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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 Oct 11. 2022

8-11일 차 : 알 수 없는 계절

혼자만의 밤,기원,바다의 담수,호흡,우연한 길,쉼,새벽달리기,활공

8일 차


혼자만의 밤


밤새 비바람이 몰아쳤다. 폭풍이 몰아치고 정전이 되고 하는 일에는 비교적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혼자 어둠 속에 누워 비바람 소리를 듣고 있자니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그냥 비가 오고 강풍이 부는 것뿐인데 바깥에서 무언가 부딪히고 흔들리는 소리가 잔뜩 들려왔다. 옛사람들은 그런 날에 도깨비가 잔치를 한다고 생각했다던데, 그런 감성적이거나 동화적인 감상에 빠지지 못하고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서 창문을 두드리는 게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경계심에 휩싸였다.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왜 이리 무서운 게 많고 나쁜 일을 당할 것을 무서워하는 걸까? 작은 해라도 끼치고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강박이 너무나 강한 탓일까?


누군가가 타인의 삶과 생태계를 무참히 짓밟고도 멀쩡히 살아간다고 해서 나도 그래도 되는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와 무관하게 잘못은 잘못이다. 하지만 내 탓이 아니거나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부디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떠안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과도한 책임감과 강박 때문에 나는 너무 오랫동안 괴로웠다. 앞으로도 갑자기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 그런 이유로 괴로워할 날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스스로에게 되뇌고 괴로움을 쫓아내야 한다. 일을 할 때마다 내가 맡은 일의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그 과중한 책임을 다 지려고 했던 나는 매번 실수하고 모든 게 엉망이 되는 불행한 결말을 상상하곤 했다. 그래서 안 해도 될 일까지 떠안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도 서툴렀다. 잘하고도 불안해하고 할 만큼 하고도 더 해야 할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던 나날. 업무 환경도 문제가 있었지만 스스로 그런 불안 속에 사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그게 혼자만의 일이 아니면 나는 마감이 많이 남아도 초조해하고 그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쉬지도 못하곤 했다. 그래서 굶어가면서, 잠을 줄여가면서 일을 하기도 하고 메일이 오면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일까 봐 두려워 떨곤 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체할 것 같고 손이 덜덜 떨리면서 어깨가 굳는 그런 느낌, 그것이 보통 일이 아니란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러다 상담을 받으러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구조 요청. 그 요청이 내가 할 수 있었던 모든 도움 요청 중에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사소한 요청들을 하지 못한 그 순간들의 부족한 용기를 그러모아 큰 용기로 더 큰 도움을 요청했고, 선생님을 만났고, 결과적으로 모두의 도움 속에서 나를 구해냈다. 지금 이 섬에 와 있는 것도 그 모든 사건을 겪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니 스스로를 자꾸 부정적인 미래에 대한 상상에 가두지 않았으면 한다. 적어도 여기에서는, 누구도 나를 해칠 수 없다. 오직 나만이 나를 불행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지난밤 나는 있을 리 없는 검은 습격자를 두려워하며 차마 커튼을 걷어보지 못하고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고요해진 세상을 향해 커튼을 걷었더니 안정감을 주는 따스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나는 안전했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없었다.


문득 어릴 적 폭풍 속의 밤이 떠올랐다. 거센 태풍으로 인해 정전이 된 집에서 아빠는 초를 켜고 밤을 새우며 잠든 우리 남매를 지켰다고 했다. 내가 곤히 잠들어 있는 동안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며 밤을 지새웠을까. 아직은 그 마음이 가늠이 되지 않지만 적어도 그때 내가 아빠로 인해 안전했다는 것을 안다. 태풍으로부터도, 어둠으로부터도, 모든 두려운 것들로부터도. 그렇게 내가 안전하게 보호받고 사랑받아왔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스스로를 위험한 생각으로부터 지킬 힘을 얻고자 한다. 다음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이 온다면 그땐 지난밤과 다를 것이다.



