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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Dec 16. 2016

파키스탄에서 온 사랑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34 _ 다문화가정의 어머니 이진실(가명) 





그녀가 핸드폰에서 보여준 사진 속의 남편은 무척 잘생긴 사람이었다. 헐리웃 영화 어디선가 나올 법한 이목구비와 뚜렷한 눈빛을 가진 이국의 사내는, 눈빛만으로도 당당함이 넘쳐 보였다. 보수적으로 살아온 한 한국여자가 앞으로 겪을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대범한 결혼을 결정한 이유를 알게 하는 눈빛. 남편 곁에 있는 사진 속 그녀의 아이들 역시 아빠의 매력적인 눈빛을 꼭 닮아 있었다. 가정을 돌보는 동시에 남편의 사업을 돕느라 바쁜 일정 중에서도 인터뷰를 위해 ‘꼭 시간을 내고 싶었다’는 그녀 역시 몹시 아름다운 중년의 여성이었다. 이 가족이 다 함께 나들이를 가는 풍경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고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Q . 자신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A . 쉰하나구요, 아들이랑 딸 있어요. 아들은 고등학생, 딸은 초등학교 6학년이고요. 남편은 파키스탄에서 왔고요. 남편 무역하는 거 도우고 시간나면 살림하면서 살고 있어요.     



Q . 파키스탄은 어떤 나라인가요?    


A . 인도에서 독립한 나라예요. 간디가 있을 때 영국에서 독립하고, 그다음엔 무슬림하고 힌두가 분쟁이 있으니까, ‘지나’라는 분이 분리를 주장해서 인도에서 이주하고 세운 나라가 파키스탄이에요. 무슬림 권이죠. 동 파키스탄과 서 파키스탄으로 나뉘었다가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가 됐고요. 서파키스탄이 지금의 파키스탄이 되었어요. 우리는 ‘카라치’라는 옛 수도에서 왔어요. 항구도시라서 바다 건너면 바로 두바이예요. 조금 개방적이라 차도르 같은 제약이 좀 없어요. 상업이 발달하다보니까 시골보다는 좀 낫죠. 아프가니스탄이랑 붙은 국경지대에선 아직 엄격해요. ‘부르카’를 쓸 정도예요. 카라치는 그렇진 않아요. 인도 스타일로 옷을 입어요. 각 집안마다 다른데, 우리 집안은 델리에서 온 집안이라 결혼식도 인도풍이고, 사리도 입고, 얼굴을 가리지 않아요. 종교만 이슬람이에요. 위 지방에서 오신 분들이랑 결혼하신 분들보단, 제가 좀 편해요. 





Q . 결혼하실 때 어떠셨어요?    


A . 저희가 다문화가정 1세대나 다름없어요. 우리 신랑이 한국에 온지 20년이 넘었으니까요. 인터넷도 없는 시대에, 문화에 대한 공부도 없었어요. 사람이 좋으니까 사랑으로 결혼했지요. 결혼하기 전에 그 나라 가서 시댁 식구들을 뵈었어요. 굉장히 화목하더라구요. 형제간 일곱이고, 부모님이 좋으셨어요. 특히 시아버지가요. 술 담배도 안하시고 점잖으시고요. 그걸 확인하고 우리 식구들 싹 데리고 파키스탄 가서 상견례 하고 결혼했어요. 카라치 고등법원에서 내 주는 혼인 신고서를 들고 한국 와서 신고 해서 신랑도 왔죠. 처음엔 아내가 남편을 데리고 올수가 없어서 힘들었어요. 여러 가지 고비가 많았지만, 험난한 길을 다 걸어왔어요, 이제.        



Q . 아이들 키우는 데 세심하시다고 들었어요.     


A . 큰 애 초등학교 보내놓고, 4년 동안 급식 때 밥 푸러 다녔어요. 걱정이 되어서요. 애들도 자주 만나고, 선생님도 만나고, 아이들 가운데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요. 급식 할 때 엄마들 모임도 있고요. 그렇게 엄마들 안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했어요. 하등의 차별이 없다고 볼 수는 없어요. 차별이 있어요. 애들은 잘 모르니까 ‘아프리카에서 왔냐’ ‘넌 왜 다르게 생겼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대요. 자기 또래들은 같이 대화 할 수 있는데, 위 학년들이 많이 놀린대요. 애들이 어렸을 땐 그런 얘기 들었다고 집에 와서 곧잘 이야기 했는데,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이야기를 안 해요. 엄마 속상할까 봐요. 그런 차별을 당하고 오면 그쪽 부모님하고 되도록 상의를 하려고 하는데, 그걸 기분나빠하는 엄마들도 계세요. 아직 차별이 아이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Q . 고등학생인 아이도 아직 그런 일이 있을까요?    


