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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 Oct 11. 2022

64-66일 차 : 볕과 그늘, 얼굴들, 영감의 섬

한계 넘어서기,액자,책상이 있는 방,젖은 운동화,올레길 모험,조급함

64일 차


한계 넘어서기 : 유년기


어제 드라마를 보다가 늦게 잤더니 평소보다 늦게 눈을 떴다. 늦은 시간까지 깨지 않고 자고, 눈을 떠서 개운함을 느끼고, 약에 의존하지 않고 잠들고 일어나는 일. 그런 게 얼마만인지 몰라 조금 기쁘기까지 했는데 '그럼 오늘 달리기 해, 말아?' 이 생각이 퍼뜩 들어서 제대로 기뻐할 틈도 없이 스트레칭을 시작해야 했다.


아침 대용으로 단호박식혜를 한 잔 마시고 준비운동을 철저히 하고서 집을 나섰다. 일어날 일을 알아서 긴장감이 맴돌았다. 20분을 쉬지 않고 어떻게 뛰지? 신이시여...


준비 달리기 5분을 마치고 너무 숨이 차서 오늘은 몸이 무거운가 걱정이 되었다. 연이어 20분 동안 달리면서 정말로 한계라고 생각되는 순간들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도 완주했다. 다음 번은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어떤 한계를 확인했다. 달팽이가 자기 몸의 몇 배는 되는 면적의 결승선을 느리게 기어 완전히 통과할 때, 팡파레가 울리는 그 순간, 달팽이의 더듬이가 선 밖으로 튀어나간 아주 근소한 차이만큼, 딱 그만큼 나는 한계를 넘어섰다.


중학생 때였다. 교포였던 원어민 교사는 학생들을 미워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는 학생들을 그냥 싫어하는 수준을 넘어 호령하고 억누르고 싶어 했다. 그는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내가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게 만들었었다.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봐도 그의 기준에는 닿을 수가 없어서 목이 아팠다. 소심하고 목소리 작은 아이들은 소리 지르는 그에게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하루는 그 교사가 반 전체를 운동장에서 벌세웠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다거나 목소리가 작고 참여도가 낮았다거나 그런 사소한 이유였을 것이다. 잘못이 기억나지 않는 벌은 부당하다. 그날 부당하게도 우리는 영어 수업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달려야 했다. 몇 바퀴를 뛰어야 할지도 모르는 채로, 그것도 꼴찌를 하면 안 된다는 압박 속에서.


통통하다 못해 경도비만이었던 당시의 나는 몸이 무거웠고 목소리만큼이나 폐활량도 작았다. 그래서 고작 반 바퀴쯤 뛰다가 안 되는 영어로 더듬더듬 거짓말을 했다. 아프다고, 의사가 달리면 안 된다고 했다고. 나는 숨이 차서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고갯짓으로 교실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 순간에도 그는 권위적이었다.

교실로 돌아가니 천식이 있는 친구가 홀로 앉아 있었다. '너도?' 그 순진한 물음에 숨이 막혔다. 그 친구와 달릴 수 없음에 대한 거짓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 손은 불씨를 맨손으로 잡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그 뒤의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거짓말들이 오래도록 내 안에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더는 못 뛰겠다, 오늘은 포기하자, 그런 속삭임이 머릿속에 휘몰아칠 때 이 유년의 기억이 내가 버텨낼 이유가 되어주었다. 내 몸에 대한 나의 경멸을, 부끄러움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의 달리기는 한계를 넘는 도전이 되었다.


누가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근데 해냈다. 장하다, 대견하다.

기진맥진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이 아무것도 비추지 않은 채 빛을 산란시키고 있었고, 나는 이제 부끄럽지 않게 그날의 기억을 이야기할 수 있다.



