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리 Dec 11. 2016

인간에 대한 매혹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25_다큐멘터리 감독 김정근

  




 한진중공업과 희망버스를 소재로 다룬 그의 다큐멘터리 <버스를 타라>는 2012년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올해의 다큐멘터리 상을 받았고, 역시 한진 중공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자들의 섬>은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노동자들을 꾸준히 영상에 담는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몇 명 되지 않는다. 이 ‘소수의 감독’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날씨가 제법 쌀쌀했던 겨울 어느 오후에, 그의 집 근처 커피 집에서 그를 만났다.         






Q . 간단한 자기소개를 해주시겠어요?    


A . 1982년생이고, 다큐멘터리 만들고 있고요,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라셨어요?    


A . 대전에서 태어나서 서울에 살다가, 8살 때 가족이 다 부산으로 내려왔어요. 처음 온 동네가 수영 달동네였어요. 그 뒤로 부산에서 계속 살았어요. 열아홉 살 스무 살 땐 영화가 너무 하고 싶어서 서울에 빨리 가고 싶었는데, 돈이 너무 없으니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했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까 부산에 계속 살게 됐어요. 다른 지역엔 잘 안 가져요.     



Q .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어요?    


A . 대학도 안 갔고,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그만두고 우동 집에서 일했어요. 장우동. 가스 배달도 했었고요. 하단 동아대 앞에서 있는 동신복사에서 일을 좀 오래 했고요, 아는 분 소개로 사회단체에서도 일했고, 청원경찰도 했고, 신발 공장 들어가서 공장에서 일도 했어요. 미디어 활동하는 회사도 있다가, 지금은 프리랜서예요.     





Q .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A . 다큐 감독들은 기본 극영화를 좋아하다가 다큐로 빠지곤 해요. 나쁜 피, 소년 소녀를 만나다, 라는 레오 까락스 계열의 영화 같은 프랑스 영화를 좋아했어요. 일 하던 인쇄소에 한겨레신문이 들어왔어요. 신문 구석에 조그맣게 ‘대학생이 읽어야 할 책 100선’ ‘대학생이 봐야 할 영화 100선’ 같은 기사들이 나왔어요. 그럼 잘라내서 가지고 있다가 찾아서 읽고 보고 했어요. 중3때 비디오방 알바 하면서 영화 많이 보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고1때, 경성대학교에서 학생회가 독립영화특별전을 했었어요. 무료로. 교복입고 털레털레 와서 영화를 봤는데, 그때 김동원 감독님의 <명성, 그 6일의 기록>, <상계동 올림픽>을 봤죠. ‘아, 이런 세계가 있구나’하면서 어린 나이에 불이 붙었죠. 그렇게 다큐의 세계를 알게 되고, 영화 강좌가 듣고 싶었어요. 그때 부산에서도 영화 강좌를 했는데 과정이 30만 원 정도 했어요. 알바해서 강좌를 듣기엔 벅찼죠. 그런데 다큐멘터리 강좌는 무료인 거예요. 거기서 운동하는 선배들을 만났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다큐를 보게 되었고요.     



Q .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노동으로 보내셨군요.    


A . 노동자들의 정체성이나 자각, 이런 게, 그런 게 있었어요. 지금은 말이 안 된다 생각하는데, 전 예쁜 옷, 예쁜 가방 같은 거 좋아하거든요. 근데 운동하는 선배들이 ‘너는 참 노동성이 없다’‘노동자로서의 자각이 없다’ 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어요. 미적 지향에 대한 추구가 강한 편인데, 선배들은 그걸 허세로 보는 거예요. 근데 그게 나의 숙명이었거든요. 그런 걸 좋아하는데요. 그때는 내가 정말 노동자성이 없는 건가 고민 많이 했어요.

그런 것 말고 내가 일하는 조건에서의 문제는 늘 자각하게 되었죠. 공장에서 일하다 보면 사무직 노동자와 현장 노동자의 차이가 뚜렷하게 보여요. 저는 사무직도 현장도 아닌 중간쯤이었어요. QC라고 제품을 검수하는 팀이었어요. 늘 중간 단계에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게 눈에 보이는 거예요. 노동자는 맞는데, 현장 노동자는 아닌 자각이 있는 거죠. 지금은 문화 노동을 하는 거고요. 

