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고 조각글을 쓰러 제주도까지 가야 했던 이야기
나의 병환은 '특별함'에 대한 강박에서 시작되었다. 어릴 적 좋아했던 소설 장르를 보면 그 사람의 깊은 욕망을 알 수 있다. 나의 경우 한 아이가 선택받는 것으로 시작되는 판타지 소설을 좋아했다. 유명한 것들만 꼽아보자면 시간의 주름, 작은 백마, 해리포터, 타라 덩컨, 나니아 연대기 등등.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누구나 알 법한 이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특히 가장 평범하고 어딘가 모난 구석도 있는 아이들, 그들은 자기 자신 때문이든 어른들 때문이든 결핍을 안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판타지 소설까진 아니어도 비밀의 정원, 키다리 아저씨, 소공녀 같은 소설도 정말 좋아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나는 소외된 아이가 어느 날 "너는 사실 특별해."라는 계시를 받고 모험을 거쳐 어른으로 성장하는, 그런 진부하고도 매력적인 이야기 밖에서 그런 주인공이 되기를 꿈꿨다. 하지만 어떤 꿈은 영원히 꿈으로만 남는다. 내게는 마법이 없었고 요정이나 부엉이가 찾아오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남의 것인 이야기를 좇고 디즈니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동안 내가 한 것은 책끈을 이어 가방끈을 늘리는 일이었고, 여전히 마법을 기다리느라 어른이 되지는 못했다.
그럼 아주 평범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다. 나는 평범하다기엔 운동장이나 텔레비전 속 세계와는 거리가 멀었고 도서관에만 틀어박히는 괴짜같은 천재가 되기에는 침대를 너무 좋아했다. 어느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로 나는 요정이나 부엉이가 전해주는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장을 받는 대신 "넌 특별하지 않아." "왜 이렇게 유별나니?" 같은 말만 잔뜩 들었다. 얼핏 비슷하지만 그 의미는 천지차이인 두 문장의 교집합 속에서 나는 자라지 못했는데 마음의 병은 무럭무럭 자랐다.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오는 깊은 절망, 평범하게 사람들과 어울리기엔 너무 예민하고 유별나다는 칼날같은 말들이 준 상처. 내가 무언가를 사랑하기엔 절망과 상처가 너무 깊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학원에서 나는 알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는 너무나도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나 같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마법 같은 건 정말로 없다는 사실을. 내가 좋아하는 문학과 학문의 세계에서도 나는 천재도 범재도 아닌 어정쩡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버리자 나는 결국 침몰했다.
학부 시절부터 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를 심심찮게 받았던 나는 10년을 아픈 줄도 모르고 앓다가 마침내 침몰하여 도착한 병원에서 우울과 불안을 확인받았다. 어떤 병명을 붙여야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으나 흔히 말하는 우울증과 비슷했다. 외부 자극을 완전히 차단한 진공 상태를 유지하는 게 최선인 상태였고 지치고 피곤한 일상을 잠시 멈추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심각한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었다. 지칠 줄도 모르는 건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부정적인 생각들뿐이었다. 불안하고 초조한 미래에 대한 긴장감이 모든 외부 자극을 차단한 몸 안에서 홀로 유지되었다. 그래서 아무도 내가 아픈 줄 몰랐으나 나는 홀로 많이 아팠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당시의 나는 내가 좋아한다고 믿었었으나 더 이상은 좋아서 하는 것인지 해야 해서 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많은 것들 때문에 방황했다. 전공인데도 더는 문학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스스로가 미워서 견딜 수 없었다. 펼쳐보지 않은 많은 소설들이 나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한 건 또다시 이야기를 찾고 쓰는 일이었따. 나는 짚인형처럼 침대에 처박힌 상태로도 B급 공포영화 줄거리나 공포소설을 검색하며 별 생각 없이도 볼 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들을 몇 시간이고 읽었다. 그리고 겨우겨우 상담을 하고 병원을 다녀오면 습관처럼 상담일지를 쓰고 파편화된 메모들을 잔뜩 썼다. 그래서였을까, 그렇게 모든 것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나를 일으킨 건 한 통의 편지였다. 힘든 한 해를 보내고 내가 나에게 쓴 편지였다.