볕과 그늘


요즘은 물이 많이 차오르지 않아서 바다보다 길에 가까운 바위들이 바싹 말랐다. 뜨거운 볕에 말라버린 바위에는 이끼도 자라지 않는다. 바다가 물러난 자리에 드러나던 녹지대의 면적이 줄었고 파도에 밀려온 갈색 해초 무더기도 저만치 먼 곳에 쌓였다. 해수면이 높을 때가 그리워 비를 기다리게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뜨거운 볕이 불러낸 생명력에 녹빛이 된 바위틈 호수들에서만 볼 수 있는 색이 있어 그 맑은 녹색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비가 오지 않았으면 싶다.


오늘은 바람이 차고 해가 뜨거워 닫힌 실내의 공기가 쉽게 데워지는 그런 날이다. 반면 뜨겁게 달아오르다가도 그림자가 드리우자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바위는 생각보다 변덕스럽다. 누가 바위더러 올곧다고 했는가. 이렇게 역동적인 존재인데. 해는 점점 길어져가고 밤공기는 상대적으로 더 차다. 이젠 더워지니까 앞으로는 저녁을 좀 늦게 먹고 천천히 나올까? 햇빛에 다리가 뜨거우니 그만 일어나야겠다.




65일 차


얼굴들


매일 보던 것도 갑자기 생경할 때가 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바위들이 산책로와 절벽 사이에 늘어져 있고 해가 떠오르자 울퉁불퉁한 그림자들이 드리웠다. 그 대중없는 그림자의 나열이 왜인지 얼굴들 같았다. 얼마 전에 주상절리를 봤는데 꼭 누가 조각한 것처럼 기둥들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꼴인 기이한 절벽이었다. 듣던 대로 꼭 이빨 같았다. 자연이 만들어낸 조각 공원. 그러나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각자의 각도로 자랐지만 면면은 반듯한 이빨들이 아니라 그 앞의, 피카소의 그림을 연상시킬 정도로 들쑥날쑥한 바위들이었다. 깎여나간 바위들이 만들어낸 그림이 꼭 얼굴들처럼 보였다.


그런 얼굴들의 모임은 언제나 절규나 분노 같은 감정으로 독해되곤 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조각조각 깨어질 것만 같고 아플 때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 본 얼굴들은 결코 깨지지 않을 듯이 견고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이유 없이 애상적이기도 했다. 내가 실수할 때마다, 아니, 실수하기도 전에 떠올리던 익명의 군중들, 그들의 시선이 떠오른다. 그 시선은 처음에는 날카롭고 서늘하다가 점차 단단해져 간다. 아는 사람들의 얼굴로 변해가는 군중들, 그들은 절대 파고들 수 없을 것 같은 단단한 낯으로 나를 보며 한껏 실망하고 있다. 그 얼굴들이 두려워서 나는 시작도 전에 많은 것을 포기하곤 했었다. 그래서 나에게 늘어선 얼굴들은 아무리 단단해도 슬프고 아프다. 그러나, 그 얼굴들이 나로부터 돌아서는 순간이 더 무섭다. 지루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왜 아무것도 하지 않냐고 하면 더 아프다.


그래도 나는 떨리는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기로 했다.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내 글을 읽어나가고자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읽어나가는 목소리는 점점 또렷해지고 단호해질 것이다. 마침내 고개를 들면 날카롭지도 단호하지도 않은 얼굴들이 자리하고 있기를 바라며 땀이 차는 손으로 종이를 생명줄처럼 부여잡고 나는 계속 읽어나가겠지. 내가 두려워하고 아파하면서도 주상절리를, 그 얼굴들의 환영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건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드러운 얼굴들을 기대해서였다. 분명 내가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소중한 이들은 그런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있을 거라고 믿어보기로 한다. 주상절리는 아름다웠고 그림자들은 표정 없이 일렁이며 영감을 주었다.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니 분명 고개를 들면, 다시 이 섬에서 내 자리로 돌아가면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액자


섭지코지에 있는 건축물에 대한 다큐를 봤는데 노출 콘크리트와 미로 같은 개방형 복도를 활용하여 제주의 풍경을 액자처럼 담아내는 건축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노출 콘크리트를 잘못 활용한 사례들을 보면서 꼭 버려진 공장처럼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제대로 활용하고 제대로 마감을 하면 무척 매력적인 디자인이구나 싶었다. 제대로 된 건축이나 실내디자인에는 정말 많은 예술적, 철학적 사유들이 담겨 있는 듯하다. 그런 건축물은 사람들이 그곳을 거닐거나 그곳에서 생활하면 그 의미가 달라지거나 깊어진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물론 설명 없이는 아무리 봐도 봐도 나는 잘 모르겠다는 게 아쉬운 지점.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인다.


