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나를 육성하기,마주침,풍속,수면 아래,뿌리,질주,느림보, 썰물
41일 차
발바닥
내 몸이지만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일은 드물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너무 가까이 있어서 몰랐던' 건 사실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특히 나의 몸에 대해서 잘 몰랐다.
나는 달릴 때 오른쪽 발에 자꾸 힘이 더 실린다. 발바닥보다는 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는 편이 안정적이다.(하지만 발목 건강, 무릎 건강에는 좋지 않으니 자세 교정이 필요하다) 발바닥 아치가 선명한 편이라 달릴 때 발이 안쪽으로 말리는 것 같다. 발구르기에 집중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손에도 힘이 들어가서, 나 자신이 손과 발로만 존재하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 든다. 차오르는 숨과 부족한 근력에 명치가 내지르는 비명에 몸속에 무언가 들어 있다는 당연하 사실을 인지하게 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손발에만 집중되는 순간도 있다. 손바닥은 몸의 축소판이라고도 하니 손에 집중하면 사실 온몸에 집중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운동이 끝나고 돌아오면 나도 모르게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된다. 허벅지가 보다 단단해졌고 조금 튀어나오게 되었다. 종아리에 힘을 주면 이전에 없던 세로 선이 생긴 걸 확인할 수 있다. 발등의 근육과 핏줄이 선명해졌고 양 팔뚝 안쪽이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강릉의 어느 모래사장에서 내 발자국을 남기고 그 흔적을 살피는 놀이를 한 적이 있다. 모래 위로 남은 내 발자국은 매끈하고 평평했다. 지금 내 발바닥을 들여다보니 주름이 가득하다.
나를 육성하기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씻고 자고, 점심 대신 마늘빵을 먹고 또 자고, 그렇게 누워서 낮을 보내다가 벌떡 일어나 저녁을 차린다. 요즘 내 일상은 오늘처럼 욕구에 충실한 단순한 삶이다. 하루 종일 먹고 자는 일을 위한 부가적인 노동만 해도 시간이 다 가는데 어떻게 사람들은 그 많은 일을 다 하고 사는 건지. 그래서 다들 먹고사는 일이 제일 어렵다고 말하나 보다. 일하고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스스로를 먹이고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해줘야 하는 현대인의 일상은 단단히 잘못된 게 아닐까? 먹고 살아낸 후에 남는 시간에 일하고 공부하면 우리는 보다 행복할지도 모른다.
갑자기 든 생각. 어릴 때 많이 하던 육성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처럼 나를 키우는 건 학대이고, '심즈'처럼 나를 키우면 건강한 일상이 가능한 것 같다. 그때그때 욕구에 충실하면서 두서없이 떠오르는 욕망을 바라보며 사는 요즘의 내가 꼭 심 같아서 무심코 머리 위에 초록 다이아가 떠있는 건 아닌지 팔을 휘휘 저어 보기도 했다.
저녁으로 큰맘 먹고 사온 난을 데우고 태어나 처음으로 카레를 만들어보았다. 정말 간단하지만 든든하다. 사실 한국식 카레를 싫어해서 사춘기 이후로는 거의 안 먹었는데, 혼자 지내다 보니 엄마가 어릴 때 해주던 카레맛이 그리워 인도식 커리 가루 대신 오뚜기를 썼다. 하지만 엄마가 만든 카레와는 맛이 달랐다. 같은 믹스, 비슷한 재료인데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 엄마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 엄마가 아닌 내가 스스로를 돌보려니 어딘가 허전하다. 엄마만큼 나를 잘 돌봐줄 사람은 없을 거야 아마.
마주침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가 매일 보는 개를 또 보았다. 매일 묶여 있는 것 같고 외롭고 무료해 보여서 나도 혼자이니 서로 친구가 되면 참 좋을 텐데 싶었다. 하지만 문이 활짝 열려있다 해도 남의 집 담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커다란 친구의 공간에 함부로 침입하는 것도, 심지어는 날 보며 꼬리를 흔들고 가까이 오고 싶어 하는 듯 보여도 나에게는 다 안 될 일이다.
멀리 바닷가에서 해녀마켓 담장 위를 걷고 있는데 담장 앞에 잠시 주차했던 차 때문인지 온 동네가 울리도록 짖던 이 친구가 나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아주 먼 거리인데도 확신이 들었다. 개가 짖는 걸 멈추고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선은 정말 만났을까, 아니면 우연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나는 내일 또 멀찍이 서서 너에게 손 인사를 건네겠지.
42일 차
폐허
물에 잠겼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바위들 위에 올라서면 폐허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흐린 날씨 탓에 보다 창백한 바위들, 말라버린 이끼, 최근 수위가 높지 않다 보니 드러난 지 오래된 바위틈에서는 공기의 습기와는 무관하게 하루살이조차 발견되지 않아 더욱 폐허 같다.
