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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 Oct 11. 2022

1-3일 차 : 입도

검은바위 해안, 일출, 실수도 우스꽝스럽게, 혼잣말, 홀로 됨의 의미

1일 차


입도


27kg. 예상하지 못한 수하물의 무게만큼이나 발길이 무거웠다. 자유롭기 위해 떠나는 긴 여행에 설레고 기쁜 마음이 넘쳤지만 막상 출발하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상상하던 여행과 실제로 일어난 여행. 그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거리가 있다.

생각지도 못한 눈에 항공편이 지연되었다. 그래도 덕분에 하게 된 꼼이와의 산책은 즐거웠고 바닥에 찍힌 발자국 도장은 눈물 나게 귀여웠다. 꼼이 없으면 누나 어떡하지, 그 말을 일주일 내내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가 내가 꼼이를 그리워할 마음 이상으로 나를 그리워하기를 바라면서.


단지 지연일 뿐인데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괜히 좋은 날에, 제사도 있는 설날에 술병이 나서 드러누운 동생에게 뾰족한 눈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나는 작은 것에도 예민해진 상태였다. 계속 늘어가는 짐과 출발 전부터 지연되었던 항공편, 생각보다 더 무거운 짐에 다른 짐까지 부치기로 결정하면서 예상은 또 빗나갔다. 그리고 또 지연. 잘 앉은자리에서 괜히 일어나는 바람에 30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겨우 올라탄 비행기에서는 노트북이 든 가방을 짐칸에 싣지 않으려고 머뭇거리다 그 가방보다 더 위태로운 에코백을 짐칸에 올려두게 되었다. 쏟아질까 봐 얹듯이 담아두었던 작은 차 상자는 꺼내고 가방을 올렸다. 내 무릎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오설록 차 한 박스를 보면서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무사히, 말 그대로 탈 없이 사고 없이 제주에 내려서 짐을 찾고 택시를 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을 빗나가는 일들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나는 불안보다 설렘을 잡고 싶었다. 부디 행복하기를, 무탈하기를. 안녕, 서울. 안녕? 제주. 그렇게 마음으로 인사하며 마침내 섬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남은 일 하나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형 캐리어, 큰 짐가방, 큰 물건들이 든 에코백, 어깨에 맨 무거운 배낭까지 짐을 이고 지고서 뒤뚱거리며 택시 승차장을 찾아갔으나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아빠의 친구분이시자 펜션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삼춘이 전화를 주셔서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가는 택시 줄이 다르지 않냐고 하셨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내가 볼 수 있는 건 이 줄이 택시 기다리는 줄임을 암시하는 택시 승차장 방향을 안내하는 표지판들뿐이었다. 줄이 두 개인지 한 개인지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있지 않았던 나는 멀거니 대형 캐리어를 바라보며 기껏 내 차례가 되었는데 캐리어가 짐칸에 안 들어가면 어떡하나 그런 고민이나 하고 있던 차였다. 삼춘이 콜택시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계속 바보처럼 거기서 긴 시간을 낭비했을지도 모른다. 삼춘 덕분에 택시를 호출해 무사히 숙소 앞에 도착했다. 커다란 캐리어도 아슬아슬했지만 어떻게든 짐칸에 실을 수 있었다. 무겁다며 혀를 차는 기사님 앞에서 멋쩍게 웃었다. 걱정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나름대로 순조로웠다.


택시에서 내려 다시 무거운 짐들과 함께 숙소 입구 겸 마당에 홀로 남게 되었을 때 내가 본 것은 어둠이었다. 6시 반 정도였는데 이미 섬은 잠들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어둠 속에서 저편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가늠해볼 수는 있었지만 그 모습과 늠름한 범섬의 형상은 전혀 그려볼 수가 없었다. 숙소의 가로등 한두 개만 빛나는 가운데 내가 바다보다 먼저 마주한 건 짙은 밤하늘과 도시보다는 확실히 많은 별이었다.


소심함을 숨기지 못하고 어색해하면서 바로 옆에 있던 사무실도 발견하지 못하고 물어 물어 겨우 숙소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내가 3개월 혹은 그 이상 머무를 숙소. 그 시간 동안 내 방으로 만들어가야 할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단출했다. 허기조차 날려버릴 정도로 지친 몸은 깔끔한 화장실 및 욕실과 걱정 없는 수압, 단정하게 정리된 큰 침대에 마침내 안심한 것처럼 무너져 내렸다. 무슨 정신으로 씻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 와중에 가져온 실내복 등판에 ‘Free Dobby'라고 적힌 걸 보고 의도치 않은 대학원생의 자유 선언을 사진으로 남겼다.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편을 바라보다 커튼을 치고서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어둠 속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도시 탈출기, 우울증 투병기, 휴학생으로서의 자유학기, 막춤처럼 달리기, 그리고 바다와 함께하는 산책이.