산책을 하다 이름 모를 열매를 발견해서 자연스럽게 멈춰 사진기를 들이댔다. 나무 울타리 아래쪽을 감고 자라 있어서 의도하지 않았는데 울타리에 둘러싸인 범섬이 함께 사진에 담겼다. 경사진 곳이라 범섬과 수평선이 기울어져 버렸는데 쏟아지지 않는 바다를 담게 되었다.


올망졸망한 열매와 울타리, 그 너머로 보이는 기울어진 바다. 구도가 엉망인 이 사진을 크게 현상하면 어떨까 싶었다. 어느 날 사진 속 바다가 쏟아지면 나니아연대기의 한 장면처럼 액자에서 흘러넘친 바닷물을 타고서 이 해안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사진을 보면서 매일매일 기울어진 바다의 파도를 타고 이 섬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바랄 거야.



책상이 있는 방


어제 사장님이 새 가구들을 바로바로 내 방에도 넣어주셨다. 예전보다 높고 편한 탁자와 안락의자, 깔끔한 협탁이 생겼다. 드라마 하이킥 시리즈의 여자 방에는 책상이 없어서 여성들이 화장대에서 공부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기억이 난다. 가구는 정말로 중요하다. 사람의 행동을 좌우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괜히 자기만의 방에 대해 썼겠는가. 놀라운 작품을 쓴 여성 작가들이 자기 방이 없어 거실에서, 부엌에서 웅크리고 글을 써야 했던 시대를 떠올리면 세상에 처음부터 당연한 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작 책상 하나가 대수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왜 그 시대 가부장들은 그 대수롭지 않은 책상 하나를 재능 있는 여성들에게 줄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물론 내가 머무는 이곳은 아무래도 쉬어가는 곳이라 책상이 없었던 것뿐이다. 사장님의 탁월한 선택 덕분에 책상처럼 쓰기에 적합한, 높이가 맞는 탁자가 생기자 오래도록 의자에 앉아 생활하게 되었고 이번 달부터 하기로 했던 글 정리에도 속도가 붙었다. 다시 규칙적으로 노트북을 두드리는 생활을 하게 되니 집에 있는 큰 책상과 몸에 익은 의자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역시 책상은 소중하고 큰 변화를 위해서는 책상이라는 '대수롭지 않은' 가구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책상이 주어지고 모두에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이라도 하는 세상이라 다행이다. 어른이 되어도 모두가 책상의 가치를 잊지 않고 책상을 빼앗기지도 않는 세상이 되면 더 좋겠지.


좋은 환경에서 미리 써둔 조각글들을 모아 하나둘 정리하다가 블로그에 남아 있는 옛 여행기를 발견하고 낯이 뜨거워졌다. 원색적인 짜증을 낙타가 침 뱉듯이 툭툭 내뱉는 미숙한 내가 거기 있더라. 글에서 그 시절의 내가 너무 잘 느껴져서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분에 넘치는 타지 생활이 끝나고 귀국한 후에 얼마나 아프게 될지 짐작도 못한 채 푸념도 기쁨도 넘치던 그 아이가 조금 안쓰럽고 그립기도 하다. 그때는 책상의 소중함을 모르고 침대에서 빈둥거리고, 낯선 거리와 이국의 명소들을 누비며 그저 즐거웠다. 그 시절 내가 쓰던 널찍한 기숙사 방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오직 나만의 방이었던,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나만의 집이었던 그곳이.