 문화노동이 현장 노동에 비해 역으로 홀대 받는 생각이 드니까, 왜 이것은 노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카메라 들고 다닌다고 왜 노동이 아닌가요.     




Q . 상 받고 나서 불편한 건 없어요?    


A .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다르게 보는 거요. 누가 ‘김정근 감독님’ 그러면 불편해요. 지금 지하철에 관한 다큐를 찍고 있는데, 현장에서 만난 형님이 ‘쟤가 뭐하는 애지’ 하다가 감독인 걸 알게 되고 나서는 보는 눈빛이 달라지는 거예요. 막 이렇게 (반짝반짝한 눈빛). 엄청 불편했어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빨리 사람들에게서 잊혔으면 좋겠어요.     



Q . 그런 기분 잘 알아요. 저도 소설 쓰고 나서 사람들이 나한테 싫은 소리를 안 하는 게 독이 되었거든요. 비판이 없으면 사람이 건강하지 못하게 돼요.    


A . 다행히 제 주변엔 욕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웃음). 주변 선배들이 워낙 건강해서요, 욕을 많이 해주세요. 다큐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냉철해요. 쌍욕도 하고(웃음). 최근에 맨스플레인 하다가 다른 감독한테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술이 3차까지 간 자리였는데, 제가 존경하는 감독님이 동석한 자리였죠. 근데 그 감독이 자꾸 ‘작품 가지고 칭얼거리는’ 거예요. 제가 보기에는. 그래서 ‘이렇게 훌륭한 감독님이 옆에 있으니까 잘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인데 왜 자꾸 찡찡거리냐’는 톤으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지나고 보니까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불평도 둘의 관계에서는 베이스로 하는 건데, 사실 나는 드문드문 거기 와서 인사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사과는 하지 못했지만 풀리긴 했는데, 정식으로 사과를 한번 해야 돼요. 그 얘기를 부산 와서 선배들한테 하니까. 선배들이 ‘네가 꼰대질 한 거다. 딴 데 가서는 입 닥치고 있어라’고 했죠(웃음). 그래서 ‘네, 입 닥치고 있겠습니다’ 했죠. 저는 해놓은 거에 비해서 칭찬을 많이 받는 편이라 그런 걸 엄청 경계해야 해요. 






Q . 누군가가 ‘저 사람은 노동자 다큐만 한다’ ‘좌파다’하는 프레임을 씌우는게 불편하지 않아요? 


A . 전혀 뭐. 누군가 그렇게 얘기는 했어요. 노동자나 노동에 관심이 많냐고요. 지금은 그저 노동자의 투쟁의 역사에 매료가 되어 있어요. 투쟁의 열기가 인상 깊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큰 기계를 만드는 경외’가 있어요. 인간과 기기의 대결로 보이는 거죠. 노동자라는 계급적 성격을 띤 사람들에 대해 관심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구조물과 기기에 대한 매혹이 기본으로 있어요. 지금 작업하고 있는 지하철도, 제가 지하철이나 기차 덕후거든요. 그래서 시작한 것도 있어요. 그런 동력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걸 수리하고 움직이고 세기를 조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매혹이 나한테 분명 존재하고, 그걸 지속하는 거예요. 그래서 좌파의 프레임은 저한텐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영국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작품을 만든 켄 로치 감독이 있어요. 깐느 감독상을 받았는데, 팔순에 가까운 나이가 되기까지 꾸준히 노동자 이야기를 찍어 왔거든요. 그런 거에 대한 매혹도 있어요. 그래서 좌파라고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거죠.      






 [버스를 타라]를 보았을 때, 나는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젊은 감독이 서사시처럼 기록한 한진 중공업과 희망버스의 이야기는 뜨거우나 들뜨지 않았고, 차가우나 냉정하지 않았다. 이토록 알맞은 거리를 두며 영상을 담은 감독은 몇 날 몇 일을 거리에 서서 카메라의 사각 프레임 내부를 노려보았을 것인가. ‘예쁜 것이 좋다’라고 말하는 한 남자의 작업은 마음이 가리키는 곳을 늘 향하고 있다. 숙명적으로 카메라가 그곳을 향하기 때문에, 라는 긴 수식어를 달지 않아도 그의 작업은 숙명적이다. 그의 다음 작품은 지하철 노동자들을 다룬 것이다. 어둡고 긴 터널 끝에 필 희망은 또 어떤 꽃일까.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작가의 이전글 490일의 항암 치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