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현 Oct 11. 2022

57-60일 차 : 바람의 말 바람 속의 말,봄이면달래

탄력성,깃털,일렁임,잠녀,멈출 줄 알기,수면,끈끈,작고사소하고경이로운

57일 차


몸과 마음의 탄력성


달리기는 체력, 근력, 유연성을 향상시킨다. 물론 유연성은 전후로 틈틈이 늘려주기도 해야 한다. 다치지 않으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역시 달리기를 하면서 얻은 가장 큰 보상은 탄력성이다.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의 부분 부분이 굳어 있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찌뿌둥한 감각이 아니라 몸이 덜 깬 상태라는 걸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둘이 뭐가 다른가 하면, 몸이 깨어나면 예전과 같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 다르다.


그렇다. 운동은 내 몸을 믿게 되는 일인가 보다. 알아가고 더 나아지게 하고 마침내 믿어주는 일이다. 아직 연약하고 부족한 몸이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어주고 설령 오늘은 좀 나빠지더라도 내일 다시 회복될 수 있다고 믿는 일. 그런 탄력성을 기르는 일.

급한 성질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호흡하고 반동이 아닌 근력으로 몸을 움직인다. 들이마시고 잠시 멈추고 천천히 내쉰다. 이제는 달리면서도 차오르는 숨을 다독이고 안정시킬 수 있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조금 늘어났다.



깃털


예쁜 새를 발견했다. 배는 붉은빛이 도는 갈색이고 몸은 청회색이다. 신비롭다.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빛깔을 가진 동물은 그 자체로 신비롭다. 여러 빛깔이 배색된 것이 아니라 깃털 하나하나가 쉽게 설명되지 않는 섬세한 빛으로 잔잔한 색의 흐름을 만든다. 거울 같은 바다와 달리 새의 깃털은 그 자체로 여러 빛을 낸다.


어느 날엔가 긴 다리를 가진 새가 사라졌고 저녁이면 저 푸른 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철새였던 걸까. 참새나 멋들어진 까마귀와 달리 물새는 만날 날이 정해져 있나 보다.


깃털 하나하나가 제각각의 빛깔로 맵시 있는 옷을 직조해내듯, 자연은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에 온 감각을 활짝 열어두면 나도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바람의 말, 바람 속의 말


낮에 제주삼춘과 남사장님이 사람들을 모아 자리물회와 자리돔 소금구이를 대접하셨다.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지만 대접해주신 거라 감사히 먹었다. 자리물회는 고수도 들어간 것 같고 원래 시큼 시원하게 먹는 거라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냉면 좋아하고 회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일 맛이었다. 식초로 간을 한다는 말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나에게는 굵은소금에 구운 생선이 입에 맞았다. 원래는 고등어나 삼치가 아니면 생선구이도 거의 손대지 않는 편인데, 비린내 하나 없고 부드러운 맛에 놀라 돔을 싫어하는 내가 손바닥 반 만한 생선을 두 마리나 먹었다.


그 자리에 이십 대는 나뿐이고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셨는데 다들 이 섬의 볕 아래 살아오신 분들이라는 걸 증명하듯 단단해 보이는 갈색 피부와 선명한 주름, 작은 체구를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그들의 말은 바람에 먹히지 않기 위해 크게 외치는 듯한, 빠르고 생략된 것이 많은 듯한 그런 소리로 다가왔다. 나는 오가는 대화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내 이름조차 바람처럼 스쳐가서 여러 번 듣고서야 날 부른 걸 알았다.


홀로 저녁 산책을 나오니 이 섬의 말을 만들어낸 돌풍이 귓가를 스쳤다. 어우러진 파도소리도 결국은 바람소리의 연장이 아닌가. 나무, 꽃가지, 물을 흔들고 내 온몸을 훑으며 강하게 속삭이는 바람의 말은 바람 속에서 오가는 말들처럼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오늘도 나를 웃게 만들었다.




58일 차


일렁임


어제는 고인 물이 바람에 일렁이는 걸 지켜보았고 오늘은 흐르는 잔물결을 바라보았다. 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어느새 내 발밑에도 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바윗길로 넘쳐흘러 내 발밑까지 넘실대고 있었다. 그 물도 흘러 흘러 멈추지 않는 잔물결을 일으킨다.


