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오이

by 윤타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과 오이에게서 '고통'을 받는 것이라고나 할까.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DNA의 문제다. 혀의 미각세포와 뇌가 연결되는 시스템의 차이로 인해, 어떤 사람에게는 오이의 맛이 기괴하게 느껴진다. 오이 알레르기가 있는 것은 아니라 참고 먹을 수는 있지만,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맛과 다른 맛을 느낀다. 그들은 오이를 먹으며 '고통'에 가까운 감각을 느낀다.

이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좀 거창하지만) 여행이란 견문을 넓히고 지친 삶을 위로해주는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주체가 되는 여행도, 남에게 이끌려 관광상품을 소비하는 여행도, 산업을 발전시키는 이로운 행위가 된다.

다니엘 부어스틴의 '이미지와 환상'에서는 여행을 통해 '일상과 다른 삶'이라는 '환상'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한다. 격무에 지친 A는 스스로 위로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는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A가 살고 있는 곳으로 휴식을 취하러 온다. 휴식을 취한 그들은 다시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가 이 사회의 톱니바퀴를 돌리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사람들은 여행이라는 '가상의 환상(시뮬라시옹)'을 소비한다. 여행은 이 사회의 산업시스템을 빈틈없이 돌아가게 만드는 윤활유가 되며 지배계급에 이익을 안겨주는 알토란 같은 산업이 된다.

여행에서 고통을 느끼는 소수의 사람들은 여행과 산업의 착취구조에 환멸을 느껴 여행을 싫어한다기보다는,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처럼 '몸' 자체가(DNA가)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여행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이들은 별 문제가 없다. 여행을 가지 않으면 되고 오이를 먹지 않으면 된다. 문제는 이들 소수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멸시'까지 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오이를 못 먹는 사람을 편식하는 철없는 아이 취급을 하고, 여행을 힘들어하는 이를 게으르고 반사회적인 사람 취급을 한다.

이들은 소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자신과 다른 소수에게 다수의 '취향'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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