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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 Oct 11. 2022

49-52일 차 : 다정한 여행, 사랑 노래

가볍게,재래식만찬,산책길,삼켜진다면,살아있는 세계,달구경,아직은 먼 타인

49일 차


가볍게


한 번에 뛰는 시간이 2분이 넘던 날 이 훈련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심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5분을 연달아 뛰고 있었다. 뛰다 보면 자연스럽게 숨이 차고 눈이 감긴다. 나는 참고 견딜 때뿐만 아니라 기분이 좋을 때도 눈을 감는 모양이다. 감은 눈꺼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나 남아있는 잔상처럼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숨이 찰 때만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걸 더 생생하게 감각하기 위해 눈을 감았나 보지.


준비운동을 하며 하루가 시작되고, 이렇게 뛰고 나면 하루가 끝난다. 1시간에 모든 것을 집중한 일상이 너무 가벼워서 참을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많은 것을 내던진 지금이 좋다.


다 지나고 사람들에게 꼭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지갑이 홀쭉해졌지만 나는 망하지 않았고 죽다, 라는 실행 불가능한 동사를 농담으로라도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게 되었으며 어떻게든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할 것이고 모든 것을 계속할 거라고. 살아낼 것이라고.



재래식 만찬


펜션의 다른 숙박객인 어른들께서 준비해주신 자리에 사장님들께서 나도 초대해주어 예상치 못한 만찬을 누렸다. 맛있는 음식들이 잔뜩이었지만 가장 좋았던 건 사장님께서 직접 하신 반찬들이었다. 집 앞에 핀 유채꽃을 그대로 따다가 깨끗하게 씻어 데친 나물을 처음 먹어봤는데 청경채와 맛이 비슷했다. 엄마도 종종 해줬던 고추쌈장으로 취향껏 간을 맞춰 먹으니 유채꽃 나물은 아주 밥도둑이다. 소금간을 좀 해서 비빔밥에 넣어 먹어도 맛있겠다.


댕유자 실물도 처음 봤다. 손바닥보다 큰 댕유자는 이 섬의 재래종인데 씁쓰름한 맛 때문에 먹을 수는 없지만 약재로 쓰이는 귤이다. 실제로 오일장에서 약초 파는 할머니들이 댕유자를 함께 판다고 한다. 임산부도 먹을 수 있는 천연 감기약으로 댕유자차를 마신다고도 하셨다. 사장님도 임신 중에 즐겨 드셨고 지금도 몸이 으슬으슬할 때 꼭 찾으신단다. 듣고 나니 삼춘이 나한테 진짜 귀한 청을 선물해주셨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외에도 제주 사람들의 경조사의 특징이라든지 그 특이성에 반영된 육지와는 다른 여자들의 어떤 지위라든지, 다르지 않은 시집살이나 아버지나 어머니가 여럿인 집이 예전에 많았다든지 하는 이야기, 그리고 '여자가 많은 섬'의 의미에 대한 시각 차이라든지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오일장에도 데려가 주신다고 하셨다. 사람 만나고 함께 하는 일을 많이 어려워하는 나지만, 데려가 주신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50일 차


산책길


집 앞 해안가로 나가면 바로 '흰돌밑'이 보이고 정면으로 범섬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흰돌밑과 범섬 가운데 '물새바위'(내가 붙인 이름이다)가 있다. 가장 좋은 전망이 물새들에게 주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일이다. 거기서 포구 반대쪽으로 먼저 걷는다. 비가 오면 항상 물이 고이는 길을 느리게 통과해 해안길 끝으로 가면 법환과 강정 두 마을 사이의 바다경계에 이른다. 두 면이 만나는 물길이라고 해서 '두머니물'이라고 한다.


두머니물에는 바위 해안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반쯤 숨겨져 있다. 그 계단 옆으로 난 좁은 길을 좋아한다. 막다른 길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다. 거의 나만 매일같이 방문한다. 거기 걸터앉아 통화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람과 햇볕 사이에서 바다를 바라보기도 한다. 해 질 녘이 되면 일몰을 후광처럼 두기에도 좋은 숨은 명소다.


이곳에 매일 방문하면서도 그 좁은 길의 끝까지 걸어 들어간 것도 커다란 바위들 위에 올라본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다음엔 계단 아래로 가봐야지. 긴 시간이 걸려 나에게 이 해안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모험이 시작되었다.



