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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북쓰 Jan 29. 2022

2.2 같이 웃고 추억하기

남(男) 다른 아빠의 육아 도전기 - 2. 결혼하고 아기가 태어났다.

코로나19로 인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밖을 나갈 때 마스크를 챙기고, 어딘가 들어갈 때마다 열을 체크하고, QR코드를 찍는다. 단체 회식은 줄었고 식당에서 다 함께 밥 먹는 것도 쉽지 않다. 새로운 일들이 당연한 것이 되고 이런 상황들에 적응하고 있다. 한동안 아이들은 학교와 어린이집을 못 가고 온라인으로 대부분의 수업을 들었다. 1년 가까이 코로나19가 진행되었을 때 첫째는 3학년 친구들을 거의 못 만났다. 학교에서 활동이 없으니 추억도 없다. 4학년이 되어서야 학교를 갈 수 있었다. 비록 일주일에 3번밖에 못 갔지만 말이다. 학교에서 즐거운 추억이 많았던 나는 요즘 아이들이 참 안타깝다. 물론 이 또한 추억이 되겠지만 말이다.


결혼을 하면서 새로운 추억들이 생겼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할 일들이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은 결혼식이다. 삼성동에 있는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했다. 예식장은 17층, 식당은 3층인가, 4층인가 그랬다. 예식장을 처음 구경 갔을 때 예식도 멋지고, 높은 위치에서 보이는 경치도 아름다웠다. 분위기에 끌려 바로 계약을 했다. 예식장을 잡을 때는 위치, 예상 하객수, 식사 등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하객수는 부모님 손님까지 포함해야 한다. 우리는 웨딩플래너도 끼고 예식을 준비했는데 예식장을 계약할 때 분위기에 휩쓸린 건지, 무엇 때문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고려사항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결혼식이 끝나고 알게 됐다. 양가 부모님 하객이 정말 많이 온 것이 문제가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7층까지 올라와야 하는데 손님이 몰리면서 30분 넘게 기다렸다고 한다.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간 사람도 있다. 아내의 초등학교 제자들, 내 친구들은 17층을 걸어서 올라왔다. 친척분들은 대부분 전주에 계셨다. 시간 맞춰 도착했는데 엘리베이터를 못 타서 마지막 사진을 못 찍기도 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화가 많이 나셨다. 예식을 포기하고 식사만 하고 간 사람도 많고 식당에도 사람이 많아 그냥 간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이 모든 것은 예식이 끝나고 알게 됐다.


식이 진행될 때 나와 아내는 싱글벙글 즐거웠다. 다른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식이 끝나고 가족 및 친척들 사진을 찍을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폐백 때 절정에 이르렀다. 큰 고모께서 등짝 스매싱을 하면서 누가 여기를 잡았냐고, 어른들 올라오지도 못했다고 말씀하시면서 크게 혼났다. 그때서야 아버지 표정도 눈에 들어오고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집에 있는 결혼식 사진을 보면 큰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분들이 몇 분 안 계시고, 아버지 표정은 일관되게 안 좋으시다. 제일 환하게 웃고 있는 건 나와 아내뿐이다.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한동안 결혼식 얘기만 나오면 나는 대역 죄인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나의 결혼식..

결혼 후에 아내와 둘이 두 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한 번은 신혼여행이고, 다른 한 번은 일본 오사카 여행이다. 그때 다니던 회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계 휴가 제도가 생겼다. 5일의 휴가가 생기면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함께 가는 첫 해외여행이라 설레었다. 일본어를 모르는데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같이 숙소를 잡고 여행할 곳을 찾아보면서 함께라는 것이 실감 났다. 교통편, 맛집, 볼거리 등을 찾아보고 공유하면서 여행을 기다렸다. 신혼여행은 웨딩플래너를 통해 준비하여 숙소, 일정, 볼거리 등 신경 쓸 것이 없었지만 일본 여행은 모든 것을 우리가 준비해야 했기에 더 많은 걱정과 기대가 됐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빨리 결혼하지 않았던 걸 아쉬워했다. 빨리 결혼했으면 많은 시간을 신혼으로 보내면서 여행도 다니고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다.


육아를 하면서 둘만의 시간을 만들 수 없을 때 더욱 안타까웠다. 아이를 키운다고 둘만의 시간이 없어질 거라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여행은 그만큼 즐겁고 행복했다. 저렴한 숙소를 구하느라 시내에서는 꽤 먼 거리에 레지던스 호텔을 잡았다. 30분 이상 걸어야 하는 거리를 라면 먹고 싶다는 일념 하에 걸어서 다녀오기도 했고 식당을 들어가려는데 문을 못 찾아서 헤매기도 했다. 맛있는 치즈케이크를 먹으려고 줄도 서보고 둘이 사진도 많이 찍었다.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서 의지할 곳이라곤 서로에게 기대는 것 밖에 없었기에 더 붙어 다녔고 챙겨줬다. 한 명이 원하면 그것을 위해 다른 한 명은 기꺼이 희생하고 동참했다. 서로를 위해 양보했기 때문에 일본 여행이 더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일본여행에서 줄서서 먹었던 치즈케이크

임신을 하고 떠난 유일한 여행은 ‘태교여행’이다. 태교여행이란 산모들이 임신 중에 마음에 안정도 가지고 이쁘고 아름다운 것을 보며 태교도 하는 일석이조의 여행이다. 새로운 생명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신비롭기도 하지만 두려울 수도 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도 스트레스가 전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행을 다녀왔다. 첫째를 임신하고 아내 몸이 안정기가 되었을 때, 아내가 태교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여행이었다. 태교여행이라는 말 자체도 생소했지만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여행을 끝으로 8년간 단 둘이 여행을 못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해외라도 가면 좋았겠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기에 국내 펜션으로 여행을 떠났다. 강원도에 있는 펜션에 갔다. 특별히 한 것은 없었다. 산책하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여정이었지만 특별한 여행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추억들이 많다. 처제를 만나러 호주도 갔고, 부모님과 여행도 가고, 아이들이 다쳐서 자책도 하고, 혼내기도 하고, 달래주기도 하며, 다 같이 캠핑도 갔다. 매일 만들고 있는 추억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같이 웃고 추억하고 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둘 만의 추억을 만들었다면 첫째를 낳고 셋이 만들고, 둘째를 낳고 넷이 만들고 있는 중이다. 매번 새로운 일상이 펼쳐지고 있다. 내가 육아를 전담하게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나도 몰랐다. 군대에 있을 때는 그 상황이 너무 싫고 힘들었다. 이등병 때 매일 나와 동기를 괴롭히던 선임 때문에 지치고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병장이 되면 내무생활이 편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버텼다. 버틴 만큼 나에게는 큰 보상으로 돌아왔다. 지금 코로나로 힘들고, 육아로 지치고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크면 자연스럽게 육아에서 멀어질 것을 알기에, 아이들이 독립할 때까지는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육아라는 도전을 하고 있고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왕이면 훗날 ‘지금’을 기억할 때 웃었던 기억, 즐거웠던 기억이 더 많으면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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