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파북쓰 Feb 12. 2022

2.4 출산의 기억들

남(男) 다른 아빠의 육아 도전기 - 2. 결혼하고 아기가 태어났다.

첫째는 자기 생일과 관련된 숫자만 나오면 ‘생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한다. 11월 28일이 생일인데, 11시 28분이 되었을 때 시계를 보면 자기 생일이라고 알려준다. 생일이 되면 가지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면서 신나 한다. 동생도 누나 말을 들으면 자기도 생일에 갔고 싶은 것을 이야기한다. 귀여운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생일과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으면 첫째가 태어났을 때 기억이 많이 난다. 아무래도 내 삶에서 처음 경험해본 일이기 때문에 뇌리에 남아있는 것 같다. 둘째에게는 미안하지만 말이다.    

 

결혼하고 6개월 정도 있다가 아이가 생겼다. 함께 산부인과를 갔을 때 많이 두근거리고 긴장했다. 초음파 사진을 처음 보면 정말 작은 점으로 보인다. 어떻게 저렇게 작은 생명체가 자라고 태어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첫째 태명은‘드림이’로 지었다. 꿈을 뜻하는 Dream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를 뜻했다. 둘째 태명은 첫째가 지어줬다. 뭐가 좋을지 물어봤더니 ‘예뿡이’가 좋다고 했다.


드림이의 심장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놀라움과 신기함으로 가득했다. ‘쿵쾅쿵쾅’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진짜인가 싶기도 했다. 저렇게 작은 몸에 심장이 있다는 것이,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 신비로웠다. 드림이가 크면서 많은 검사도 했다. 기형아 검사를 했을 때는 걱정이 많았다. 혹시나 잘못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둘째는 기형아 검사를 하지 않았다. 결과가 안 좋게 나올 경우를 생각해봤다. 아이를 지울 것인가, 낳을 것인가. 결과가 어떻든 아이를 낳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에 검사를 하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건강히 잘 자라고 있다. 그때와 지금은 생각이 또 다르다. 기형아 검사로 안 좋은 결과를 받아들이면 엄청 고민할 것 같다. 아이를 키워보니 장애우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사회적 제도나 인프라가 장애우를 키우기에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걸 이겨낼 자신이 없다.


진통을 줄여주는 ‘무통주사’가 있다. 무통천국이라 불리는 이 주사는 통증을 줄여줘서 산모들이 좋아한다. 아내도 7시간 진통 끝에 출산을 했는데, 통증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을 때 간호사가 무통주사를 맞을 건지 물어봤다. 맞을 거라고 하니 서명을 해야 한다면서 서류를 건넸다. 보통 서명을 하는 서류는 꼼꼼히 읽어보는 편이라 습관적으로 자세하게 읽었다. 수술 동의서 같은 느낌이었는데, 장모님과 내가 읽고 있으니까 아내가 빨리 서명하라고, 뭘 읽냐면서 재촉하며 화를 냈다. 당연히 ‘자세히 읽고 서명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참 바보 같았다. 아내가 보지 않는 곳이었다면 상관없지만, 진통으로 아파하는 아내 앞에서 바보같이 서류를 읽고 있으니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무통주사를 맞고 몇 시간 만에 편히 잠든 아내를 봤을 때 무통천국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았다. 맞기 전에는 누워서 신음하고, 변기에 앉아있으면 빨리 나온다고 해서 아픔을 참고 변기에 앉아 고통을 참았다. 계속 아파하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기에 안타까웠다. 편히 잠든 아내를 보고 나도 한숨 놓였다. 둘째 때는 병원에 도착해서 1시간 만에 출산을 해서 무통을 맞을 기회가 없었다. 이때 무통을 맞아야 했다면 바로 서명을 했을 텐데 아쉽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때 답답하고 짜증 났을 아내에게 다시 한번 미안한 말을 전한다.

드림이 탯줄을 자르던 순간

드림이의 탯줄을 끊고 대기하다가 포대기에 쌓인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머리가 위로 길쭉한 콘헤드 모양이었다. 눈은 너무 반짝반짝거렸는데 머리를 보면서 외계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크는 건가,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했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면서 좁은 골반을 나오느라 머리가 길쭉해진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다면 신경을 안 썼을 텐데 모르고 봤으니 당연히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아내에게 정말 심각하게 얘기를 했다. 지금은 나만의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둘째도 머리가 길쭉했지만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반겨주고 기뻐해 줬다. 둘째는 머리숱이 많은 채로 태어났다. 덩달아 머리도 컸다. 남자는 머리가 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아쉬워한다. 머리 크기는 유전인 것 같아 난 할 말이 없다. 아쉬운 점은 너무 눕혀서 키우는 바람에 뒷머리가 납작하다. 얌전하게 잘 누워있으니 덜 신경 쓰게 되고 덩달아 납작해진 것이다.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을 어쩌겠나. 키라도 잘 크게 도와줘야지.


산부인과를 거쳐 조리원에 2주 동안 있었다. 조리원은 비싸지만 꼭 가는 걸 추천한다. 아내에게는 아이를 돌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출산의 고통을 잊으면서 힐링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다. 아이가 배고플 때, 엄마가 원할 때를 제외하면 조리원에서 봐주기 때문에 아픈 몸에 휴식을 부여할 수 있다. 아내도 조리원에서 모유 수유하는 방법, 아이를 돌보는 방법 등을 많이 배웠다. 조리원에는 거의 동일한 시기에 출산을 하고 같은 동네에 사는 산모일 가능성이 많기에 마음만 맞으면 ‘조리원 동기’가 되어 육아하는데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아내도 조리원에서 만났던 동기를 추후에 만나면서 친해지기도 했다. 남편도 아이가 어느 정도 크기 전까지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조리원 이후에 밤 수유를 끊을 때까지 푹 잔 기억이 없다. 둘째 때는 조리원에 가지 않았기에 이때 조리원은 마지막 낙원이 되었다.  둘째는 첫째가 있어서 조리원에 못 갔다. 전적으로 아내가 선택을 했기에 나는 불만은 없었다. 3주 정도 부모님 집에서 몸조리를 하고 산후 도우미를 이용했다. 정부에서 지원을 많이 받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무리는 없었다. 4주 동안 집에 오셔서 아이도 봐주시고 반찬도 해주시고 청소도 해주셨다. 좋은 분이 오셔서 아내는 100% 만족했다. 아내는 산후 도우 미분을 만나고 정리 습관이 바뀌었다. 정리를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느끼고 그분에게 많이 배웠다.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면 인복이 있어서 좋은 분을 만났다고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이 태어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들이 참 많다.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을 처음 느껴봤기에, 우리의 생명이기에 잊히지 않는다. 힘들지만 소중하게 보살피고 키웠기에 콩알만 한 아이가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감사하다. 말 못 하는 아이를 보며 짜증내고 답답할 때도 많았지만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우리의 아이기에 가능했다. 부쩍 자란 아이들을 보면 신비롭다. 분명 내 가슴에 올려놓고 잠을 자던 아이가 앉기 힘들 정도로 클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마다 아이들은 선물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아이들은 우리에게 생명의 소중함, 추억, 웃음과 기쁨 그리고 행복이라는 선물을 주었기에 우리도 선물을 주는 것이 아깝지 않다. 오랫동안 서로에게 선물을 하며 살고 싶다.

아이들 탄생의 증거
이전 10화 2.3 맞벌이와 외벌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