기원


비바람이 몰아쳤던 때가 있었냐는 듯 사위가 고요했다. 거의 마른땅 위를 거닐자니 아직 구름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하늘만이 지난밤의 소란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비바람에도 달라진 것이 없는 튼튼한 나무와 꽃가지들을 보다가 산책할 때마다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바위 무덤도 굳건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 바위 무덤은 스쳐가며 보면 영락없이 돌무덤인데 큰 돌 사이사이 쌓아 올려진 작은 돌들을 보면 누군가의 기원이 담긴 돌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돌무더기가 자연의 기원을 담았는지 사람들의 기원을 담고 있는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덤 같은 외양과 기원의 돌탑이 어우러진 모습은 기묘하다. 우리는 죽어가는 존재이지만 소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당연하고도 신비로운 어떤 진실이 맴돌았다.



바다의 담수


바위 무덤을 지나 배염줄이에서 서성거리다 법환포구의 바윗길까지 걸었다. 배염줄이의 바위들 중에는 물이 고일 정도로 움푹 파인 커다란 바위가 몇 개 있다. 그중에 하나는 꽤 높아서 만조일 때도 물에 잠기지 않는데, 그 바위틈에 빗물이 고여 있었다.

바위틈에 고인 빗물은 새들에게 담수가 될까? 하지만 바닷가에서 내리는 비는 짠맛이지 않을까? 바다에 부는 바람에는 염분이 섞여 있고 그래서 바닷가의 공기에서는 짠맛이 난다. 그런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공기 중의 염분을 씻어낼 테고 그렇게 떨어져 고인 빗물에는 씻긴 염분이 섞여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새들은 저 바위틈의 물을 마실까, 아니면 피할까. 그 물은 정말로 짤까, 아니면 아예 빗물이 아니라 거친 파도의 물방울이 모인 바닷물일 뿐일까.


과학적인 토대라곤 전혀 없는 엉뚱한 상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처음엔 좋지만 길었던 산책길이 점차 생각에 잠겨 걸을 수 있는 여유롭고 익숙한 길이 되고 있다.




9일 차


호흡


아직은 달리기를 할 정도의 몸 상태가 되지 않는 것 같고 용기가 나지 않아서 인터벌 걷기를 격일로 퐁당퐁당 하고 있다. 가볍긴 하지만 운동을 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호흡이다. 숨이 차오르는 정도를 기준 삼아 속도를 조절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복식호흡을 유지하고 산소를 많이 들이마시려고 애써야 한다. 스트레칭을 할 때보다 운동을 하는 도중에 호흡이 더 신경 쓰이고 동시에 신경 쓰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호흡에 파도소리, 바람, 햇살이 스며드는 감각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



한참 운동을 하다가 햇빛에 눈이 부셔서 고개를 돌리면 아직 머리가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한라산이 보인다. 어디서나 보이는 롯데월드타워를 보며 뒤집힌 고등어 같다고 푸념하던 내가, 이제는 어디서나 한라산을 볼 수 있는 섬에 와 있다. 시내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바다보다도 범섬을 보고 반가워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바닷바람이 내 안의 근심 걱정을 가지고 간다. 한라산 정상에 오르면 바람이 걷어간 사람들의 근심 걱정이 바짝 마른 모습으로 눈 덮인 땅 속으로 조용히 묻혀 안식을 찾을 것만 같다.



우연한 길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을 마치고 바다를 바라보면 썰물에 드러난 검은 바윗길 위로 해가 떠오른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바위들이 저렇게 길처럼 일정한 궤적을 그리며 배치된 것은 우연일까? 쭉 뻗은 바윗길은 용암이 흘렀던 흔적으로 우연일 수 있지만, 작은 바위들이 모여 호를 이룬 모습은 도저히 우연이라고 믿기 어렵다. 정말 신비롭다.


바윗길과 떠오르는 해가 만들어낸 빛의 길이 연결되었을 때 그 길을 따라서 수평선 너머로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매번 허공에 대고 두 손가락으로 빛무리 진 물결 위를 걸어가는 시늉을 해보곤 한다.