2일차


검은바위 해안


새벽에 눈을 떠서 해가 뜨기만 기다렸다. 불면의 밤은 이 섬에서도 이어지는 걸까, 나는 긴 잠을 잘 수 없는 걸까, 그런 걱정도 들었지만 그저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설렘이 나를 깨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희뿌연 여명과 함께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자마자 갓 태어난 기린처럼 허우적거리면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보인다, 보여!"

아무도 듣는 이가 없는데 소란을 떨며 범섬과 첫인사를 나누고 옷을 주워 입고 뛰쳐나갔다.


아주 이른 산책, 차갑고 건조한 공기, 섬에서의 첫 끼니는 편의점 샌드위치였다.

파도소리를 잘 듣기 위해 이어폰을 왼쪽만 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방향을 바꿔 오른쪽에만 이어폰을 꼈다.


이 해안에서 바다와 땅의 경계는 하얀 모래 대신 검은 바위들로 그어져 있다. 화산이 남긴 검은 해안이다.

최영 장군은 이 검은 바위 해안에 성곽을 쌓으려 했다고 한다. 그리고 범섬까지 뗏목을 이어 길을 만들었다. 흔들리는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면서 군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떤 기분이었을지 알고 싶다. 나였다면 그냥 무서워했을 것 같다. 나는 물을 무서워하고 짜고 깊은 바다는 더욱 무서워한다. 이전에 스노클링을 하러 갔을 때 코로 숨을 쉴 수 없다는 답답함과 발이 닿지 않는 깊고 차가운 바다에 대한 공포로 하얗게 질려 배 위로 도망쳤던 나였다. 그런데 그 물 위를 불안정한 뗏목을 타고 건너야 한다면 나는 아마 목숨을 건 탈영을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도망자가 되거나 잡혀 죽는 게 더 무서워서 건너갔을 것이고, 양심에 찔려서 책임을 내팽개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벌벌 떨리는 다리로 바다를 건너 저 먼 바위섬에 가서 진을 쳤겠지. 아마도 돌아와서는 그 모든 두려움을 밀어놓고 자랑스러워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 전투에 참여했다고, 뗏목을 이어 바다를 건넜다고, 그리고 살아 돌아왔다고. 그런 무용담을 두고두고 늘어놓다가 평범하게 늙어갔을 것이다.

영양가 없는 상상을 하며 검은 바위와 노란 유채꽃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눈에 가득 담았다.



일출


유채꽃이 만발한 길을 지나면 커다란 유채꽃밭이 있고 그 옆길은 해녀들의 어장이라고 할 수 있는 바윗길로 향한다. 바다를 끼고 걷다 보면 펜션들이 아니라 기념품점, 편의점, 식당 같은 것이 있는 작은 상점가가 나왔다. 평범한 어촌의 풍경이었고 그곳에 아마도 법환포구인 듯한 포구가 있었다. 포구까지 쭉 걸어가며 일출을 보았다. 바닷가에서 보는 일출이 색다른 이유는 떠오르는 해가 수면에 비치면서 수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빛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하늘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빛의 길이 잔물결을 따라 일렁였다. 바위틈에 고인 물에 비친 동그란 빛무리에 손을 뻗으면 바닷물과 함께 오늘의 해를 건져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수도 우스꽝스럽게


이른 오전에 산책을 하고 와서 좀 쉬다가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살림을 꾸려야 했으니 점심때가 되기 전에 대형마트에 갈 생각이었다. 차가 없었고 버스를 타려면 15분을 걸어 정류장에 가야 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또 10분을 걸어야 한다면 그냥 한 번 걸어가 보자는 생각으로 시내를 향해 걸었다. 내가 간과한 것은 그 길이 오르막이라는 사실. 그리고 초행길은 더 길고 오래 걸린다는 사실. 50분을 걸어올라 월드컵경기장이 있는 번화한 시내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는 낡은 주택이나 펜션이 아니라 도시 외곽에 있을 것 같은 너무 높지 않은 신축 빌라와 아파트들이 많았다. 사람도 차도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도로가를 걷고 또 걸어서 시내에 도착하니 갑작스럽게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트도 처음이라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몰라 한참을 헤매며 장을 봤다. 조금만 살 생각이었는데 먼 거리를 와보니 다시 올 엄두가 나지 않아 자꾸만 짐이 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10만 원을 결제하고 있었고 마트에서 대여 및 판매하는 가장 큰 장바구니와 작은 장바구니에 테트리스를 하듯 빡빡하게 짐이 채워져 있었다.


