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조각글 2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라 Aug 30. 2023

해일의 마녀들

Witches of wave

당신은 마녀를 믿어요? 빗자루를 타고 다니고, 고양이나 두꺼비를 키운다든지, 검은 옷만 입는다든지,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알려져 있던데요. 갑자기 무슨 뜬 구름 잡는 소리냐고요? 중세유럽에 마녀가 있었어요. 어쩌면 훨씬 전부터 있었을 거예요. 마녀는 삶을 주고, 불을 주고,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아꼈어요. 마녀의 사랑을 독점하고 싶었던 어리석은 이가 있었는데, 마녀가 그 이상을 들어줄 수 없음에 미안해하며 정중히 거절하자, 열등감과 분노에 휩싸여서는 헛소문을 퍼뜨렸어요.


마녀가 모두를 죽일 것이다.
우리의 삶을 부숴 악마에게 영혼을 바칠 것이다.


그렇게 마녀사냥이 시작됐어요. 그 무렵 종교전쟁과 전염병이 들끓었답니다. 마녀를 죽였기 때문에 전쟁과 전염병이 시작된 건데, 사람이 죽어가는 난리통에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마녀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바보들이 아직 있더라고요. 아무튼, 마녀는 다른 마녀들을 위해 물에 가라앉아 죽거나, 미처 가라앉지 못한 마녀는 어쩔 수 없이 불에 타서 생을 마쳤어요. 당신은 그때 모든 마녀를 잡아 죽였다고 생각하겠지만,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은 여전히 살아 있어요. 


마녀의 후손이 태어날 때부터 마녀였던 건 아니에요. 마녀는 삶을 물려주지만 그게 핏줄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그냥 어느 날에 눈떠보니 모든 것을 깨닫고 마녀가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죠. 어디에 있냐고요? 그들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어요. 가라앉은 마녀의 영혼들이 해일을 타고 이곳저곳으로 갔거든요. 물론 한국에도 마녀가 실존해요. 한국은 반도잖아요.


마녀의 저주를 받을까 봐 두려워요? 혹시 당신도 어리석은 이예요? 아니면, 누군가의 저주를 받을 정도로 비겁하고 초라한 인생을 살고 있어요? 맘만 먹으면 저주는 일도 아니겠지만, 마녀는 사람을 죽이거나 저주하지 않아요. 미워하면서 삶을 낭비하는 게 의미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거든요. 대신 연대하기를 선택했어요. 죽음을 슬퍼하고 삶에 분노하며. 이 땅의 모든 생명을 만들고 가꾸고 지켜요. 그렇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요.


발푸르가의 밤에는 전 세계의 마녀들이 모여서 춤을 추고 노는데, 그날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맞는 마녀들끼리 모여서 춤을 추고 놀곤 해요. 서로를 위로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눠요. 때때로 액운을 쫓는 향을 피우기도 하고, 넋을 기리며 좋은 곳에 가라고 기도해주기도 해요. 여름에는 자두청을 담그고 겨울에는 감귤로 청을 담가보기도 해요. 글을 쓰는 마녀도 있고, 그림을 그리는 마녀도 있고, 요리하는 마녀도 있고, 돈을 굴리는 마녀도 있고, 잠만 자는 마녀도 있어요. 내가 말했잖아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고.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요? 나는 마녀들과 친하거든요. 어제도 마녀들과 밤새 술 마시며 포커를 치고 왔어요. 아는 마녀를 소개해달라고요? 음, 그렇게는 안 돼요. 마녀는 세상에 그렇게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요. 당신이 준비가 된다면 마녀가 먼저 알아보고 당신을 찾아갈 거예요. 나에게도 그렇게 찾아왔어요. 마녀들은 해일 속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니 빵과 장미를 들고 예의를 갖춰요. 비에 젖지 않는 바다를 보면서 기다려요.

이전 24화 여우와 호랑이 그리고 하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