빛과 공기가 물에서 만나 만들어내는 둥근 물결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공간에서 홀로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다. 시계는 멈췄는데 시간은 흐른다면, 도시는 멈춰버렸는데 세계는 계속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멸망이 찾아와도 시간은 흐른다. 삶은 내가 끝나지 않으면 계속되고, 내가 사라져도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고 커다란 새가 아침해와 함께 날개를 퍼덕일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의 일렁임이라도 존재한다면 모든 것이 멈추고 사라져도, 시간은 흐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왜인지 위로가 되었다.



잠녀


지구가 아름다운 푸른 별로 불리듯 초록은 싱그러운 생명력의 상징이다. 만조 때 볼 수 있는 검은 물결과 그 아래의 숲, 해수면의 초록 얼룩은 바다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이 마을과 바다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 섬, 제주도에서도 가장 청정한 해안 중 하나로 보호되고 있다. 아직 사람에 의해 이름 붙여지지 않은 많은 생명들이 수면 아래 살고 있다고도 한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이 마을 사람들은 계를 이루고 조합을 이뤄 공동으로 해안과 수면 아래 숲에 숨 쉬는 생명을 빌릴 권한을 갖는다. 사람이 정한 규칙과 권한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기도 하지만, 사람을 막을 수 있는 건 역시 사람일 수밖에 없는 시대이므로 어쩔 수 없기도 하다.


그을리고 단단해진 피부는 염분과 바람으로 무두질되어 건조하고 거친 가죽으로 가공되고, 미끄럽고 날카로운 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작은 몸은 바닷속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든다. 그 몸들을 언제까지나 바다가 안전하게 품어젔으면 좋겠다. 이젠 누구도 이어가려고 하지 않는 바다와의 관계를 바다만은 빼앗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봄이면 달래

어제 삼촌이 몇 번이나 달래장을 가져다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바로 오늘일 줄은 몰랐다. 달래장만 갖다 주신 게 아니고 손질된 달래, 김, 단호박식혜까지 가져다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전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친인척도 아닌데 나를 조카라고 불러주시고 이렇게 챙겨주시기까지 하는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몇 번이나 인사를 드렸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로는 이 마음을 다 담을 수 없어 같은 말이라도 몇 번을 반복했다. 참, 살얼음이 낀 감귤착즙주스도 주셨는데 서울 어디 카페에서 파는 스무디보다 훨씬 맛있었다. 착즙기로 직접 짜서 얼려 담아오셨단다. 살얼음이 녹을 새라 바로 마셨는데 양도 어찌나 많은지 따로 간식이 필요 없었다.


저녁은 구운 김으로 김밥을 싸서 먹었다. 김밥 속으로 오일장에서 얻어온 무장아찌를 넣었다. 달래장을 뿌려 먹으니 자극적이면서도 건강한 맛이다. 생각과 달리 이로는 잘 잘리지 않아 가위로 잘라먹었다. 봄기운을 입에 한가득 머금은 듯했다. 입에서 특유의 향이 싸하게 퍼졌지만 난 혼자 사니까 뭐 어때 싶다.


매일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그런 봄의 맛이다.




59일 차


멈출 줄 알기


어제부터 오른쪽 발목과 종아리에 바깥쪽으로 뻗치는 듯한 통증이 있어 달리기를 쉬어야 하나 한참 고민했다. 파스를 붙이고 스트레칭을 틈틈이 해줬는데 약발이 들어 통증이 줄었을 뿐 아침까지도 낫지 않았다. 그래서 2시간 동안 몸을 풀고 새로운 주법을 공부했다. 역시 뛰어보니 확실히 아파서 10분만 뛰고 새로 배운 주법 연습 자세로 걷기 운동을 하다 5분 정도만 가볍게 뛰고 돌아왔다.


