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男) 다른 아빠의 육아 도전기 - 2. 결혼하고 아기가 태어났다.
아내가 첫째를 출산하고 부모님께 ‘아버님, 아이는 더 이상 못 낳겠어요’라고 얘기했다. 충분히 아내 마음이 이해됐다. 남자는 출산의 고통을 느낄 수 없어 말로만 들을 뿐이다. 아내는 10년 묵은 변을 싸는 기분이라고 했다. 변비로 화장실을 못 가다가 힘들게 볼 일을 볼 때 고통을 알기에 아내의 비유는 확 와닿았다. 10년 묵은 변이라니, 생각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새벽에 진통을 느끼고 대략 7시간 동안 통증을 느끼다 출산을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는 더 이상 힘들다는 아내의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나는 결혼 전에 아이가 셋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척들이나 주변을 보면 자녀가 많을수록 더 행복해 보였다.(나만 그렇게 봤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둘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째를 낳는 고통이 상당했기에 둘째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시간이 지나니 아내도 첫째 때 고통을 많이 잊어버렸고 자연스럽게 둘째 계획을 하고 둘째를 낳았다.
둘째인 아들이 누나와 함께 놀고 우리의 손이 덜 가기 시작하면서 자녀는 한 명보다는 둘이 좋다고 느꼈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는 한 명을 둘이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아빠, 엄마의 모든 신경이 첫째에게 집중됐다. 모유수유, 이유식, 목욕시키기, 기저귀 갈기, 옷 입히기 등 모든 것을 처음 해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정신없었다. 뭘 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바빴다. 우리 아이들은 4살 터울이다. 첫째가 밤 수유를 멈추고, 이유식에서 일반식으로 바뀌고, 걸어 다니면서 어느 정도 컸을 때 둘째를 낳았다. 둘째를 키울 때는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모든 것이 별게 아닌 게 돼버렸다. 내 팔뚝만 한 아이를 앉는 것도 떨지 않고 능숙하게 안았다. 목욕, 기저귀 갈기는 누워서 침 뱉기였다. 아기와 관련된 대부분의 것들이 너무나 쉬워서 첫째 때 ‘왜 힘들었지, 이렇게 쉬운걸’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첫째 때 힘들었던 경험들 덕분에 둘째는 정말 손쉽게 키웠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것이 쉽진 않았다. 둘째가 누워있을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니면서 아이 둘과 노느라 피곤했다. 어린 둘째에게만 신경을 쓸 수 없기에 첫째 보다가 둘째 보다가, 같이 놀다가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너무 둘째만 좋아하면 안 되고 첫째의 마음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헷갈렸다. 더 어린아이를 볼 것인가, 첫째 위주로 할 것인가. 지금은 최대한 공평하게 대해주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아이를 낳는다면 최소 두 명은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터울은 2~4살이 적당한 것 같다. 동생은 연년생을 낳았다. 정확하게 12개월 차이다. 키우는 걸 보니 연년생은 쌍둥이만큼 힘들 것 같다. 쌍둥이도 안 키워봐서 잘 모르지만, 듣기로는 정말 힘들다고 한다. 연년생은 개월 수가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서 힘들어 보인다. 첫째도 아직 세상을 알아가고 사랑을 받아야 할 시기에 동생이 태어나 관심과 사랑을 절반 정도 빼앗아가니 얼마나 짜증 날까. 부모도 육아에 대해 적응하고 쉴 틈이 생겨야 하는데 갓난아이가 태어나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는 4살 터울이다 보니 육아 스트레스나 출산의 고통을 많이 잊었고 노련해지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게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누나도 많이 컸고 말이 통했기에 질투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생을 돌봤다. 둘째가 클 때까지 육아는 계속되겠지만 적절한 터울이라 생각한다. 첫째를 키우느라 너무 힘들거나 처음부터 하나만 낳아 잘 기르는 집도 있다. 아이가 어릴 때 혼자다 보니 부모가 계속 같이 놀아주고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아이의 호기심은 바다와 같아서 계속 탐험하고 누군가를 찾는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찾을 사람이 부모밖에 없다. 첫째도 그랬다. 둘째는 누나가 있어 부모가 없으면 누나에게 달려가거나 누나와 함께 모험을 한다. 동생이 조금 크면서 둘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방에서 놀 때도 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반강제적 자유시간이 생긴다. 처음 이 상황을 겪었을 때 나와 아내는 정말 놀랍고 기뻤다. 역시 애들은 둘은 있어야 한다면서 감탄했다. 그 전에는 한 명씩 케어하거나 혼자 둘이 보는 것을 번갈아 하면서 잠깐 쉬었다. 어느 순간부터 둘이 노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우리에게도 시간이 생겼다. 억지로 낮잠을 재우거나 뭔가 하려고 하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줄었다. 보통 엄마들은 아이들 낮잠을 잘 때 개인 정비를 하거나 쉬기 때문에 낮잠을 안 자면 괜히 짜증이 난다. ‘잘 때가 됐는데 왜 안 자는 거야, 자야지~’라면서 자기 싫은 아이와 티격태격한다. 그런 상황이 사라지니 행복지수는 올라간다.
둘 이상 자녀가 있으면 서로에게 자극이 되어 좋다. 둘째는 누나 덕분에 말을 빨리 시작했다. 또래보다 훨씬 말을 빨리 했다. 누나가 옆에서 계속 말을 걸어주고 놀아주니까 자연스럽게 배운 것 같다. 한글을 알려준 적도 없는데 누나를 따라 하다가 한글도 배웠다. 누나가 하는 것은 뭐든 따라 하고 이기고 싶어 하는 열정이 스스로 학습하게 만든 것 같다. 누나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하고 책 읽고 숙제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 시간에 매번 심심하다고 말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누나를 따라 책을 읽는 모습을 봤을 때 곁에 있는 첫째가 고마웠다. 가끔 아들이 누나에게 숙제해야 되는 거 아니야, 내일 2장 풀어야겠네라고 말하는 걸 보면 웃음이 난다. 자녀가 많다면 더 많은 자극이 될지는 모르겠다.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서로 자극 주고 윈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셋째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 했다. 하지만 아내는 극구 반대한다. 농담으로 말해도 아내는 정색을 한다. 둘째를 낳고 병원에 있을 때 아내가 나에게 ‘여보, 셋째는 없어’라고 말했다. 둘째는 첫째 때보다 진통시간이 짧았다. 병원에 갔을 때 선생님께서 4~5시간 걸릴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고 병원에 오시면 첫째를 맡기려고 했다. 나는 아내 옆에서 도와줘야 했기에 아이를 볼 수 없었다. 탯줄을 자를 때도 같이 못 들어간다고 했다. 혼자 둘 수 없었기에 봐주실 누군가가 필요했다. 부모님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자궁문이 열리고 병원 온 지 1시간 만에 둘째가 나왔다. 부모님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되었다. 탯줄을 자르러 들어갈 때 감사하게도 간호사 한 분이 딸을 잠깐 봐주셨다. 이처럼 금방 둘째를 낳아서 셋째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병원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셋째는 거절당했다. 거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앞으로도 겪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셋째는 앞으로 없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