잠겨 있거나 젖어 있을 때는 두려워 오를 수 없었던 장소에 발을 디디고 큰 새가 늘 머무르던 커다란 바위에 최대한 가까이 가보았다. 나는 오를 수가 없는 거대한 바위. 바다가 깊어지면 새는 다시 이 바위 위로 돌아올 테지. 사람들이 바닷물에 뒷걸음질 치면 새들이 그 자리로 찾아온다. 사람들에게 잊힌 땅은 어쩌면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다가갔다가 물러섰다가 하는 땅이야말로 그 반복 속에서 점점 황폐해지는 게 아닌지. 그럼에도 새들은 사람들이 떠날 때마다 다시 찾아와 생명력을 빛낸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반복 속에서 일렁이는 자연은 늘 아름답다.
풍속
잔뜩 흐리더니 결국 폭우가 내린다. 예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나는 방에 혼자 있었고 갑작스러운 폭우에 창을 닫았다. 책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차디찬 창에 이마를 대고 빗속에 누워 잠드는 상상을 했다. 깨어날 날을 정하지 않은 그런 편안하고 깊은 잠을 위해 가지런히 손을 모아 가슴에 얹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온몸으로 맞으며 천천히 아래로, 아래로, 저 아래 풀밭에 안착하기를.
무서웠다. 너무나 평안해서 더 무서운 상상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해선 안 될 생각을 해버린 그날, 나는 스스로가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살고 싶어졌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잠들지도 못할 정도로 불안한 그런 날들을 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저 다르게 살고 싶었다. 그날 나는 초조한 심정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를 하진 못했지만 무슨 일이냐는 메시지를 받고서 조금 진정했다. 괜찮지 않았지만 이젠 괜찮다는 답을 보내고 다급하게 학교 상담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상담을 신청했다. 가능하면 선생님께 다시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다행히도 그날의 나는 물리적으로는 혼자였지만 도움의 손길이 도처에 있었고 그 손길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와 연락을 끊고 지냈던 2주 정도의 시간, 그리고 진정하는 데 필요했던 다음 2주의 시간. 나는 2주일에 한 번 방문해도 될지 물었던 바로 전의 방문이 무색하게 바로 다시 매주 병원을 다니기로 했고, 약이 늘었고, 다시 상담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J언니에게 휴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건 분명한 선언이었고 우울증에 대항함에 있어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투병 방법이었다. 버티는 것 외의 유일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방에 혼자 있고 몰아치는 비바람에 창을 굳게 닫았다. 서늘한 창에 이마를 대고 흔들리는 가지를 따라 풍속을 헤아려보았다. 그날과 달리 오늘 나는 한껏 게을렀고 이 방에는 책상이 없고 나는 가끔 안 먹던 콜라도 마신다. 비스듬하게 서서 방안까지 스며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더는 무서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이 지나간 날이 되어가고 있다. 길고 길었던 투병기가 일종의 소강상태를 맞이하고 있다. 나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수면 아래
방에 가득 찬 바람 소리, 빗소리. 바닷가라 그런지 수풀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도 파도소리를 닮았다. 그래서 꼭 내가 커다란 수조 속에 있는 듯하다. 수면(睡眠) 아래 들지는 못했지만 수면(水面) 아래에서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거대로 좋지 않을까. 폭풍 한가운데서 혼자 지새우는 밤은 무서울 것 같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바람소리가 자꾸만 물결소리로 들리고 창 너머로 일렁이는 작은 빛들도 수면 아래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안락하고도 거친 어머니의 품속 같다. 나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그런 어머니. 내가 정연희 작가의 소설에서 발견했던, 양가적이고 욕망으로 요동치는 괴물적인 어머니라는 공간 한가운데 홀로 또 같이 있다.
43일 차
뿌리
어제 폭풍 속에서 과식하고는 체해버렸다. 밤에 홀로 아픈 배를 부여잡고 있으려니 서러웠다.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한테 아프다며 어리광을 부렸다. 사실 그렇게 걱정할 정도로 심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었다. 교환학생을 가서 평생 겪어본 적 없는 심한 감기몸살에 시달려 사흘 정도를 내리 누워만 있을 정도로 앓았을 때는 엄마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차마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서도 실은 많이 아팠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너무 많은 일에 시달려 힘들고 괴로웠을 때도 나는 엄마에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지척에서 이불에 얼굴을 묻고 울었고 내 우울의 깊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거짓말을 했다.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약해 보이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만 그게 후일에 엄마에게 더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말하고 전해야 하는 것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금방 지나갈 아픔부터라도 조금씩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침이 되어도 체기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내 말에 엄마는 죽 먹고 가만히 집에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걱정 섞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정반대의 생각을 했다.
