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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02. 2017

꿈이 아니라 직업을 선택 한거에요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12_만화가지망생 고제형.

  


 이번 주 화요일 오후 7시에 어디 계시나요, 라고 묻자, 그는 학원에 있을 거라고 했다. 18살 소년이 학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가 다니는 곳은 ‘만화 학원’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제도권 교육 안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는 곳이 학원이라고 가정하면, 그가 저녁시간 내내 학원에 붙잡혀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더군다나, 그는 입시 만화를 하는 학생조차 아니었다. 그의 인생엔 대학이 제외되어 있었다.  






      

Q . 지금 학생이신가요? 

   

A . 네, 고3이예요. 대학 진학은 안할 거고요. 웹투니스트 준비를 하고 있어요. 


    

Q .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 대학 만화과에 진학하지 않아요? 

   

A . 학교 선생님들도 대학은 기본적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고,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형 둘 중에 미술 하는 형도 대학을 갔거든요.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사실 만화과가 별로 없어요. 한정된 애들만 대학 만화과에 가요. 나머지 애들은 애니메이션 학과나 디지털 콘텐츠 학과를 가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머지 애들’이 되어서 대학을 가도 자기가 되고 싶었던 거랑 다른 전공을 하게 되는 거니까 그런 진학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피아노를 하고 싶었는데 플루트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학원에서 직업 교육을 빡세게 받은 다음에, 군대 갔다 와서, 동기들이 대학 졸업하기 전에 데뷔하겠다는 목표가 있어요.  


  



Q . 목표가 확실한데, 그래도 부모님이 걱정 하시나요?    


A . 아버지가 미술이나 그림 전공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세요. 형도 전공 선택하기까지 힘들었고요.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식을 사랑하니까 걱정하는 거고, 미술을 하거나 대학을 안 나오면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특히 저에 대해서요. 만화 그려서 쟤가 사람 취급이나 받을까, 그런 편견요. 학교 선생님들이랑 명절 때 만나는 친척들도 마찬가지고요. 그걸 이길 방법은 내 실력을 갈고 닦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팔이 없어지거나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은 한 노력을 계속 할거예요. 


    

Q .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게 언제였어요?    


A . 고1 겨울방학 때부터 어머니를 졸라서 만화 학원 수강을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단과학원 다니고 있었으니까 커서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될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것도 성적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고(웃음). 원래 만화를 좋아했고 그림도 좋아했으니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효율적인 취업을 하고 싶었건 거죠. 학교에도, 고1때부터 대학 가지 말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겠다는 애들이 많았어요. 


토론 수업을 통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친구들과 나눌 기회가 많았고요. 

‘야, 니는 뭐 먹고 살래?’

‘생각 안 해봤는데.’

‘사업이나 할래?’

‘돈 없다.’

이런 식으로 막연하게 얘기 하다가, ‘만화가가 되는 건 어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진로는 그게 맞다고 확신했어요. 사람은 아직 잘 못 그리는데 사물이나 동물은 잘 그렸거든요. 무에서 유를 시작하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처음 학원 들어갈 땐 입시 만화를 배웠는데, 배울수록 이게 꼭 필요한가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데뷔하는 쪽으로 빨리 바꾼 거죠. 엄마한테 말 하는게 무서워서 입시반에 계속 있었다면 지금처럼 구체적인 구상은 못했을 것 같아요. 입시반보다 훈련도 더 많이 해야 되고요. 





Q . 어떤 장르가 하고 싶어요?   

 

A . 전쟁물이요. 어렸을 때부터 만화 보다는 동물의 왕국이나 전쟁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해서 많이 봤어요. 한국에선 아직 전쟁물이 거의 없으니까 그런 내용을 하고 싶어요. 고바야시 모토후미 화백이 그린 <도로 위의 괴물> <특전대 ZBV> 같은 거. 오다 에이치로처럼 성공하고 싶지만, 그림체나 화풍은 <갱스터>의 쿄스케가 좋아요. <슈토헬>의 이토 유우도 좋고요. 


    

Q . 어떤 사람이 ‘너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살아라’고 하면 뭐라고 할 것 같아요?   

 

A . 학교 선생님들 중에 실제로 그렇게 말한 분이 게셨어요. 좀 싸가지 없지만 제가 했던 대답은 요. ‘쌤, 나중에 제가 달라보이실 겁니다’ 였어요. 선생님은 ‘제형아,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제발’그러셨죠. 하지만 그렇게 대답한 거에 후회는 없어요. 길거리에 채이는 게 대학생인데 나까지 그럴 필요 없잖아요. 대학이 취업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요. 나는 내게 가장 맞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하고 싶은 거예요.       








 그에게 직업은 꿈이고, 꿈은 직업이다. 이 자연스러운 등가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꿈은 꿈이고, 직업은 직업이라는 것.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겐 꿈과 직업의 일치가 당연한 거라는 것 또한 현실이다. 내 주변 웹툰 작가들의 연봉을 고려해 볼 때 소년의 꿈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았다. 모바일 시대에 거대해진 시장이 웹툰 시장이고, 소년은 시장에 뛰어 들고 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우리는 시장에 재능을 팔러 나온 세일러라는 점에서 같다. 형태가 다를 뿐이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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