 것에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독자들을 형식을 통해 혼돈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걸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도 신기하다. 나는 그 혼돈의 파도타기를 술렁술렁 아주 잘 타고 즐겼다.

      '님프들'의 주인공은 자신의 아이인 준을 사고로 잃었고, 그 사건을 감당할 수 없어 모든 사람을 준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왜곡하는 마음의 병이 싹튼 것이다. 아이를 잃은 사람에게 그 사건은, 마음이 아무리 커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은 그 사람의 마음이 작은 게 아니라, 그 현실이 너무 큰 것이다. 돌켜보면 "나는 마음이 작다."라고 말했지만 육아와 집안일에 시달리느라 마음이 있어도 정치 집회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경희도, 가족의 따스함을 원하지만 동성과는 그런 가족을 만들기 어려운 승혜도, 동물들을 착취하는 세상과 가족이라는 것이 믿을 수 없이 낯선 미오도 마음이 작았던 게 아니라, 그 현실이 그들의 마음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에 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부적절한 현실인데 받아들이라고 하니까, 그냥 내 탓이라고 나는 마음이 작다고 생각해버린 것이 아닌가. 사실은 마음이 작은 게 아니라 현실이 믿을 수 없이 큰 아량을 베풀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3

-......승혜야, 나는, 너를 좋아하는데, 네가 필요로 하는 삶을 내가 줄 수는 없는 것 같아. 누구를 키우고 싶지도 않고, 그러면서 희망을 갖고 싶지도, 이 세상에 내 유전자를 남기고 싶지도 않아. 아이를 키우기엔...... 여긴 너무 잘못되어 있는 세상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리고......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가족이라는 게, 너무 버거워. 남자, 가부장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가족이라는 제도 자체가 나한테는 너무 힘들어. p.51


     '큰 일'은 뉴스에 나온다. 그리고 그 뉴스를 보는 나는 높은 확률로 그 일을 겪은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나에게는 그렇게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산다. 나에게 큰 일은 일어나지 않고,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서 작은 일이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내 마음은 작다'라고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둘 다 틀렸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서 더 큰 일이고, 매번 그 큰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너무 당연하다. 그리고 아이를 잃은 '님프들'의 부모도, 동성연애를 하는 승혜와 미오도 어떤 날 언뜻 발견한다. 그 현실 속에서 자신을 변형시키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글을 읽는 내내 이야기 속의 마음과 내 마음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은 무엇이었는지 살피고 있다. 그것들을 발견하면, 나는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이제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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