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야만

by 윤타

#야만 1.

횡단보도 앞에 두 남녀가 서있다. 20대 초반으로 보인다. 나란히 꼭 붙어 있는 것이 꽤 친밀한 사이 같다. 여자는 뭔가 화가 났다. 굳은 표정으로 서 있다. 남자를 쳐다보지 않는다. 남자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여자의 턱을 잡고 자기 쪽으로 돌린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떨쳐내고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장난스럽게 쓰다듬는다. 여자의 팔을 ‘애완’ 동물이나 구체관절 인형을 다루듯이 접었다 폈다 한다.

여자의 얼굴을 보고 말을 하고 싶다면, 여자의 얼굴을 잡고 자신을 향해 돌리지 말고 자신의 몸을 이동해서 여자 앞에 서서 말하면 된다. 하지만 남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에게 여자는 객체고 애완동물이며 구체관절 인형이다. 감정과 생각을 지닌 생명체가 아니라 장난감 같은 ‘물건’이다.

#야만 2.

마을버스는 평상시 노선대로 유턴을 했다. 하지만 중간에 멈춰 섰다. 마을 버스정류장 표지판 바로 앞에 흰색 아우디가 정차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버스 운전사가 경적을 여러 번 울렸지만 아우디는 반응이 없다. 버스 운전사가 창문을 내리고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아우디가 움직인다.

아우디는 서서히 도로로 합류한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두 개 차선을 한 번에 가로지른다. 뒤에서 오던 차가 급하게 속도를 줄이고 멈춘다. 아우디는 아무 일도 아닌 듯 속도를 내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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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된 사회의 이미지에는 폭력 부재, 점잖고 예의 바르며 매너 있는 사회라는 ‘환상’이 있다. (‘환상’이라는 것은, ‘매너’가 문명사회의 특성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문명을 증명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매너는 인간의 몸과 그 몸이 있는 공간에 대한 신성함을 서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사적인(혹은 공적인)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문화적으로 공유되는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인다. 그런 성스런 공간이 침범당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혐오감과 거부감을 느낀다.

‘문명화된’(부정적 의미의 따옴표) 현대 사회는 교육과 제도로 폭력과 비매너를 없앴다. 하지만 폭력은 재배치, 재배분되었다. 없어지지 않았다. 단지 일반 시민의 시야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주변에서 사라진 폭력과 비매너를 보며 자신이 사는 사회가 문명사회라는 환상을 가진다.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폭력은 더욱 거대해졌다. 우리는 미국과 북한이 서로 협박을 주고받는 것을 실시간으로 구경하면서 현대사회가 ‘문명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발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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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야만 1’과 ‘야만 2’의 사례들을 보면, 아직 이 사회는 ‘환상’으로서의 문명조차 아직 이루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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