마트 앞에는 택시 정류장이 있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을까, 가끔 신중함이 지나쳐 객기를 부리거나 미련한 짓을 할 때가 있는데 하필 그때 그런 짓을 해버렸다. 그것도 인생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법한 그런 미련한 짓이었다. 눈앞에 있는 택시를 타면 집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을 텐데 나는 50분을 다시 걸어서 내려가는 것을 택했다. 한 10분쯤 내려가서 나는 이 모든 게 바보짓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차도 사람도 없는 한적하고 외진 도로는 시원하게 쭉 뻗어있었지만 택시조차 다니지 않았다. 그 길 위에는 오직 나뿐이었다. 양손에 내 상체보다 큰 장바구니를 들고 있으니 손바닥에 붉은 줄이 새겨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이나 멈춰 서고 다른 방식으로 장바구니들을 들어보고 안 되겠어서 이고 지고 안고 끌고 하면서 홀로 그 먼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기분이었냐면 너무 창피했다. 누가 봐도 잘못된 선택을 한 바보의 행색이었기 때문이다. 참 우습지만 그 순간에 나는 실없이 계속 웃었다. 웃음이 나오더라. 바보 같은 내 모습이 부끄러우면서도 남의 눈치나 평가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서늘한 날에 땀을 뻘뻘 흘리며 미련한 스스로의 모습을 창피해하면서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도착한 지 24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나는 해방된 기분이었다. 이 섬에서는, 이 바다 앞에서는 나는 얼마든지 바보가 되어도 괜찮고 뭘 해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코를 막은 채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하는 괴롭고 차가운 물속은 여기가 아니라 떠나온 그곳에 있었다. 이 바다에는 그런 고통이 없다. 스노클링을 시작도 못하고 내뺀 나는 선상에 홀로 남겨져 열대어를 구경하느라 신이 난 가족들을 내려다보면서 수치스러워했다. 그 수치스러움은 괴로운 기억으로만 남았다. 하지만 오늘의 실수가, 잘못된 선택이 자아낸 유쾌한 창피함은 우스꽝스러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3일 차


혼잣말


"내가 여기 있는 게 믿기지가 않아."

운동 겸 산책을 하면서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바다 냄새, 파도 소리, 새소리, 흔들리는 꽃가지, 그리고 망망대해를 외롭지 않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범섬. 계속해서 자연을 향해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게 되었다. 범섬 안녕, 새들아 안녕, 이틀 만에 이미 친구가 된 것처럼 말이다.



나는 분지인 도시에서 태어났고 그보다 더 큰 분지인 서울에서 오래 살았다. 어디를 보아도 산으로 둘러싸인 세상이 당연했던 날들이었다. 그래서 독일에 잠깐 살았을 때도 산이 없는 풍경이 낯설었고 몽골에 갔을 때도 드넓은 초원이 두려웠다. 무엇 하나 걸리는 것 없이 뻗어 있는 지평선은 아름다웠지만 나를 두렵게도 했다. 안정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옛날 사람들이 세상을 네모로 생각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산이 없는 평원의 지평선은 마치 절벽처럼 보였으니까. 지평선을 향해 걸어가면 그대로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차를 타고 깎아지른 고개를 넘을 때면 매번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주 위험한 롤러코스터를 오래도록 타는 그런 주행을 몽골에서 경험했었다. 이 섬에서는 어딜 가나 한라산이 보인다. 하지만 이 섬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와는 반대로 산을 해안과 바다가 둘러싸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섬 끝에 가면 세상 밖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그런 불안감을 바다가 상쇄시켜주어서 다소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그 바다 한가운데 커다랗게 자리 잡은 바다의 호랑이, 범섬이 나에게 수평선의 끝에서도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고 속삭여주는 듯했다. 보다 안정되었고 두려움도 줄어들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해안가를 걷다 스트레칭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에 정말로 하늘이 있었다. 오직 하늘만이 가득했다.

이 섬에 오기 전에 나는 그런 푸른 하늘을 보며 떨어지고 싶었고 잠들고 싶었다. 비에 흠뻑 젖은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곤히 잠들고만 싶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바라고 바라던 하늘이 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큰 건물도 높은 산도 없는 이곳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은 끝도 없이 펼쳐져도 두렵지가 않고 오히려 이 땅을 감싸주는 머리 위의 바다 같다.

"나는 이제 섬에 있어."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홀로 됨의 의미

민감한 내가 민감한 사람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남보다 민감한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다. 사실 사흘 내내 너무 활동적으로 지냈더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뻐근했다. 어깨에 파스 붙여줄 사람이 없어서 엉망진창으로 붙이다가 엄마가 그립기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리움이나 외로움이 덜한 건 아니다. 그저 그리움과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꾸고 잔잔하게 즐길 수 있어서 나는 홀로 이곳에 왔다.

그리고 아주 많은 마음들을 이고 지고 왔다. 선물 받은 달력, 포스터, 책, 텀블러, 미피 언니가 찍어준 사진, 언니와 친구가 사준 식기들과 엄마가 잔뜩 챙겨준 생필품들까지. 그런 크고 작은 선물들로 방을 꾸며두니 마음이 편했다. 잘 지내라는 마음이 담긴 그 선물들이 소중하고 소중해서 혼자여도 다 괜찮을 것 같다. 정말로는 혼자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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