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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리 Feb 21. 2019

미래지향적인 삶은 자기계발서가 아닌 글쓰기에 있다.

나의 ‘흑역사’를 제대로 돌아보기



훌륭한 역사가는
 ‘왜?’라는 질문에 더하여
 ‘어디로?’라는 질문도 제기한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H. 카는 역사가 미래지향적인 학문임을 강조한다. 과거를 돌아봄이 꼭 과거의 소중한 유산을 물려받기 위함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독일 사람들은 과거를 고통스러워하지만, 그때 사회 구성원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양한 관점에서 제대로 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 작업으로 인해 결국 나중에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공동체가 공유하는 것. 그것이 역사라고 말한다.


개인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난 우리가 자신의 과거를 제대로 돌아보고 나서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각자 마음속에 비밀스럽게 덮어 놓았던 ‘흑역사’. 그걸 돌아보는 것이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그것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못난 자신을 확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더 큰 이유는 그것을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30대까지 쉼 없이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셨던 50대 수강생 H님. 엘리트 집단에서 튕겨져 나와야 했던 ‘흑역사’에 20년 동안 괴로워하셨던 분이다. H님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징징거림’을 해결하고 싶어 하셨다. 그런데 그녀는 매주 글쓰기를 고통스러워했다. 막상 글을 쓰자니 자신이 너무도 찌질하고 못나 도저히 못 봐주겠다고. 품위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제 글도 찌질해요.”


그러자 수강생 J님이 내 말을 부인한다.

“작가님 글 안 찌질해요. 솔직하니까 글이 좋아요.”


그러나 H님은 옆에서 중얼거리셨다.

“(선생님 글) 솔직히 좀 찌질해.”


난 그녀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안 꺼내놔서 지금까지 평생 괴로웠으면서, 그거 해결하려고 오셔놓고 또 지금 이러시는 거예요?”


‘흑역사’가 없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거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난 ‘흑역사’란 없다고 본다. 그 ‘흑역사’ 그 이후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미래가 달라지면, 내 인생은 전반부에 ‘흑역사’가 있는 반전 스토리일 뿐이다.


“좋은 글을 써서 품위를 지키세요, 안 꺼내놓고 품위를 지킬 것이 아니라. 자꾸 자신을 탓하실 필요는 없어요.  H님은 어떤 분인가요? 그리고 그곳을 어떤 곳으로 보셨는지 본인 관점에서 한번 기술해 보시겠어요? 본질을 추구하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H님은 그곳의 어떤 점 때문에 환멸을 느꼈을까요?”


2주 후. H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은 글을 써버리셨다. 브라보!  자신이 속했던 그 집단에 대한 H님만의 비판, 그리고 자신이 그곳과 안 맞았을 뿐이라는 고백. 그녀 특유의 문체로 조근조근 유쾌하게 녹아 있는 글.


아마도 그녀가 글쓰기를 통해 보게 된 진짜 못난 모습은 그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헉헉대던 ‘흑역사’가 아니라, 평생 자신을 책망해온 인색한 자아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다 쓰고 나니까… 너무 후련해요.”


부끄러운 ‘흑역사’를 다 꺼내놓는 과정. 제대로 하면 내 삶이 바뀔 수 있다. 좋은 글을 써서 품위를 지키는 것. 그녀가 이걸 진심으로 체득하게 되어 난 너무 기뻤다.


솔직하게 꺼내놓고 덤덤히 과거를 돌아보는 글이 타인에게도 울림을 주는 좋은 글임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썼지?’라는 의문은 ‘흑역사’를 바라보는 저자의 새로운 관점에 감동으로 바뀐다.


미래지향적인 삶은 자기계발서가 아닌 글쓰기에 있다.








저의 ‘흑역사’. 다음 두 글이 대표작인 것 같네요.






최유리 작가와 함께하는 나를 만나는 글쓰기 클래스.

http://blog.naver.com/sujy62/221874414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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