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신뢰를 소망한다-2

Part 2. 보이지 않는 글씨

by 졔졔맘

어머니는 위대하다.

누가 어떻게 시작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출산이라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서 정말 잘 만든 말이다라고 생각한다. 사람이라는 것은 3-4kg 정도 사이에 작은 생명으로 태어나 체온 조절도 안되고, 혼자 먹지도 못 하고, 하물며 자신의 목조차 가누지 못한다. 그런 생명을 그래도 그 정도 무게로 만들기 위해 10 달이라는 시간을 한 여자는 인생을 걸고 견뎌가며, 출산이라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너무 쉽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너무나 어렵고 두렵지만, 누구에게나 매우 위험한 과정을 거친 뒤에, 다시 한번 육아라는 것에 자신의 여생을 걸게 된다.

다운로드.png 클림트 <여성의 세시기>

나는 수련의 과정 때, 당직을 서면서도 산모가 오면 그렇게 무서웠다. 빨리 상태를 파악하고 교수님의 결정이 한 번의 되물음 없이 끝나도록 꼼꼼하게 중요한 부분만을 알아내는데 바빴다. 새벽녘에 아무 때나 전화를 받는 교수님의 피곤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도 부담스러웠고,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올까도 매번 두려워하면서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빠르게 수술해야 되는 상황이라던지, 향후의 치료에 대해서 가끔 예상이 맞을 때고 있었고, 점점 연차가 올라갈수록 교수님의 결정을 점쟁이처럼 맞춰가는 횟수도 늘었다. 그럼 그저 나의 지식이 늘어났음을 기뻐했었다.


수련의 중간에 임신을 했다. 다른 산모들처럼 하나의 과정처럼 지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무거운 몸도 부어터진 다리도 너무 힘들었다. 어떻게 이 몸으로 걸어 다니는지 신기하기까지 했다.

임신의 합병증을 교과서에 나온 대로 다 겪게 되면서, 정말 어려운 거라는 것을 뼈에 박히게 깨달았다.

그리고 출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이는 신기했다. 아이를 볼 때마다, 뱃속 깊은 곳에서 공기가 방울방울 올라오는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헬육아를 거치면서 부모가 되는구나 하는 순간을 느끼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감성이 풍만해지면서 세상의 많은 것이 다르게 다가왔다.

사람은 다 귀하다. 그것을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너무나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누구의 생명이 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너무나 살고 싶었을 그 순간, 출산이라는 순간에 자신이 낳은 아이를 한번 보지도 못하고 안아보지도 못하고, 떠났던 내 기억의 환자들이 있었다.


둘째 출산이었다. 젊은 나이였고, 몸은 불어있었지만 예쁜 얼굴이었다. 내 파트의 교수님이 담당의가 되면서 내가 주치의가 되었다. amniotic fluid embolism(양수색전증) 수련과정 중인 나에겐 너무나 생소한 진단명이었으니, 일반 사람들에겐 오죽했을까. 아기 아빠는 이미 곧 죽을 사람 같은 표정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꽃다운 나이의 엄마는 의식이 없었고, 오랜 CPR과 약물로 가망이 없어 보였다. 겨우 맥박과 호흡이 잡히고 그나마 좀 나아진 상태에서 중환자실로 옮겼지만 상태는 절망적이었다. 한동안 처치를 하는 중에 정말 기적적으로 환자의 의식이 돌아왔다. 솔직히 너무 놀랐다. 어떻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교수님이 환자에게 귀에 대고 설명을 했고, 환자는 호흡기를 단 상태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교수님이 급하게 다시 보호자에게 설명하러 간 사이에 옆에서 소독을 하려고 준비하는 나의 손을 환자가 잡았다.

감사하다고..

손바닥에 삐뚤빼뚤하게 써진 글씨는 보이진 않았지만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31279375_70364.jpg 손글씨 하면 이 장면이 떠오른다. (너의 이름은 중에서)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보이진 않는 그 글씨가 새겨진 부분이 아렸다. 힘내세요.라고 짧게 말하고 소독만 하고 황급하게 교수님을 따라나갔다. 차트와 그날의 시술들을 정리하고 당직인 동기에게 인계를 하고 나왔다.

당장 내일 expire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녀 앞의 시술들과 색전증의 합병증들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발길이 너무 무거웠다.

유난히 말이 없던 교수님의 얼굴도 복잡해 보였다. 나와 같은 생각이었겠지.

오래갈 수 없다.

참담했다. 무능력함은 그렇게 책을 파고들게 했지만,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래도 한 달을 버텼다. 양수색전증 환자에게 그 시간은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수많은 합병증과 엄청난 시술을 버텼지만, 끝내 그녀는 일어나지 못했다.

한 달 뒤, 그녀는 핸드폰 화면으로만 보던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았다.

햇병아리 산부인과 의사였던 나는 그때

아... 산모를 보는 건 정말 쉽지 않다.

3008319_3009407_349.jpg 피곤하다. (출처:게티이미지)

전문의를 따면...

정말 산모를 보지 말아야지. 마음먹었다.

소위말해, 자신이 없었다.

그랬다. 나는 누군가의 불행에 동요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마이너과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적절하게 선택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최소한 선택할 수 있을 때는 피하고 싶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이의 성장에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