매회차마다 들었다. 조금이라도 무리가 가면 즉시 달리기를 중단하라는 말을. 1분만 더 뛰면 끝난다는 식으로 참지 말라던 말들. 그 경고를 어기고 기어코 10분을 채우고 또 뛰고 그랬던 일이 바보 같은 짓인 걸 안다. 그래도 멈추었고 달리느라 여유롭게 보지 못했던 일출을 담장 위에 걸터앉아 오래도록 감상할 수 있었다. 달려야 했을 15분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해를 맞이하는 순간으로 바뀌었다. 잠시 멈추어도 되는구나, 완전히 멈추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주며 다음 달리기를 준비하면 되는구나.


돌아오는 길에 매번 급하게 인사만 하고 지나쳐야 했던 강아지를 쓰다듬어주니 아주 좋아했다. 다만 털갈이 중인지 털이 너무 날려서 돌아선 후에 열심히 털고 집에 오자마자 손을 씻어야 했다. 못된 알러지.


오늘은 달리는 법 중에 잠시 멈추는 법을 배웠다. 달리기를 멈춘다고 내가 정말 멈춰있지는 않더라. 그냥 달리는 일 말고 다른 걸 할 뿐이다. 삶은 쉽게 망하지 않는다.



수면 아래


해리포터 시리즈보다도 나를 깊게 매료시켰던 소설은 나니아 연대기이다. 좋아하는 장면들이 잔뜩 있는데, 그중에서도 루시가 배에서 바다 밑 인어소녀를 향해 인사를 하는 장면을 무척 좋아한다. 루시는 처음 만난 그 소녀와 자신이 함께였다면 분명 절친한 친구가 됐을 거라고 확신한다. 

바위틈에 고인 맑은 바닷물을 살필 때마다 루시의 기분을 알 것 같다. 너무 맑아서 바위의 굴곡 하나하나, 특유의 거칠고도 미끈한 질감까지 눈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물이 맑다. 저 수면 아래에는 꼭 누군가 살고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주 행복하거나 혹은 아주 지칠 때, 다른 세상에 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서울에서는 주로 잠실철교를 걸으며 귓가에 엄청난 소음을 내며 스쳐가는 지하철 유리창에 뛰어드는 상상을 했다. 유리 너머에는 앨리스가 갔던 거울나라 같은 어떤 이상한 세계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요즘은 저 수면 아래 바위 세상에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저곳은 아마 소인국일 테지. 아니면 나니아로 연결되어 있을까? 루시가 아직도 시간이라는 거인과 함께 살고 있을 나니아. 그런 세상이 이 지구에도 있다고 생각하면 외로움이 가신다.



끈끈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한다는 건 단순히 곁에 머무른 것을 넘어 마음에,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일이다. 누가 여기를 참 좋아할 텐데. 누구한테 이걸 주면 정말 좋아할 텐데. 누가 이런 거 되게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런 생각들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다. 끈끈하다는 말은 이런 끈이 아주 많이 겹쳐져서 어딜 가나 무엇을 보나 누군가가 생각나는 그런 순간들을 가리킨다.


나는 우울을 나누면 배가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좋은 것들은 나누면 세 배, 네 배가 되니까. 그러니 뭐든 나눠보는 편이 좋겠지.




60일 차


작고 사소하고 경이로운


처음에는 펼쳐진 풍경에 정신이 팔려 하염없이 걸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주 작은 것들, 처음에는 눈여겨볼 겨를이 없던 것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물길이 막힌 바위틈에 새긴 얕은 호수를 들여다보다 아주 작고 재빠른 움직임을 포착한 건 그런 변화에서 비롯된 일이다. 만지면 물컹거려 오소소 소름을 돋게 하면서 손아귀를 빠져나갈 것 같은 검고 미끈한 생명체가 돌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약간 징그러우면서도 신기해서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더니 크고 작은 비슷한 생명들이 뾱하고 나타났다가 스르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봄기운이 개구리를 깨우듯 날이 갈수록 짙어지는 이끼와 해초들이 이들을 불러들인 모양이다. 그 어디에나 보이지 않아도 무언가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또 위안이 된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크고 장엄한 것보다 더 경이롭고 아름다울 수 있다.


이전 17화 53-56일 차 : 인사, 나비 해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