다정한 여행


이 해안에서 마주치는 모든 연인, 친구, 가족들은 친밀하다. 세상에 불행한 관계란 없다는 듯이 서로 애틋하고 다정하다. 집에선 손 하나 까딱하지 않던 남편이 기사가 되어 가사에 지친 아내를 여왕처럼 떠받들고, 서로를 향해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상처 주던 연인들이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서로 다른 길을 걷느라 소홀해지던 친구들이 발을 맞추어 걷고 학창 시절처럼 흔들리는 잔가지에도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혼자인 사람도 늘 멀리하고 멸시했던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된다.


함께인 것이 구속이기보단 기쁨이 되고 혼자인 것이 외롭기보단 가뿐함이 되는 곳. 내일이면 돌아가야 하는 손님들이 아쉬운 한숨을 토하던 순간이 인상 깊었다. 다시 돈 벌어야지, 밥 해야지, 하고 떠넘겨지는 의무들이 중년의 부부 사이에 끼어들면서 멀어지는 파도소리처럼 두 사람의 대화가 줄어들던... 그분들은 마지막 반나절을 잘 즐기고 안전하게 서울로 가셨을까?


폭풍에도 끄떡없던 유채꽃이 벚꽃이 날리듯 꽃잎을 자연스럽게 떨구기 시작했다. 유채꽃이 자라고 퍼지고 천천히 질 준비를 하는, 계절의 흐름을 함께했고 꽃이 지는 때까지 더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스스로 정했던 내 삶의 문장은 '일상을 돌아갈 곳이 없는 여행처럼.'

그러니 이곳을 떠나더라도 나와 나 사이의 대화는 부디 잦아들지 않기를, 파도와 바람 소리를 뛰어넘었듯 우리의 대화가 도시의 소음에도 묻히지 않기를. 끝나지 않는 여행 속에서.




51일 차


삼켜진다면


밤새 비가 오더니 바다가 엄청난 기세로 땅을 향해 밀려오고 있다. 이곳의 산책로는 바위 해안을 끼고 두 층으로 되어 있는데 저 파도는 바위 해안을 다 삼키고 이층인 유채꽃밭에까지 침투할 기세다. 우산을 쓸 수조차 없는 비바람 탓에 나가볼 수는 없었지만 집에서 창 너머로 광범위하게 포말을 일으키는 거친 파도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위용을 방증한다.

하얀 포말을 지켜보고 있자니 파도가 이 마을을 삼킬 듯이 달려오는 듯한 착각이 인다. 나는 겁이 많아 떨어지고 구르고 다치는 상상을 많이 하는데, 지금은 그런 고통보다도 순식간에 삼켜져 그대로 녹아내리는 형태의 소멸을 떠올린다.


바다가 꼭 살아있는 것 같다. 삼켜지기 전에 내가 먼저 등불을 들고 제페토 할아버지처럼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닐는지.


그런 감상에 빠져 있다가 비가 약해질 때쯤 돌풍을 가르고 잠깐 나갔다 왔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이 얼굴을 적시도록 놔두며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 가까이서 보니 파도가 더욱 거세다. 온 바다가 하얀 포말로 뒤덮였고 끝도 없이 새로워지고 있다. 바다의 위세에 밀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이 바닷가에서 맴도는 생명이 있었다. 아주 낮게, 날갯짓을 조금이라도 멈추면 곧바로 바다에 곤두박질칠 듯한 높이에서 새들이 바람을 타고 있었다. 조금만 서툴면 바람이 아니라 파도를 타게 될 것 같은 위태로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가느다란 날갯짓.


산책로를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던 땅의 나비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는데 바다의 새들은 여전하다.

그러고 보니 그 나비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바닷가의 생명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나비에게도 저 파도와 바람을 피할 집이 있는지. 잔뜩 오그라든 꽃잎 사이에라도 들어갔을지 어떨지.



살아있는 세계


몰아치는 서늘한 바람, 뜨거운 볕, 빗물이 고인 바다. 계절을 알 수 없는 낮이다. 부서지는 파도로 인한 물안개탓인지 포말에 반사된 햇빛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해안가에만 뿌연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바다는 처음 보는 암녹빛이고 저 멀리 서쪽에서 먹구름들이 또 매섭게 다가온다. 무엇이든 찢고 삼키는 괴물의 아가리처럼 높고 무거운 파도가 끝도 없이 밀려온다. 태풍이 오면 가장 먼저 큰 타격을 입는 이 마을은 기상 뉴스의 스타라고들 했지.


