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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일하기싫어 Sep 03. 2024

'아무튼, 웃어'

웃음을 파는 아이

웃음이 많은 아이가 있었다.

장난도 많이 치고 재밌는 농담도 많이 하던 아이였다.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웃을 일이 많았다. 웃음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 즐거웠다. 웃음이 많고 재밌는 아이는 점차 여러 웃음의 구심점을 자처했으며 즐겁게 웃기 위해서 조금의 희생과 노력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그 웃음은 곧 아이의 즐거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웃음에 대한 노력은 소년을 거쳐 성인이 되면서 여러 방면으로 다양해졌다. 해가 넘어갈 때까지 동네 곳곳을 뛰어놀고 장난치던 아이는 이젠 여행, 단체 모임, 술자리 등 새로운 공간과 다양한 사람들 틈에서 웃음이 주는 즐거움을 찾아다녔다.

다양해진 웃음을 향한 의도치 않은 일방적인 노력 탓이었을까. 성인이 된 아이는 예전만큼 웃질 않았다.


의도 없는 웃음은 없었다.

웃음에는 대가가 필요했다.

아니. 그냥 웃는 일은 없어졌다.


웃음이 많던 아이는 커서 웃음을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웃음을 파는 직업의 웃음 가격은 정찰제가 아니라서 제각각 물건을 파는 사람 마음이다.


웃음은 언젠가부터 상품의 부가적 필수 옵션이 되어 판매되고 있다. 상품이 제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웃음이 같이 제공되지 않으면 그 상품은 별로라는 낮은 평가의 꼬리표가 붙어진다.

분명 제화를 팔지만 웃음도 부가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웃음은 공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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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로 제공되는 내 웃음.

공짜여서 그런지 가볍게 여겨진다. 감정을 배제한, 무제한 공짜 웃음.


한쪽에서의 웃음만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웃음의 거래는 이기적이고 날선 감정 전달과 함께 이루어지는 불공정 거래이기 때문에 늘 남는 게 없이 공허하다.

웃음 거래에서는 내 기분,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최대한 지하 밑바닥에 묻어야 된다. 감정이란 친구는 뒤척임이 심하고 때론 꿈틀거림이 제어하기 힘들 만큼 요동친다. 감정을 깊게 묻을수록 골은 깊어져 다시 메우기 어려워진다. 깊은 골은 흉터처럼 새겨진 뒤 먹먹해진다. 새로운 곳에 또 감정 친구를 깊게 파묻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동안 감정의 골은 여러 갈래 찢겨 더 큰 강줄기를 이뤄 자리 잡는다.


너무 깊게 묻어 감정을 되찾기는 어렵다. 감정을 한동안 찾지 못한 탓인지 눈빛은 흐리멍덩해졌고 목소리 음에 낮이 변화가 없다. 입꼬리는 수평으로 단단하게 고정되었고, 웃음의 깊이는 얕아졌으며 가식적으로 변질되었다. 경직된 안면 근육에서 이제는 진짜 웃음을 찾을 수는 다.


웃음의 종류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너털한 웃음, 호탕한 웃음, 함박웃음, 박장대소, 깔깔깔, 호호호 등 웃음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아이는 그 수많은 웃음 중에서 무미건조한 웃음을 짓는 어른이 되었다.

웃음 속에서 즐겁게 따라 웃던 아이는 이제 다른 사람의 웃음소리가 신경 쓰인다. 같이 웃자고 권유하지만 웃는 법을 잊어버렸다. 재갈을 물린 듯 단단히 고정된 입꼬리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소리만 내어 장단에 맞춰 겨우 웃어 보인다.


피곤해 보인다는 괜찮냐란 안부 물음은 이내 곧, 그래도 웃음지라는 명령으로 전달된다.

"아무튼, 웃어."

웃질 못하는 이유를 걱정스레 주변에서 묻기도 하지만 이유를 대답하기에는 너무 깊게 묻어버린 감정부터 되찾아야 했기에 질문에 답하는 걸 포기해버린다.


돈을 버는 대가로 웃으라고, 직업정신이라 누군가는 말한다. 웃음의 대가는 명세서라는 종이에 아라비아 숫자로 바뀌어 매달 정해진 날에 지급된다.

웃음이 많은 아이는 커서 웃음을 팔아 돈을 벌어 살아간다.


웃음이 많던 아이는 이제는 남들과 함께 웃고 즐겁기 위해 웃지 않는다. 무표정으로 겉포장을 하고 버티기 위해 속으로 웃는다. 메마른 표면 속, 또 다른 얼굴을 안쪽 깊숙이 돌려 한없이 아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희미한 청색 불빛을 품고 있는 웃음 많던 아이를 바라본다. 청색 불빛을 지키고 얼마나 웅크렸는지 미동조차 없다.


그런 아이에게 환한 미소로.

어릴 적 그리웠던 맑은 웃음으로 웃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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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 아무튼 웃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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