10일 차



예전에 어느 책 읽는 모임에서 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한 언니는 너무 부지런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곤 했는데 그 언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했다. 아마도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내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초조해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그 언니는 이미 그런 초조함을 이겨내는 쉼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 나는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직 숨만 '쉬는' 그런 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생각을 멈추는 레버나 버튼이 간절했고 지금도 절실하지만 그래도 숨쉬기에만 집중하며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적어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시간을 보낼 줄 안다. 복잡한 생각들, 해야 하는 의무, 책임, 그리고 막연한 불안으로부터 나를 놓아주는 그런 쉼을 배우기 위해 나는 나머지 시간을 열심히 살았다. 이걸 다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서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그리고 논문을 다 쓰고 나서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이 필요했다. 나머지 시간을 열심히 살고 그럴 것도 없이 나는 완전하게 지쳐버려서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을, 몇 주를, 몇 달을 그렇게 쉬고 싶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이 너무나 두려워서 내가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그저 잠들기를 바라기도 했다. 곰처럼 겨울잠을 자며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고 콜로키움 발표를 준비하느라, 편집일을 하느라, 스터디를 하느라 박사 진학 전의 방학이 흘러가 버렸다. 2주 정도 의무와 책임을 비운 날이 생겼었지만 제대로 쉬는 법을 몰랐던 나에게 그 시간은 성취감이 없어 괴롭고 무료한 텅 빈 시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매번 상담을 받으면서 울었고 병원을 다니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약을 먹으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 거라고만 믿었다. 휴학한다는 선택지가 그 시절의 나에게는 없었다.


개강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나는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숨이 막히는 불안증상을 경험했다. 나는 분명 2주 간 쉬었고 상담도 받고 있고 병원도 다니고 있는데 왜? 처음에는 그게 증상인 줄도 몰랐다. 수업도 비대면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처음에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았나, 먹은 게 위장까지 못 가고 가슴께에서 걸렸나 싶었고 한두 시간이면 가라앉길래 약 부작용인가 싶었다. 그러다 학교로 가는 지하철에서 처음으로 집 밖에서 과호흡이 왔다. 심장 부근이 너무 뻐근하고 기도인지 식도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목과 가슴이 이어지는 곳이 부풀어올라 막히는 것 같았다. 무서운 영화에 나오는 살색 괴물의 피부가 징그럽게 부풀어올라 내장기관을 연상시키는 그런 장면이 떠올랐다. 내 목과 가슴 안쪽에서 그렇게 살덩이가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참 안일하게도 나는 그날 비상약을 챙겨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지나갈 때까지 2호선 한복판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내 몸은 순환열차에 실려 학교에 도착했다. 가슴을 움켜쥔 채 지하철 문이 열리는 것을 보면서, 다급하게 내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괜찮아, 학교에 왔어.

계속해서 생각했다. 유난히 깊은 역사에서 나와 학교까지 이어진 길을 걸으면서도, 교문을 지나면서도, 학교에 왔으니 이제 나는 괜찮다고 되뇌었다. 참 이상하게도 내가 아픈 직접적인 이유는 그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공부와 일들이었는데 학교라는 공간은 여전히 내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감정과 원인이 엇갈리는 순간을 지나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거의 괜찮아진 듯했다. 여전히 숨쉬기가 불편했지만 많이 진정되어 있었고 통증은 거진 사라졌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도서관으로 들어가 책을 고르고 자료를 찾아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발작이 일어난 순간보다 그 이후가 더 두려웠다. 나는 아픈 것 자체보다 학교에 갈 수 없을까 봐, 이제 막 시작된 학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휴학은 너무 무서운 말이었다. 초조하고 불안해하다가 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진료일을 앞당기는 순간에 나는 울먹이고 있었다. 아직도 기억한다.

"제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서요."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내 상태를 '좋지 않음'이라고 진단했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휴식이 되지 못한 2주를 지나 개강하자마자 악화된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결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몰랐을 뿐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아팠고 몸이 숨 쉬지 못하게 될 때까지 그 사실을 외면해왔다. 나는 정말로 좋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수업 전에 꼭 비상약을 챙겨 먹었다. 불안해지려 하기 전에 불안을 완화시키는 약을 먹으면서 한 학기를 버텼다. 참 우습게도 그러고는 한 학기를 더 버텼다. 미련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토록 무서웠던 휴학을 했고 학교를, 서울을 떠나서도 내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아니, 떠나야만 내가 살 수 있을 만큼 내몰렸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1년 간 완전히 방전되었던 나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아팠던 그날들을 지금은 잘 견뎌냈다고 생각하며 모든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어제저녁부터 다시 비가 오더니 오전 내내 묵직한 비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갑자기 찾아온 건강한 생활에 잔뜩 당황했던 몸이 간만의 과식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소리를 내어 말했다.