그 두서 없는 편지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평범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너를 좋아해." 그 고백을 보고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이 멍해졌고 오랜만에 많이 울었다. 가장 필요했던 말을 과거의 내가 이미 해주었다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매일매일이 전쟁이었고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나날이었으며 스스로를 전혀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했던 나에게 꼭 필요한 고백이 과거로부터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굳혔다. 오래도록 바라던 것처럼 특별할 수 없더라도 평범하지 않을 수는 있다. 이미 나는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리고 유별나다는 말을 달리 생각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난하지는 않지만 남들과 다른 나만의 '별'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커다란 유리병을 가득 채운 종이별처럼 작고 사소한, 유난스럽다고 미움받지도 않을 그런 나만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아니 분명히 있다. 나는 잃어버린 나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리 상담 시간에 과거의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해 말씀드렸을 때 선생님은 꼭 나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라고 하셨다. 그리고 과거의 내가 보내준 '조용하게 별난 너'라는 말이 내 책의 좋은 제목이 될 거라고도 덧붙이셨다. 어쩌면 나를 향한 작은 격려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그 말이 나에게는 얼어붙은 땅에 묻힌 씨앗을 깨우는 한 줄기 햇빛이 되었다. 나는 문학을 사랑하기엔 너무 지쳐있었지만 여전히 이야기를 좋아했고 조각글이라도 끄적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모든 것이 다 바스러진 황야에서 모래바람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고, 바람에 실려오고 흘러가는 구름에 매달려오는 이야기들을 한 모금의 물처럼 갈망하는 이야기꾼. 결국 그렇게 쓴 글이 나에게 한 줄기 빛이 되지 않았나. 나는 다짐했다. 글을 쓰자. '특별한' 글이 아니어도 되니 그냥 나만의 생각과 이야기를 쓰자. 내가 언제나 좋아했던 이야기라는 것의 주인공이 되어 보자. 그렇게 나는 이제 문학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잠시 멈추고 '조용하게 별난' 내 일상의 언어들을 조각조각 기워보기로 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제주도였다. 누구에게나 영혼이 향하는 공간이 있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제주도가 그랬다.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는 커다란 바위 할망인 외돌개가 있는 바로 그 섬.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에서 태어난 나에게 바다와 섬은 무척 특별한 공간이다. 넘을 수 없는 산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특별한 삶을 상기시켰지만 바다는 그렇지 않았다. 넓은 바다는 언제나 넘실거리며 해안선을 새롭게 그렸고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다 내보이는 넓은 품이다. 바다 깊은 곳에 이르거나 망망대해의 한 가운데까지 갈 수는 없어도, 물속을 내려다보거나 저 먼 바다 한 가운데를 바라볼 수는 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지는 밤이 찾아오기도 한다. 나는 그런 바다를 잊지 못해 제주도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잠들던 '여현'이라는 아이가 등장하는 소설을 쓴 적도 있었다. 그 소설 속에서 여현은 어디든 홀로 갈 수 있는 어른이 되면 범섬을 보러 가기를 꿈꿨다. 그런 어른이 되려던 여현의 다짐을 실현해보기로 했다. 대단한 소설은 아니지만 제주도에 대한 나의 마음이 잔뜩 담긴 그 소설의 주인공인 여현이 되어보자, 매일매일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글을 잔뜩 남겨보자.
오직 그 정도의, 계획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생각을 가지고 영감의 섬 제주도에서의 생활을 결정했다. 남들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이야기이다. "엄마, 나 휴학하고 제주도에서 몇 달 정도 살래."라는 말이 아무런 맥락도 없이 튀어나왔다. 휴학하면 천벌을 받고 세상에서 도태되는 줄만 알았던 범생이 대학원생의 입에서 나온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당황하지도 않고 그러라고 하셨다. 최초의 말을 내뱉기 위해 수천, 수만 번을 곱씹는다는 아기처럼 나는 그 말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그토록 아프고 괴로웠는데, 내뱉고 나니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순식간에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배우고 뛰어다니게 되는 유아기를 한 번 더 겪는 것처럼 말이다. 신기하게도 아무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말 없는 나의 고통이 '나 제주도 갈래'라는 말 한마디로 잘 전달이 된 모양이었던 걸까? 내가 몰랐을 뿐 다들 나를 지켜봐주고 있었던 걸까? 여전히 주변인들이 나를 아껴주는 것만큼 내 고통을 잘 이해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지만, 적어도 그 순간 이후로 나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그 마음들만큼은 믿게 되었다. 신뢰라는 것을 배우며 내 삶의 새로운 장이 열렸던 순간이다.
언제나 특별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었던 한 아이는 예기치 못하게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고백 편지를 받았다. 그 아이는 이야기를 참 좋아했고 산책을 하며 생각한 것들을 조각글로 남기곤 했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일을 늘 꿈꿨던 섬 제주도의 바닷가에서 무작정 했다. 이 제주 일기는 그렇게 시작된 85일 동안의 산책에서 생각하고 느낀 점들을 쓴 조각글들의 모음집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원래부터 파편화된 흩어진 이야기. 어차피 산문(散文)은 흩어진(散) 글이니 뭐 어때 싶어 일부러 쓴 그대로 두었다. <80일간의 세계일주>처럼 특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매일 쓰는 일기라기엔 또 평범하지 않다. 조용하게 조금 별난 구석이 있는 이 이야기에서 쓰는 글만큼이나 '조용하게 별난 나'를 세상이 발견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