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악몽
한동안 쌀쌀한 바람을 많이 맞았더니 몸이 좀 무겁다. 또 한바탕 수면 위기를 겪느라 새벽에 잠을 못 이뤄 고생해서 그런 것도 있다. 날이 부쩍 흐려 더 그렇기도 하다. 언제 맑아지려나, 해가 나야 빨래를 하는데.
아침부터 집에서 새소리를 끊임없이 듣고 있다. 새들이 낮게 날고 땅으로 들어오는 것은 비가 온다는 뜻인데 저렇게 지저귀니 긍정적인 소식인가 싶기도 하다. 부디 맑아지기를 바란다. 양말 빨아야 한단 말야. 햇빛에 바싹 말리고 마르고 싶단 말야. 끈적한 악몽을 다 털어버리고 싶단 말야.
그렇게 툴툴거리다가 결국 며칠 흐리다고 울적해지기 싫어 움직였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침구도 갈아달라고 하고 재활용도 하고 대형마트에서 장도 보고 왔다. 엄마하고 통화하면서 역시 움직여야 힘이 난다고 말했고 그 말대로 장 보러 먼 길을 다녀왔는데도 오히려 활력이 돈다. 점심 먹고 공부를 조금 하고 지금껏 놀다가 산책을 가려고 하니 다시 비가 내린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또 이제 보니 그냥 흐린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좋긴 하다. 깨끗해진 밤처럼 머리도 세상도 맑아지는 기분. 지겨운 먹구름이 녹아내려 바다로 흘러가는 그런 느낌.
오늘 하루는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상기하는 날이었는지. 사람들과 학교와 세상과 떨어져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그리고 다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떠나왔다. 침구 갈아달라는 작은 요청도 지친 내게는 큰 도전이라는 걸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알아줘야지. 꼭 기억해야지. 무엇보다 내가 여기서 잘 살고 있으며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도.
시(詩)적 유리창
내가 가장 아팠을 때, 해선 안 될 생각을 했을 때 생긴 버릇인 유리창에 이마 대기. 얼음에 손을 대면 살갗이 차디찬 표면에 달라붙으면서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게 되는데, 유리창에 이마를 대면 통증 없이 매끄럽고 차가운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서늘한 외부를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감각하는 일. 그게 왜 좋은지 그땐 몰랐는데 습관처럼 이마를 대고 곱씹다 보니 불현듯 스치는 시구(詩句)가 있다.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봄눈 대신 봄비가 내리고 나의 유리창엔 아직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리고' 한라산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본다.
하지만 언젠간 나도 바다에서 산으로 가지 않을까? 요동치는 바다에서 우물을 어루만지다 더 성숙한 어른이 되면 산에서 호 하고 하얀 입김을 뱉으며 이마로부터 온몸으로 뜻 모를 서늘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인만큼의 깊이는 아닐지라도 유리창 없이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더라도 조금쯤은 그가 본 세계를 엿볼 수 있지 않을는지. 어찌 되었든 유리창은 나와 외부를 모두 비출 수 있으니.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차고 경쾌하다.
(정지용, 「춘설」, 「유리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