"오늘은 집에서 요가를 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쉬어야겠다."

오늘 나는 편안하게 숨을 '쉬며' 아무 생각 없이 '쉬는'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지금은 비상약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 여전히 서툴지만 쉬는 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계절

쉬려고 했다. 분명히 그랬는데.


먹구름에 완전히 속았다. 잔뜩 흐렸던 주제에 비가 좀 오더니 갑자기 햇살이 너무 좋고 바람이 선선하게 분다. 날이 너무 좋아서 이불 털고 빨래하고 청소한다면서 온 방을 뒤엎었다. 오직 나만을 위한, 아무도 시키지 않은 노동. 먼지와 함께 근육통도 날아간다.

집안일을 끝내고 빨래를 널어둔 후에 올해 처음으로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산책을 나섰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사진이 되려 흐린 그런 날씨였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아침엔 겨울비가 오더니 점심에는 봄기운이 돌다 여름처럼 더워졌고 저녁이 되자 가을처럼 쌀쌀해지는 게 아닌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하루 만에 다 즐겼다. 아무튼 작정하고 나가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혼자 하는 화보 촬영이 무척 재미있었다.




11일 차


새벽 달리기


슬슬 게을러지는 걸까, 아니면 건강해지기 위한 과정이 너무 피로한 것일까. 새벽에 분홍 산호와 같은 빛깔이 깔리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며 해가 뜨는 동안 운동을 했다. 한 번 시도해볼까 싶어서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걷기를 할 때보다 짧은 거리, 짧은 시간 운동하는 것인데도 더 힘든 느낌이었다. 걷기 운동을 하면 적당히 산책도 하고 돌아오는데 오늘은 힘들었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방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닭안심을 먹고 운동복을 하나하나 벗어던지고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이렇게 첫 달리기 후기는 간단하다. 산책 없는 긴급한 복귀, 그리고 약간의 구토.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다가 조금이지만 토했다. 꿋꿋이 저녁 산책을 나섰는데 온몸이 후들거려 힘들었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면서 감상하는 일출은 유난히 아름다웠고 달릴 때 숨이 차오르는 그 기분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좋았다.

오늘은 바람도 유독 세게 불어서 저녁 산책을 할 때는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제주의 바람은 누군가 그를 거스를 때만 사납다. 거칠고 강하긴 해도 밀어낼 뿐 상처 주지 않는 그런 바람이다.

오늘 시작된 도전이 부디 끝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지만, 끝까지 달려봐야지.



활공


지난 열흘 동안 사람과 떨어져 지냈지만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집 밖을 나서면 귓가에 새소리가 울렸다. 나에게 속삭이는 것이 아닌 줄 알지만 지저귀는 소리들이 마치 인사 같았다. 어린아이들이 모여서 소꿉놀이를 하는 곁을 지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해안을 걷다 보면 온갖 새들을 만나게 되고 매일같이 보는 새들의 생김새가 조금씩 눈에 익어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들은 사진에 잘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렌즈를 들이대는 대신 팔을 들어 크게 흔들곤 한다. 새들은 나를 보지 않더라도 나는 꼬박꼬박 인사를 건넸다. 숨이 차게 달리고 걸으면서도 몇 번이고 새들과 섬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곳의 자연이 이제는 사람들보다 내게 더 가깝고 친숙하다.

도시 한복판에서 보던 새들에 비해 크고 다리가 긴 새가 있는데, 그 새가 다리를 쭉 뻗고 바람에 몸을 싣는 모습은 영화처럼 멋지다. 뒤로 뻗쳐진 가느다란 다리가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새가 바람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활공'이라는 단어가 감각적으로 와닿는다. 어떤 단어의 의미가 이해되는 순간은 이렇게 찾아온다.


내가 좀 더 눈썰미가 좋았다면 우리 동네 주민들 모음집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떠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말고 항상 이 바닷가에 살고 있는 작은 주민들.

서울행 비행기표를 끊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편하다. 잠시 다녀오는 것인데도. 나는 이 생활이 깨어지지 않기를 벌써 바라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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