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男) 다른 아빠의 육아 도전기
지금까지 아이에게 가장 비싼 교구재는 ‘○○월드’ 전집이다. 많은 책, 장난감, 옷 등을 사줬지만 이 전집을 이긴 적이 없다. 희한하게 부모들은 책을 좋아한다. 정작 자신은 많은 책을 읽지 않지만 자녀에게만큼은 책을 읽으라고 한다. 보통 부모는 전집을 좋아한다. 수십 권에 달하는 전집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이거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전집은 보기에도 좋다. 보기에 좋아서 더 끌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집에 전집이 있었다. 백과사전은 기본이고, 역사나 위인전, 과학 전집 등이 책장에 꽂혀있었다. 책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전집을 보고 있으면 읽기에 부담이 됐다. 한 권을 꺼냈지만 끝까지 읽은 적은 없었다.
출산하고 2~3개월 정도 됐을 때 전집을 샀던 것 같다. 조리원에서 영업을 하던 출판영업사원을 통해 구매했다. 아내는 출산 후에 집에만 있었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간다는 것이 걱정되는 시기였다. 누군가 집에 오지 않으면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고, 말도 안 통하고 누워만 있는 아기와 단 둘이 집에 있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딸이 귀엽고 이쁘지만 24시간 이뻐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영업사원이 집에 방문을 했고 말벗이 되어줬다. 자주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누니 아내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그분의 VIP고객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사소한 얘기부터 아이를 키우는 방법 등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웃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렇게 도움을 받다 보니 어느새 전집까지 구매를 했다.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그 당시 한 달 월급에 가까운 돈을 주고 사야 하나라는 고민을 했지만, 그분 덕분에 아내가 즐거워했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었기에 흔쾌히 사기로 했다. 아이한테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안 살 수가 없었다. 초록책장 2개와 전집, 영어 DVD가 총구성품이었다. 열심히 보고 물려줬으니 돈 값은 했다.
지금은 책장을 버렸지만, 한 때 책장을 볼 때마다 수백만 원짜리 책장이라며 장난을 치곤 했다. 아내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힘든 시기에 위로가 되어줬기에 어떤 말을 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육아를 한다는 것은 많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아기가 24시간 귀여울 수가 없다. 연인끼리도 24시간 붙어있으면 싸우는데, 말도 안 통하는 아기는 오죽하겠는가. 아내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인터넷 카페, SNS를 통해 관계를 만들거나 놀이터에서 엄마들과 친해지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아내도 노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핸드폰 게임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거나 내가 빨리 퇴근하기를 바랐다. 통화를 하면 ‘언제 퇴근해’가 단골 멘트였다. 내가 빨리 집에 와서 아이와 놀아주면 그 사이 집 정리도 하고 쉬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나도 최대한 빨리 퇴근해서 아내의 짐을 덜어주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퇴근 후 아이와 놀아주는 것 밖에 없었기에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
아이를 재우면 아내와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멋진 커피 카페를 만드는 아케이드 게임을 같이 했다. 둘이 하니까 공통 주제가 있어 이야기 나누는 것도 편했고 서로 더 멋지게 만들어 보겠다면서 경쟁하며 즐거워했다. 아이가 밖에 나가기에 너무 어리다 보니 최대한 집에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때는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아이한테 신경을 많이 쓰고 아내가 웃게 해 주자는 마음이 강했다. 그렇게 행동한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빌라에 살고 있었는데 바로 윗집이 조리원 동기였다. 신기한 인연 덕분에 아내는 가끔이라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이도 같은 달에 태어났으니 서로 힘든 얘기, 즐거운 얘기 하며 지냈다. 가끔이라도 대화를 한다는 것이 아내에게는 심심한 위로가 되었다. 본인은 자주 본 게 아니라 그 정도는 아니라고 기억하지만 같이 육아하는 동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고 힘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는 첫째가 있어 조리원은 포기했다. 편안함을 포기하고 시댁에서 지내고, 산후도우미도 이용했다. 그 후 아내는 첫째, 둘째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째와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첫째 때보다 수월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육아에 대한 어려움이 전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아내는 첫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기띠에 둘째를 앉고 멀리 있는 어린이집까지 왕복을 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추운 겨울에는 언덕길도 미끄럽고 손도 시렸지만 돌아오는 길에 딸과 붕어빵 먹는 재미도 있었다고 한다. 소소한 즐거움이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육아 휴직 중에 처제가 살고 있는 호주에 다녀왔다. 한국에 있었다면 만나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었을 텐데 가장 가까운 가족마저 타국에 있는 바람에 기회가 없었다. 첫째가 돌일 때 한번, 둘째가 17개월 때 한번, 총 두 번 호주에 갔다. 호주에서 아내는 동생과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도 하고 함께 드라이브, 쇼핑, 식사 등 많은 것을 했다. 처제 일을 도와주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웃으면서 이 기간 동안 육아 스트레스는 잊고 살았다.
아내의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되니 덩달아 나도 긴장을 풀고 여유가 생겼다. 호주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가족만큼 위안을 주고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내가 복직을 하고 내가 아이 둘을 돌보면서, 아내가 혼자 육아하면서 힘들어했을 시간들이 생각났고 그때 조금 더 신경 써주고 도와주지 못한 것은 무엇이 있나 뒤돌아보게 됐다.
매번 잘할 수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항상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 누가 되었던지 혼자 육아를 하고 있다면 남은 한 사람은 육아를 하는 배우자를 위해 매 순간 진심을 다해 도와주면 좋겠다. 배우자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일주일에 몇 시간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행복한 육아가 될 것이다. 가족만큼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관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