젖은 운동화


근래 해수면이 낮다 보니 갑자기 바다에 가까이 가고 싶어 져서 그만 사고를 쳤다. 평소엔 신발 때문에 잘 가지 않았던 바윗길에 올랐다가 내 안에서 천 년에 한 번씩 발동하는 충동, 신중함을 날려버린 답 없는 충동에 불이 붙어버렸다.


처음엔 다가올 일을 모르고 신나게 사진 찍고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결국 젖은 바위를 밟고 미끄러졌다. 다행히도 엉덩방아는 면했지만 바다에 발이 첨벙첨벙 빠졌다. 물이 얕았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더 깊었으면 제대로 넘어졌을 테고 넘어지면 그대로 미끄러져서 뒤통수부터 바위에 떨어졌을 거다. 위험한 상황이었고 여기 와서 처음으로 바닷물에 발이 잠겼는데, 두 켤레뿐인 운동화 중 하나가 젖어버렸는데, 난 그냥 너무 웃겨서 한참 웃었다.


찰박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돌아오는 길에 엄마한테 운동화 세탁법을 물어보고 또 한바탕 웃다가 부엌 불에 야채를 잔뜩 담은 냄비를 올려두고 운동화를 찬물에 담가 두었다. 대강 빨아서 테라스에 내놓았는데 언제 마르려나. 둘 뿐인 내 운동화가 이젠 하나가 되었으니 내일은 물에서 모험 금지! 테라스 탁자에 말려둔 운동화 밑창을 보며 저녁을 먹다가 또 웃음이 터졌다. 바보 같은 행동도 여기서는 다 우습기만 하다.



66일 차


영감의 섬


모 대학 수시 자기소개서에 외돌개에 대해 썼었다. 보통 입시용 자기소개서면 활동이나 수상 내역에 초점을 둘 텐데 나는 정말로 내 내면을 소개할 생각을 했었다. 지금 돌아보면 순진했고, 그게 나다웠다. 결과적으로는 아주 장렬하게 1차에서 탈락해버렸지만 엄마와 호들갑을 떨며 내게 영감을 주는 섬 제주도와 피카소의 우는 여인을 닮은 외돌개에 대해 열심히 묘사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이제 외돌개 할망처럼 나 말고 바다를,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면서 대학에 가면 사람과 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임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단언했다. 열아홉의 나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도 나 자신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는 늘 틀어박혀 있는 아이였다. 원래 아이들은 작고 좁은 공간을 좋아한다. 식탁 아래나 가구와 벽 사이의 공간 같은 데 기어들어가는 건 예사고, 옷장이나 벽장은 아주 험난하고 재미있는 모험의 땅이다. 어릴 적 할머니 댁의 작은 방은 낮에는 아이들의 공간이었고 밤에는 마침내 부엌에서 해방된 며느리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공간이었다. 엄마와 작은엄마가 부엌에서 고생하는 줄도 모르고 언니와 나, 그리고 사촌동생들은 그 작은 방을 차지하고 어떻게 재미나게 놀까 궁리하기 바빴다. 그 방에는 뒤통수가 튀어나온 옛날식 텔레비전이 있었고 널찍한 요가 늘 하나씩 깔려 있었다. 그리고 방구석에는 이불이 든 문 두 짝짜리 장롱이 두 개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장롱의 맞은편에는 작은 협탁 위로 훔쳐보기 딱 좋은 위치에 창이 하나 나 있었다. 어느 날엔가 우리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옷이 걸린 오른쪽 장롱 말고 가로로 선반이 나 있고 빈 공간이 넓어서 이불이 층층이 쌓여 있는 장롱문을 활짝 열었다. 두툼한 이불을 한 장 꺼내 한두 명은 요 위에 누워 머리끝까지 이불로 덮어 숨고, 누군가는 약간의 공간이 난 장롱 속에 기어 들어가려고 애를 썼다. 어둠이 무섭기도 하고, 이불을 꺼내다가 다른 이불들이 흐트러져서 문 사이에 껴 장롱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기도 해서 세로로 긴 한쪽 문을 살짝 열어두고서 장롱에 들아간 아이는 숨을 죽였다. 방문을 닫고 그러고 있으면 방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누군가 가끔 마당에서 창을 들여다보는 기척이 나면 우리는 숨을 죽이고 킬킬거렸다. 없는 척하는 일이 왜 재미있었는지. 어른들 눈에는 보이지 않고 침범당하지 않는 아이들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게 그렇게 좋았을까? 당연하지만 밖에서 보면 여기저기 좁은 공간마다 몸을 욱여넣은 아이들의 모습이 다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어려서 모르니까 그저 즐거웠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는 훨씬 커진 덩치를 어디 숨기지도 못하는데 아직도 옷장 속 같은 공간에 숨어있고 싶어 한다. 이제는 나를 숨기려면 그 작은 장롱이나 이불속으로는 부족할 테니 그 작은 방을 통째로 차지하고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도 막아버려야 하는데도 그런 수고를 들이고 있다. 그것보다 나가는 게 보다 더 힘들기 때문이다. 내 알은 언제쯤 깨질까? 알도 하나의 세계라지만 나가보고 싶은데. 사실은 '그 안에 내 얼굴을 닮은 양초 하나 타고 있는 방이 있어'(김승희, 「달걀 속의 생」) 껍질이 다 깨져버려도 나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에 나를 사로잡았던 어떤 영감, 내가 좋아했던 책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 말하는 '오름'을 제주의 오름을 오르면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때의 기대는 지금도 유효하다. 제주도는 구름 한 점마저 그림이라며 탄성을 내질렀던 나의 사춘기 시절. 지금도 그 마음이, 느낌이, 감동이 여전하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이 섬을 여행하며 그린 그림을 보내주신 삼촌의 소식에 아, 역시 이곳은 오름의 섬, 영감의 섬이구나 했다.


