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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Jan 06. 2022

마흔을 앞두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외래 결과 듣기 전까지 딱 일주일.

<안경>, Digital Painting, 30 x 20cm, 2022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강검진에서 시신경에 이상이 있다는 소견을 듣고, 추가적으로 안과 진료를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크게 걱정할 만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건강검진 결과를 듣고 안과 외래를 받기 전까지 딱 일주일, 마흔을 앞두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였다.


건강 검진 후, 난 직접 의사를 만나 검진 결과를 듣는 방법을 택하였다. 예전에 책자로만 받은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무려 5년 만에 한 건강 검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마흔을 앞두고 나의 몸 상태를 제대로 알고 싶기도 했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책보다는 직접 의사 선생님의 말을 한 번 더 듣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전 검진 결과가 담긴 작은 책자를 받았다.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토로록 책자를 훑어보았다. 맨 첫 장에는 사람 몸이 그려져 있었고, 몸의 부위마다 정상, 주의, 위험한 부분이 표시되어 있었다. 바로 검사를 받아야 하는 위험은 빨간색으로, 단기 추적 관찰하는 주의는 노란색으로, 정상은 파란색으로 색이 칠해져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몇 부분에 노란색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고, 특별한 건 없구나 생각했었다. 다음 장을 넘기자 내 눈을 의심하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녹내장 의심’

‘녹내장? 녹내장이 뭐였더라. 녹내장과 백내장 들어본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떤 거였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사람 몸이 그려져 있는 앞장을 보았다. 눈 부분에 위험을 알리는 빨간색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시력 검사를 받았을 때 한쪽 눈이 더 나빠져 있어서 안경을 맞춰야 하나 생각했지만, 녹내장이라니. 그래서 급격하게 시력이 나빠졌었나 생각하고 있을 때 진료실 문이 열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녹내장 이건 괜찮아요. 그보다 이 부분이 걱정되네요. 오늘이라도 검사받을 수 있으면 빨리 받아보세요.”


건강 검진 결과표를 몇 장 넘기시면서 보여준 안과 소견에는 ‘오른쪽 안구에 유두 부종이 의심됨.’이라고 적혀 있었다. 녹내장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유두 부종?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원인으로는 고혈압, 두부 손상, 뇌종양, 뇌수막염 등이 있으며, 통증은 없지만 가끔 두통과 구토를 유발한다고 한다. 그동안 구토는 없었지만 가끔 두통은 있었고, 통증은 없다지만 검진 결과로 안압 상승, 급격한 시력 저하와 심한 양쪽 시력 차이가 있는 건 사실로 나왔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유두 부종은 눈에 문제가 나타나지만 원인으로는 뇌에 문제가 있는 경우인 듯했다. 의사 선생님은 특별히 뇌에 외상을 입은 경우가 아니라 아닐 가능성이 있지만, 일단 의심이 나왔으니 추가적인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셨다. 난 진료실을 나와 바로 안과 외래진료를 예약했다. 가장 빠른 날이 일주일 후였다.


그날 난 소란스럽지 않게 ‘유두 부종’에 대한 사례들을 읽어보았다. 특별한 통증이 없기 때문에 안과 진료를 받다가 발견된 사람들이 많았고, 의외로 나이가 젊은 사람도 많이 있었다. 어떤 이는 뇌종양으로 판정이 났고, 어떤 이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시력만 점점 나빠갔고, 어떤 이는 일시적으로 그런 것이었다며 괜찮다는 판정도 받았다. 너무 큰 걱정을 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도 안 되는 그런 일주일. 특별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올해 들어 가장 긴 일주일이었다. 외래 당일. 안과 진료소 앞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다. 나이가 젊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님의 보호자로 온 분들이었다. 접수를 하고 간단한 문진과 안과를 가면 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검사를 진행했다. 그러고는 본격적인 검사가 시작됐다. 내가 받아야 하는 검사는 총 7가지. 일반적으로 안과에 가면 하는 시력 검사, 눈에 바람을 쏘는 검사, 녹색 점을 보는 검사와 같은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많은 종류의 기계들이 있었고, 다양한 방법으로 눈을 검사할 수 있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2시간 넘게 진행한 검사는 생각보다 집중력을 요하였고, 눈을 피로하게 했다. 안과 검사는 결과를 바로 볼 수 있어서 인지, 검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 선생님을 볼 수 있었다. 우안의 시신경이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다른 검사를 했을 때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외 여러 가지 다른 설명을 해 주셨고, 확인 차 6개월 뒤 다시 검사를 해보자며 진료를 잡아주셨다. 결론은 크게 걱정할만한 건 아니라고 하셨다. 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진료실 문을 나섰다.


건강 검진 결과를 듣고 안과 외래 진료를 받기 전까지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무서운 말들도 많이 있었기에, '만약 나도'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흔을 앞두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치료가 힘든 질병이라면, 치료를 할 수 있지만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그래서 내가 세상에서 살 수 없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아이는 아마도 남편이 잘 키울 것 같았다. 남편과 부모님은 슬퍼하시겠지만 그럼에도 잘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는 나라는 엄마를 느끼지 못한 채 자라겠지만, 아빠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시니 부족함 없이 자라지 않을까 생각했다. 의외로 가족들에 대한 걱정은 덜하였다. 막연하게나마 나 없이도 잘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난, 죽음이 바로 앞에 있다면 지금 난.


가장 먼저 아이와 남편이 생각났다. 남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왔고, 아이를 만나 그 아이와 붙어 있었던 시간에 감사함을 느꼈다. 만약 내가 아이, 가족이 아닌 다른 걸 우선순위로 했더라면 지금 너무 후회했을 것 같았다. 모든 걸 일 순위로 가족과 함께 했어서 참 다행이었다. 다만 나도 이제 마흔이 되니 앞으로 뜻깊게 잘 살아보자며 하고 싶은 일들을 잔뜩 적어 놓았는데 그걸 하지 못함이 아쉬웠다. 너무 아쉬웠다. 마흔이 되어 계획한 일들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계획들이었다. 이제 아이도 어린이집을 가면서 나 자신의 미래를 위한 계획들을 이제야 시작하기로 했는데,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쉽고 아쉬웠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계획했던 일들은 그 과거에는 할 수 없는 일이고, 내가 앞으로 살아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에 후회보다는 아쉬움이 컸다.


지금은 그 계획들을 온전히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담담하게 눌러있었던 감정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그것이 이렇게나 기쁜 일이었다니. 더불어 가족과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하루를 살면서 스치듯 느끼고 있었던 것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몸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죽음이 가까이 와 있는다 해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과거에도 앞으로도 나에게 가족은 항상 일 순위로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더불어 나 개인을 위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나의 삶은 죽음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마흔이다. 10대에는 대학생과 사회인이 되는 20대를 상상했고, 20대에는 사회인으로 완성되어 있을 30대를 상상했다. 그리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나의 마흔이 다가왔다. 어떤 40대를 살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이상이 컸던 과거보다 점점 하루를 살고 있는 나를 보며, 아마도 40대를 잘 보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녕, 나의 마흔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오늘 하루도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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