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도 두쫀쿠도 아니지.
고통과 지루함이 동반되는 근력 운동과 군인같이 엄격하고 일관된 수면 패턴이 몸을 살린다. 과학적인 침대는 허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위고비도 두쫀쿠도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우리는 주(main)와 보조(auxiliary)를 구분해야 한다.
인생을 구원하는 철학은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강가에서 일주일을 지낸다고 떠오르지 않는다. 매일, 깊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속세를 떠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서울에서, 대출을 짊어진 월급쟁이의 삶 속에서도 고찰할 수 있다. 다만 나는 그런 환경에서는 깊게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가끔 그럴듯한 답을 찾는다 한들 지속할 수 없었을 뿐.
나는 귀촌이 인생 후반부에나 깨닫는 위대한 진리에 따른 결정인 것 마냥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각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강아지와 아기의 눈빛을 바라보며 인생이 던진 물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단 말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주'는 무엇이고 '보조'는 무엇이냐는 그 질문에 답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