이 섬은 수만 가지 얼굴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 면면을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조금씩 제각각으로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니 그 많은 사람들이 이 섬에서 영감을 얻어가고 활력을 얻어가더라도 끝없이 빛날 수 있는 거겠지. 섬 또한 그 마음들 덕분에 더 빛날 수 있기를. 그런 마음으로 이 섬을 대하게 된다. 감사히, 감사하게.



올레길 모험


신발이 한 켤레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물에서의 모험은 금지지만 산길에서의 모험은 가능하다. 나무터널을 지나 바다로 가는데 옷장 너머 나니아를 발견한 루시의 기분이 되었다. 법환에서 강정마을로 가는 올레길, 우거진 나뭇가지들이 이룬 터널의 끝에서 깎아지른 절벽과 함께 드넓은 바다를 마주할 수 있다. 그 산길에서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바다를 마주하면 벅차올라 말을 잃게 된다.




조급함


왜 끝이 보이면 조급 해지는 걸까?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나의 하루는 아주 천천히 흐르는데, 지금까지 두 달의 시간도 아주 천천히 흘렀는데, 4월이 된 이후로 계속해서 남은 날들이 빠르게 지나가버릴까 봐 초조하다. 늘 할 일이 있으면 불안해하고 빨리 해치워야 마음이 놓이는 나라서 마무리, 짐 싸기라는 중대한 일이 한 달 안쪽으로 다가오니 괜히 조급한 모양이다. 해야 할 일이 없는 날들이 지나가고 돌아갈 준비라는 큰 계획이 다가오고 있으니 불안한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곧 달리기 도전을 마칠 것이고 매일 조각글이나마 썼고 드물게 소설도 읽었다. 사진도 잔뜩 찍었고 과외도 스터디도 계속해왔다. 바다에도 빠져봤고 아무 데나 턱턱 걸터앉기도 해 봤고, 바위 위에도 올라가 봤고 절벽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기도 했다. 길치에 겁쟁이였던 내가 혼자 새로운 길을 나름 구석구석 다녀보기도 했지.


그러니 매일 심호흡을 하면서 조급함을 달래보기로 한다. 볕에 잔뜩 그을린 내 얼굴처럼 달라진 게 아주 많고 남은 날들도 애쓰지 않더라도 그저 좋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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