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발바닥
내 몸이지만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일은 드물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너무 가까이 있어서 몰랐던' 건 사실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특히 나의 몸에 대해서 잘 몰랐다.
나는 달릴 때 오른쪽 발에 자꾸 힘이 더 실린다. 발바닥보다는 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는 편이 안정적이다.(하지만 발목 건강, 무릎 건강에는 좋지 않으니 자세 교정이 필요하다) 발바닥 아치가 선명한 편이라 달릴 때 발이 안쪽으로 말리는 것 같다. 발구르기에 집중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손에도 힘이 들어가서, 나 자신이 손과 발로만 존재하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 든다. 차오르는 숨과 부족한 근력에 명치가 내지르는 비명에 몸속에 무언가 들어 있다는 당연하 사실을 인지하게 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손발에만 집중되는 순간도 있다. 손바닥은 몸의 축소판이라고도 하니 손에 집중하면 사실 온몸에 집중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운동이 끝나고 돌아오면 나도 모르게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된다. 허벅지가 보다 단단해졌고 조금 튀어나오게 되었다. 종아리에 힘을 주면 이전에 없던 세로 선이 생긴 걸 확인할 수 있다. 발등의 근육과 핏줄이 선명해졌고 양 팔뚝 안쪽이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강릉의 어느 모래사장에서 내 발자국을 남기고 그 흔적을 살피는 놀이를 한 적이 있다. 모래 위로 남은 내 발자국은 매끈하고 평평했다. 지금 내 발바닥을 들여다보니 주름이 가득하다.
나를 육성하기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씻고 자고, 점심 대신 마늘빵을 먹고 또 자고, 그렇게 누워서 낮을 보내다가 벌떡 일어나 저녁을 차린다. 요즘 내 일상은 오늘처럼 욕구에 충실한 단순한 삶이다. 하루 종일 먹고 자는 일을 위한 부가적인 노동만 해도 시간이 다 가는데 어떻게 사람들은 그 많은 일을 다 하고 사는 건지. 그래서 다들 먹고사는 일이 제일 어렵다고 말하나 보다. 일하고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스스로를 먹이고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해줘야 하는 현대인의 일상은 단단히 잘못된 게 아닐까? 먹고 살아낸 후에 남는 시간에 일하고 공부하면 우리는 보다 행복할지도 모른다.
갑자기 든 생각. 어릴 때 많이 하던 육성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처럼 나를 키우는 건 학대이고, '심즈'처럼 나를 키우면 건강한 일상이 가능한 것 같다. 그때그때 욕구에 충실하면서 두서없이 떠오르는 욕망을 바라보며 사는 요즘의 내가 꼭 심 같아서 무심코 머리 위에 초록 다이아가 떠있는 건 아닌지 팔을 휘휘 저어 보기도 했다.
저녁으로 큰맘 먹고 사온 난을 데우고 태어나 처음으로 카레를 만들어보았다. 정말 간단하지만 든든하다. 사실 한국식 카레를 싫어해서 사춘기 이후로는 거의 안 먹었는데, 혼자 지내다 보니 엄마가 어릴 때 해주던 카레맛이 그리워 인도식 커리 가루 대신 오뚜기를 썼다. 하지만 엄마가 만든 카레와는 맛이 달랐다. 같은 믹스, 비슷한 재료인데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 엄마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 엄마가 아닌 내가 스스로를 돌보려니 어딘가 허전하다. 엄마만큼 나를 잘 돌봐줄 사람은 없을 거야 아마.
마주침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가 매일 보는 개를 또 보았다. 매일 묶여 있는 것 같고 외롭고 무료해 보여서 나도 혼자이니 서로 친구가 되면 참 좋을 텐데 싶었다. 하지만 문이 활짝 열려있다 해도 남의 집 담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커다란 친구의 공간에 함부로 침입하는 것도, 심지어는 날 보며 꼬리를 흔들고 가까이 오고 싶어 하는 듯 보여도 나에게는 다 안 될 일이다.
멀리 바닷가에서 해녀마켓 담장 위를 걷고 있는데 담장 앞에 잠시 주차했던 차 때문인지 온 동네가 울리도록 짖던 이 친구가 나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아주 먼 거리인데도 확신이 들었다. 개가 짖는 걸 멈추고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선은 정말 만났을까, 아니면 우연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나는 내일 또 멀찍이 서서 너에게 손 인사를 건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