나가서 좀 걸으면 좋아질 텐데. 오늘 달리기는 무리지만 몸 때문이 아니라 강풍 때문에 무리야. 대신 많이 걷고 와야지.
그래서 폭풍이 휩쓸고 간 해안을 걷고 또 걸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산산조각 나면서 씻어 말린 솜처럼 하얗고 보송하게 변해가고 있었고 바다는 그런 조각난 하늘을 비추기엔 더 많이 조각나 있었다. 파도가 거칠어서 수면 아래를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그 속에서 유채꽃은 아프면 더 꼿꼿해지는 나와 같았다. 어제의 그 난리에 뿌리가 뽑혔어도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텐데 가느다란 줄기를 길게 뻗은 유채꽃이 몸통이 굵은 나무만큼 굳건히 서 있었다. 강한 바람에 땅에 닿을 듯 흔들리고 눕기도 했지만, 어떤 줄기는 자국이 남도록 누웠지만, 가장 처참한 무리에도 꺾인 꽃은 없었다.
내가 유채꽃이라면 어제 그 비바람을 타고 도로시처럼 어딘가로 날려가 버렸을 텐데 모두들 뿌리내린 그 자리에 흔들리고 누울지언정 여기 남았다. "나는 모투누이에서 온 모아나다."라고 비틀거리고 넘어지면서도 끝없이 주장하던 바다의 소녀처럼 나도 돌아갈 섬이, 뿌리가, 고향이 있기를 늘 바랐다.
거울바다
매일매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다의 빛깔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도 다르다. 올레길 바로 목전까지 차올라 바위 해안을 다 덮어버린 바닷물은 옆 마을 쪽으로 갈수록 동해바다처럼 맑고 투명한 빛을 띤다. 긴 해안에서 한 편의 바다에만 옥빛이 감돌고 그 부근에서는 땅에 고인 빗물에도 흐린 하늘이 아니라 푸른 하늘이 비친다.
바다는 하늘의 거울이고 빗물은 그런 거울을 땅에도 잠시 만들어 하늘에 사는 누군가가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보게 해주는 게 아닐까? 오직 반사된 것만 볼 수 있는 어떤 존재가 있다면 말이다.
질주
높은 파도가 줄을 지어 밀려오면 마치 물빛 산맥들이 질주하는 것 같다. 그 산맥들은 무엇이든 집어삼킬 듯이 압도해온다. 절벽에 서서 파도를 내려다보는 나에게도 그들의 땀방울이 튀고 이대로 질주하는 산맥에 올라타 깊은 바닷속으로 끌려들어도 무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삼켜져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라 바다로 갔다가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센 폭풍이 오는 날, 산맥을 타고 섬을 지나 뭍으로 돌아갈 거라는 상상.
44일 차
느림보
이제 가랑비쯤은 비도 아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가운데 달리는 것쯤,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는 생각에 개의치 않게 되었다. 바람에 떠밀려 달리는 것도 맞부딪히며 달리는 것도 다 좋다. 흐릴수록 달리기 좋으니까.
어제 산책을 시작할 때는 바다였던 곳이 산책이 끝날 때쯤엔 너른 바윗길이 되어 있는 신비스러운 변화를 경험했다. 여기는 시간의 흐름을 종잡을 수 없는 곳이다. 뭐든 반복되는 자연이 결코 변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사실. 도의 본질을 어렴풋이 느낀다. 이미 내뱉은 이상 그건 도가 아니겠지만.
오늘도 느리게 달리는 동안 바람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꼈다. 한 번에 달리는 시간이 길어지니 속도를 늦춰야 멈추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다. 그래서 자꾸 속도가 느려져간다. 그러나 나의 달리기 속도가 어떻든, 변덕스러운 시간은 즐겁게 나아간다. 가끔은 돌아오기도 하고 나를 기다려주기도 하면서.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이다. 다만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 수 없을 뿐이다. 이 우주에서 시간은 언제나 돌고 돈다. 그래서 느리게 달리면 오히려 앞서 달려갔던 것들과 다시 만나기도 한다.
썰물
어제는 썰물 때도 바다였던 곳이 다 드러나 오늘은 드넓은 바윗길이 되었다.
이대로 바다가 계속 물러나면 범섬까지는 가는 길이 열릴 것만 같다.
그런 날이 오면 범섬까지 달려야지.
쉬지 않고 달려야지.
그리고 아마 범섬 너머로
하늘까지 가는 길이 열릴지도.
땅과 하늘이 하나였던 태고의 세상이 열릴지도 모르지.
림, 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