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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시작

2022년에는

by 유림
<비행기와 펭귄>, Digital Painting, 30 x 20cm, 2022


항상 무엇을 시작할 때면 거창했다. 그림 한 장을 완성하지도 않았는데 난 이미 다음 연작을 생각했고, 카테고리를 묶고, 전시가 끝난 후까지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하다 보면 내 머릿속에 있는 그림과 나 자신은 한없이 멋지고 아름다웠다. 상상 속에 빠진 내 모습과 선 하나도 못 긋고 있는 나를 비교하면 지금 나는 한없이 볼품없고 아무것도 아닌 자꾸 초라한 내가 된다. 그러기를 반복하면 결국 난 내 상상 속에서만 멋진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된다. 무엇을 만들어 내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난 지난날을 돌아보면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제대로 무언가를 만들어 낸 흔적이 없다. 항상 시도는 하지만 결과는 없었다.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아이를 낳은 후로는 그 상상조차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오늘 무엇을 먹을까, 빨래할 때가 되었네, 오늘은 저쪽을 좀 정리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냥 하루가 빛의 속도로 지나가 버린다. 마음 한 편에는 막연하게나마 작업해야지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면서 살지 않았던 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바빴던 일상이 조금 정리된 건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하고 난 후였다. 처음에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하면서 나도 그 생활에 적응이 필요했다. 하원 시간까지 아이 없이 할 수 있는 인터넷 서핑, 요리, 청소, 빨래 이렇게 하다 보면 시간은 빠듯했다. 매일 저것을 다 하는 날은 없었다. 어떤 날은 요리만 어떤 날은 청소만 어떤 날은 빨래만을 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 등원 때 집안일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아이가 있을 때 집안일을 하는 것보다 아이가 없을 때 집안일을 하는 것이 더 수월하다 보니 아이 등원 때 주로 집안일을 하게 되었다. 아이 등원 후 집안일, 잠시 멍 때리기, 그리고 하원하면 정신없이 하루가 마무리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온전히 나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요즘은 아이가 어린이집 가있는 동안 되도록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 아이의 장난감과 옷들로 집안이 어지러워도 그냥 둔다. 때로는 설거지도 쌓아놓을 때도 있다. 아이가 없는 그 시간 동안만이라도 나도 내 것을 하며 나의 미래를 살고자 한다. 시간이 많았던 과거는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거창한 계획은 접어두고 현실적인 계획을 세운다. 다양한 것을 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 중에 순위를 정하고 시간적으로 가능한 만큼 하나 혹은 두 개를 꺼내 '완성'을 해보려 한다. 멋지고 아름다운 상상 속 나는 이제 지우고, 지금 내가 하는 것이 볼품없다 해도 지금 내가 하는 것이 무엇이 될지 모른다 해도 그냥 그렇게 하나씩 완성해보자. 2022년 목표는 '어찌 되었던 완성'이다. 어찌 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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