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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Feb 18. 2022

아이는 타인이다

나와 밀착된 타인

<흙, 빛, 바람, 물 그리고 관심이 필요한 극락조>, 35 x 27cm, Digital Painting, 2022


엄마가 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되뇌는 시간이 많아졌다. 대부분의 어린 시절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부모님은 나의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고 계시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부모님께 물으며, 지금의 아이와 비슷한 점을 찾기도, 다른 점을 찾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아이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분명 나의 아이인데, 내가 잘 이해하고 있다는 남편의 아이인데, 난 나의 아이가 이해 안 될 때가 종종 있다.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남은 할 수 없지만, 종종 통화하며 지금의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이다. 또한, 이 친구는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통화하면 대부분 육아의 힘듦을 이야기한다. 그러다 각자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너와 내가 그리고 너의 아이와 나의 아이가 무엇이 다른지 말하며 서로를 이해하려 한다. 그 이야기의 끝은 인간은 결코 바뀌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나도 그 친구도 성장하면서 변한 것도 있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 모습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변하지 않는 무엇이 그 친구임을 나임을 다시 알게 된다.


아이도 아이만이 타고난 변하지 않는 고유성이 있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를 딱 반반 닮았는데, 그러면서 엄마도 아빠도 아닌 그 아이만의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만의 고유성은 엄마와 아빠와 다르기 때문에 주양육자인 난 이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관찰하며 그 아이만의 고유성을 파악하려 한다. 그 고유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나면 이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더 잘 이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점이 발견되면 나는 걱정되고, 이것이 문제가 되어 사회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아이의 고유성이 친구의 고유성과 많이 닮아있었다. 내가 걱정스러운 아이의 어떤 점을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오히려 그 친구는 문제 될 것이 없다며 나를 이해시켜 주었다. 친구는 아마도 아이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거고, 이런 건 이래서 그랬을 거야 하며 말해준다. 내가 정말 이해되지 않고 걱정했던 아이의 어떤 부분들이 친구가 들었을 땐 전혀 문제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친구는 나의 아이와 비슷한 고유성을 갖고 있었기에, 나와 생각하는 출발점이 달랐고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나의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친구는 그런 고유성이 자신이 성장하면서 어떻게 작용했고, 어떤 영항을 받았으며, 그래서 양육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하면 좋은지 등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나의 아이가 그 친구가 아님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 친구의 이야기는 나의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자랄 수도 있겠구나 예상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사실 난 아이와의 관계를 자신했다. 나는 나의 아이를 관찰하며, 나의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어릴 적 아이는 내가 예상하는 범위 내에서 행동했고, 그런 모습을 보고 난 역시 나와 아이는 합이 잘 맞는다며 앞으로도 함께 지내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오만이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 내가 모르는 부분을 발견할 때도 있는데, 내가 타인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다니. 말도 안 된다. 아이는 주양육자인 나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만, 아빠, 아빠의 가족, 엄마의 가족과도 관계를 맺고,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관계를 통해 어떤 부분 영향을 받고 있을 것이다. 나와 생각의 출발점이 다른 아이는 그렇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생각하며 아이는 자라고 있다. 앞으로 아이는 커감에 따라 영향받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달라질 것이고, 영향받는 정도도 크게 다를 것이다. 아이도 주변의 것에 영향을 주기도 받기도 하면서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그 아이임을 나타내 줄 것이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는 어느새 내가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아져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모르는 부분이 많은 아이가 나의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아이는 타인이다. 이미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태어난 아이는 정말 모든 부분을 나와 공유했다. 다만 그 시간에 무뎌지면서 난 내가 아이를 아주 잘 알고 있고, 내가 아이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자식은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건 사실이고, 특히 어린 시절에는 더더욱 그러하니까. 하지만 성장해 온 나를 돌아보면, 부모님에게서 받은 영향도 있지만, 부모님 외에 선생님, 친구, 사회 사람들,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까지도 많은 영향을 받으며 나를 만들어 갔다. 아직 많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이지만, 아이는 이미 자신만의 시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는 한 인간이다. 이를 알고 존중해 주어야지 하지만, 쉽지 않다. 그렇기에 노력하려 한다.


나의 아이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탐구하는지 최대한 알고자 노력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좋은 주변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노력하려 한다. 아이는 타인이지만, 그냥 타인이 아닌 나의 아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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