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글쓰기의 시작
“요즘 제가 멍한데요, 머리 속에서만 생각을 정리하는 거랑 쓰는 거랑은 많이 다르더라구요. 내가 얼마나 바보같은지 뭐를 모르겠는지... 내가 안 쓰던 일기라도 쓰다보니까… ‘이 사람은 누군가’ 싶기도 하고.”
“네 괜찮아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수업 초반에는 좋은 문장 쓰는 법을 말씀드리지 않아요. 처음부터 작가들처럼 유려한 문장으로 잘 쓰려고 하면 하나도 못 쓰세요. 초반에는 그냥 감정을 꺼내 놓으세요.”
글쓰기 클래스를 시작했다. 나를 만나는 글쓰기.
간결한 문체로 사람을 끌어 당기는 글. 예쁜 문장 속에 진짜 자기가 없는 글.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 수백 개 받는 글. 난 그런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소 거칠더라도 글 자체가 그 사람인 글. 나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죽을 것 같이 하루하루가 괴롭던 2014년 겨울, 살기 위해 글을 썼다. 수첩에 거친 문장을 휘갈겼다. 생각 없이 살았던 시간, 내 속은 썩어가고 있었나. 난 나를 그렇게 방치한 주위를 먼저 책망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 생각해본 적 없던 나. 나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나. 매일 온라인 쇼핑몰을 구경하고, 쇼핑 없이 외출을 끝내지 않았으며, 옷장이 터질 것 같아도 입을 옷이 없다고 푸념하던 나를 불러내었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글 속에서 주저앉아 우는 내 표정을 살피며, 내 손을 잡고, 어떻게 된 일인지, 기분은 어떤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글을 읽는 나는 인터뷰어가 되었고 글을 쓰는 나는 인터뷰이가 되었다. 울며 주위를 책망하기만 하던 글은 점차 스스로 묻고 답하는 글이 되어 갔다.
‘쇼핑중독, 나는 왜 그랬을까?’
‘안아달라고 할 때마다 돌아오던 "저리 가"의 말. 아 그랬구나. 어릴 때의 결핍이 있었다. 또... "벗겨 놨니?" 라는 말. 난 내가 옷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존중받기보단 옷을 좋아하는 것에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중략) 내게 필요한 건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나를 스스로 인정해주고 그것을 펼치는 것이다. 돌아보면 쇼핑은 내가 누군지 알지 못한 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식이었다.’
가능하면 모든 감정을 꺼내어 보았다. 아무 것도 숨기지 않았기에 내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난 나를 만났다. 그런데 왜 아무도 나에게 물어보지 않았을까. 비난하기 전에 왜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또 나는 왜 정신과 상담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치유를 경험할 수 있었을까.
정혜신 박사님의 책 <당신이 옳다>. 저자는 우리 모두 누군가의 공감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아무리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그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왜 그랬을까?
조언, 충고, 비판, 평가 없이 누군가의 마음 구석구석을 천천히 밝혀주고 그걸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런 공감을 받은 그 사람은 자기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보았기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든 이런 공감자가 될 수 있다.
글쓰기가 왜 치유의 힘이 있는지.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조언, 충고, 비판, 평가 없는 공감을 전혀 받을 수 없었던 난,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공감자가 되었던 것이다. 내가 겪은 일을 차근 차근 풀어내고, 내 감정을 다정히 물어봐 주며, 아팠던 내게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글로 썼다.
“최유리, 쇼핑중독은 니 잘못이 아니었어. 내가 너 사랑해. 내가 거기서 꼭 너를 꺼내줄게.”
“누구나 한 번은 공주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 한 번을 평생으로 하고 싶다.”
소리내어 읽어 본다. 첫번째 독자인 내가 가장 큰 위로를 받는다. 이제 그 글은 내가 모르는, 그러나 나와 너무도 유사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가 꼭 듣고 싶은 한 마디가 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해 주는 글. 간결하고 예쁜 문체의 글도 아니고 ‘괜찮아, 잘 될 거야’ 뻔한 글도 아니다. 그건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조용한 연대의 글이다.
본문에서 짧게 소개한 글은 다음의 두 글입니다.
최유리 작가와 함께하는 '나를 만나는 글쓰기' 클래스에서 만나요!
http://blog.naver.com/sujy62/221560756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