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힘든 경험을 듣고 난 다음, 이 말을 하며 상대의 주의를 끈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더 힘든 경험을 얘기한다. 내가 너보다 더 힘든 경험을 했다는, 내가 더 잘났다는 유치한 경쟁일 수도 있고, 정말로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위로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는 말이다. 상대방이 겪은 어려움보다 더한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해봐야 상대방이 겪은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만에 하나 잠시라도 위로가 된다면 그저 다행이다.
말하는 사람의 눈빛과 말투가 ‘우아하고’ 상냥하다면, 말의 내용은 크게 상관없게 된다. 상대방을 걱정해주고 위로해주고 싶어 한다는 의지가 전해진다면, 상대방은 ‘위로’ 받는다.
37개국에서 실시된 이문화간 조사를 종합한 결과, 파트너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상냥함’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욕설을 해도 우아해 보이는 사람이 있고, 지적인 단어로 말해도 천박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우아한 언어는 사용하는 단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냥함에 있는 것 같다.
우아한 사람=우아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우아한 언어=상냥한 눈빛과 태도로 상대를 배려하는 말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