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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Feb 25. 2022

우동

취향의 변화

<우동>, Digital Painting, 35 x 27cm, 2022


엄마가 나를 임신하고 있을 때, 국수를 그렇게나 좋아했다고 한다. 평소에 엄마라면 국수를 좋아하지 않지만, 유독 나를 가졌을 때는 국수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가늘고 긴 면을 가진 국수를 좋아한다. 멸치 육수에 먹어도 좋고, 매콤 새콤 달콤한 양념에 비벼 먹어도 좋고, 오징어나 골뱅이를 같이 먹어도 좋은 국수.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휴일 점심 때면 우리 가족은 종종 엄마표 비빔국수를 먹었다. 송송 썬 김치와 고추장 그리고 매실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 후, 잘 삶아진 국수에 양념장을 비벼 오이와 삶은 계란을 넣어 먹으면 된다. 별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맛있다. 신기하게도 내가 똑같은 재료로 해보아도 난 엄마표 맛이 나지 않는다.


나의 가는 면 사랑은 지금도 계속되지만, 요즘 우동이 그 순위를 바꿔 놓았다. 예전에 나라면 정말 쳐다보지 않았던 음식 중 하나이다. 집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었던 국수에 비해 나에게 우동은 밖에서 먹는 음식이었다. 돈가스를 먹을 때나, 휴게소에 들렀을 때나 가끔 먹었지, 메인 요리로 사 먹지 않았다. 그렇게 먹어봤던 우동은 일단 국물이 나에겐 너무 강한 맛이었다. 그래서 우동을 먹을 땐 면만 건져 먹고, 국물은 먹지 않았다. 특히나 내가 먹었던 우동들은 대부분 들어간 재료도 별로 없어서 면 말고는 먹을 게 없었다. 그렇게 우동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닌 걸로 생각하고 살아가던 중 미식가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음식을 좋아한다. 그와 반대로 난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편이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지만, 배고파서 먹는 것이 더 큰 편이다. 하지만 남편은 배고플 때도 배고프지 않을 때도 오늘 먹고 싶은 음식에 진지함이 있다. 그런 남편과 연애하면서 난 음식에 대해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내가 평소라면 먹지 않았을 새로운 음식도 먹어보고, 비싼 음식도 먹어 보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기도 했다. 결혼을 한 지금까지도 남편 덕분에 새로운 맛을 종종 경험하고 있다. 그렇게 남편과 다니면서 난 우동이 맛있는 음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먹었던 우동이 정말 맛이 없던 거였을 뿐, 우동은 정말 맛있는 음식이었다.


후루룩 먹는 국수와 달리 우동은 입안에서 탱탱하게 튕겨지는 면발을 잡아 쫄깃쫄깃한 식감을 느끼며 먹는 재미가 있다. 바삭바삭 잘 튀겨진 여러 종류의 튀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어묵을 함께 먹을 수도 있고, 국물도 진하기만 한 맛이 아닌 깊고 다양한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우동이 맛있는 음식이라는 걸 알았지만,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내가 집에서 우동을 만들어 먹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가끔 집에서 우동을 먹고 싶을 때면 인터넷으로 셰프들이 만든 반조리 우동을 사서 먹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다코야끼를 먹고 싶다며 가쓰오부시를 집에 사다 놓았다. 그러면서 우동 국물을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멸치 육수 내는 것과 별 다르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한번 만들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육수를 낼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는 있었고, 우동 면과 내가 좋아하는 야채인 청경채와 알배추를 샀다. 마침 집에 어묵도 있어서 어묵 우동을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요리하기 전 유튜브로 우동 육수 내는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나에겐 다 어려웠다. 내 마음대로 해석한 우동 육수는 가쓰오부시를 넣는 것이었고, 가쓰오부시를 오래 두면 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점을 유의한 채 멸치국수 만드는 것처럼 내 맘대로 우동을 만들어 보았다.


먼저, 물 500ml 정도에 다시마를 넣어 끓인다. 물이 끓으면 약불로 줄이고 10분 정도 다시마를 넣고 더 끓이다가 다시마를 뺀다. 약불로 줄인 다시물에 가쓰오부시 한 줌 정도를 넣고 2분 정도 끓인다. 2분 후 가쓰오부시를 빼고, 불은 센 불로 바꾼다. 잘 씻고 손질한 청경채, 알배추를 넣고, 길게 썬 어묵도 함께 넣고 끓인다. 이때 우동 면은 설명서대로 끓은 물에 1분 정도 끓인 후, 찬물에 헹궈 그릇에 담가 놓는다. 야채와 어묵을 넣고 끓인 국물에 국간장 한 스푼을 넣고 적당히 끓인 후, 면이 담긴 그릇에 붓는다. 그러면 내 마음대로 만든 어묵 우동 완성이다.


개인적으로 처음 만들어 본 우동은 맛있었다. 그냥 나의 입맛에 딱이었다. 평소에 간을 약하게 먹기에 가끔 반조리 우동을 만들어 먹을 때도 국물 육수가 진하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내가 이렇게 만들어 먹으니 나에게 딱 맞는 우동을 만들 수 있었다. 누구에게는 아주 심심한 우동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딱 적당히 감칠맛 나는 우동이었다. 그리고 직접 만드는 요리의 장점인 취향껏 재료를 넣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무엇보다 집에서 우동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거에 큰 즐거움을 느꼈다. 비록 아이는 먹지 않았지만, 나는 맛있게 먹었다. 다음에도 나의 아이는 먹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또 만들어 줘야지 생각했다.


우동은 내가 좋아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음식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직접 해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 이렇게 변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변하는 것도 많다. 우동 만큼 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출산한 후 달달한 마카롱이나 초콜릿, 캐러멜을 찾아서 먹기도 한다. 예전의 나라면 있어도 잘 먹지 않는 것들인데, 요즘엔 달달한 디저트들을 사다가 집에 구비해 놓는다. 아마도 시간이 더 흐르면 지금 잘 먹지 않는 어떤 음식들이 최애 음식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때는 또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먹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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