A . 입시가 다가오니까, 애들이 지나가면서 그런대요. ‘넌 좋겠다. 수시도 편하게 가겠다’하고요. 사회적 배려자 전형으로 편하게 가지 않겠냐는 거죠. 우리 아들도 나도 몰랐는데 애들은 안대요. 시험 보고 나서 그렇게 이야기 하면 다른 애들도 다 쳐다보잖아요. 그럼 ‘난 그걸로 안 갈거야’하고 만대요. 애가 순해서 싸우려고 하지 않아요. 딸은 한참 민감한 나이인데, 여자애들은 그게 더 심하대요. 어제까지 친했던 친구가 오늘 상처를 주기도 하고요. 가슴 아픈 이야기를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딸도 적응할 때까지, 3학년 때까지 제가 급식 봉사를 갔어요.     



Q . ‘엄마들의 사회’에 적응하셨어요?    


A . 엄마들이 젊어서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선 노력을 해야 돼요. 밥도 많이 샀어요. 나이 들면 입 닫고 지갑 열어야죠(웃음). 막내를 서른아홉에 낳았으니까 우리 애들 세대 엄마 중에 비슷한 나이를 못봤어요. 다섯 살 까지는 그나마 커버가 되고요. 서로 속상한 이야기 하죠. 엄마가 엄마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면 아이를 보호 할 수 없어요. 내가 먼저 인성이 좋아야 해요. 

저 엄마 싸가지 없다, 예의가 없다, 못 배웠다, 집이 가난하다, 어디 알바래, 라는 이유만으로도 엄마들은 서로 멀리해요. 사업이라도 자기 거 한 대, 그러면 경직이 좀 깨지고요. 직업이나, 자가 주택여부, 애들 성적, 그거 가지고도 그래요. 그러니까 특히 신경을 많이 써야 하죠. 아빠가 외국인인 다문화가정은 그나마 엄마가 애들 쫓아다니니까 나아요. 엄마가 외국인인 집은 엄마들 사회에 들어가기 힘든 부분이 있어요. 엄마가 공부 도와주는 것도 힘들고, 애랑 의사소통 문제도 있고요. 엄마 커뮤니티에 못 끼면 애들도 차별 받는 것 같아요. 내 발톱이 있어도, 내 자식을 위해서는 발톱을 숨겨야 해요.     





Q . 어떤 부분이 제일 걱정되세요?    


A . 딸이 모난 건 아닌데 좀 시크한 성격이거든요. 제가 딸 보고, 어떻게 네 속에 있는 걸 다 꺼내놓고 사냐, 라는 말을 하기도 해요. 딸은 남의 뒷얘기 하는 게 그렇게 싫대요. 요즘은 한반에 스무 명 정도 밖에 안돼요. 여자애들은 많아 봤자 열한명이예요. 조를 짜면 두세 개 밖에 안 되니까, 한조에 못 끼면 다른 조에도 못 껴요. 우리 때는 한반에 60명이나 있었으니까 얘랑 못 놀면 다른 애랑 놀면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안돼요. 이런 점을 세삼하게 신경 써야 돼요.     



Q . 남편분도 아이들 학교생활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A . 저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아빠한텐 그런 얘기 잘 안 해요. 얘기하면 ‘여기서 차별 받을 필요 뭐 있어, 파키스탄 가자.’ 할까봐 겁나서. ‘애들 밤 10시까지 공부시키고, 그게 공부야?’그러기도 하죠.                 



Q . 아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사회가 어땠으면 좋겠어요?    


A . 가정을 이루는 데도 문화 충돌이 심한데, 사회에서는 어떻겠어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편견이 없어지겠죠. 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고, 큰 후회는 없어요. 아이들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당신보다 더 보수적인 남편을 바꾸기 위해 10년간 참 많이도 싸웠다, 라고 말하며 그녀는 웃었다. 그녀의 스마트폰 속 사진첩엔 친구들과 놀러갔던 여행지, 모임에 갔던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다문화 가정엔 어딘가 그늘이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깨부수고, 그녀는 그저 보통의 엄마와 같았다.

보수적인 남편, 커 갈수록 과묵해지는 아들, 사춘기를 맞이하기 시작한 딸, 애들이 무슨 반찬을 좋아하고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 지에 관한 문제, 나의 자아 찾기. 이 모든 건 여느 가정에서나 다 일어나는 일이다. 다만 조금의 특성을 더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껏 그래왔듯, 앞으로의 일도 섬세하게 풀어나갈 것이다. 그저 ‘가족’ 이기 때문이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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