늦여름이나 초가을이 아니더라도 3월 말쯤에는 늘 이런 변화무쌍한 날씨와 거친 바다를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설문대할망이라면 분명히 이런 바다로 발을 디뎠을 것이다. 종잡을 수 없는 뒤섞인 시간의 섬은 신비로우니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겠지. 일출과 일몰의 빛깔조차 비슷해 이곳의 새벽과 저녁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이니.


점점 이곳이 더 좋아진다. 숨 쉬는 자연과 깨어있는 신화들, 지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52일 차


달구경


새벽 5시가 넘으면 마당의 가로등이 일제히 꺼진다. 올레길의 은은한 가로등은 켜져 있지만 내 방에서 달빛을 만끽하기엔 나쁘지 않은 어둠이 찾아온다. 아침과 새벽의 경계가 되는 그런 시간이다. 달리러 나가기 직전이기도 한 이 시간은 늘 두근거린다. 요즘은 구름이 두터워 별을 보기엔 적절하지 않지만 그래도 밝은 달과 금성만은 구름 틈에서도 빛을 낸다.


범섬 바로 위에서 눈썹달이 구름에 가리었다가 다시 얼굴을 드러내기를 반복한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고 어느새 검푸르던 하늘이 푸르스름한 회색빛으로 밝아온다. 그러면 달리러 나가면 된다. 해와 달이 자리를 바꾸는 때에 달리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아침으로 도약할 수 있다.




사랑 노래


운동할 때 항상 듣는 노래 목록이 있다. 몸이 데워졌을 때 숨을 뱉듯 흥얼거리면 그 노래들이 다 내 얘기 같다. 예전에도 가사에 몰입하고 이입한 적은 많지만, 지금 다른 점이 있다면 흔한 사랑에 대한 가사들이 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로 들린다는 점이다. 내가 이런 나인 것은 운명이고 스스로를 믿는다면 불구덩이도 두렵지 않다고 가사를 빌려 진심 어린 허풍도 떨 수 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매번 함께 해주고 일으켜줄 사람을 찾으면 나 자신에게 힘내라고 외치는 나를 발견한다. 어쩌면 사랑하는 연인에게 기대하는 모든 것은 가장 가까이에서 늘 그래 줄 수 있는 단단한 나에게 기대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을 모르고 사랑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일까봐 늘 두려웠는데 요즘 들어 조금씩 사랑이 무엇인지 어린아이처럼 배워나가고 있다. 스스로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내가 사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자책했던 소중한 사람들, 그들이 한 명 한 명 떠오르고 보고 싶다. 좋은 걸 보면 함께 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다 그리움이고 정이고 사랑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표현하게 되기까진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나에게도 사랑이 있다고 스스로를 좀 더 믿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먼 타인


나는 새벽에 나가고 이른 오전에 나가고 해가 질 때 나간다. 외식도 하지 않고 카페에도 혼자서는 가지 않는다. 특히 사람들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오후에는 잘 나다니지 않고 주말에는 더 일찍 움직여 오후엔 웬만하면 집에 틀어박힌다.

이런 조심성과 대인기피증에 가까운 일상은 복잡한 원인들에서 비롯되었다.


미세먼지는 불가피한 오염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시켰고, 펜데믹은 타인에 대한 경계심과 편견을 극대화시켰다. 이들은 내가 도시를 떠나 이 한적한 곳에 와야 했던 중요한 계기였다.


하지만 오늘은 힘이 넘치고 여운이 남는 소설도 읽어서 꼭 낮에 나가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내 기분을 따라나섰다. 나가보니 지역축제에, 주말에, 날 좋은 한낮...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방문객이 많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나는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피해 무수히 많은 반원을 그리며 둘러 걸었다. 잔잔하고 짙은 바다를, 따스한 햇빛을, 간지러운 바람을 따라 사람이 없는 나만의 아지트를 찾아서.


낯선 대중에 대한 과한 경계는 쉽게 누그러지지 않고 미워하고 탓할 일은 세상에 수없이 많다. 그래도 숨 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찾아내 멀찍이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니 사실은 그들도 나와 같은 이유로 잠시라도 숨통이 트였으면 해서 이곳에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많은 쓰레기에 다시 실망하기도 했다.


사람들과 섞여 들기 까진 아직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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