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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Mar 31. 2022

패드와 탭

누군가의 익숙함, 누군가의 불편함

<아이패드>, Digital Painting, 35 x 27cm, 2022


내가 출산 후 정신없는 일상만을 보내며 우울해하고 있을 때, 남편이 아이패드를 권유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회화 작가의 모습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난 어릴 적부터 아주 큰 캔버스에 물감을 잔뜩 갖다 놓고 그림을 그리는 나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직 난 먼지가 덕지덕지 붙은 물감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켜켜이 쌓여 있는 재료들은 집이 아닌 작업실에 있었다. 작업실이 집 근처에 있긴 했지만, 24시간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일상에서 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금만 개인 시간이 날 때면 그저 방바닥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 아이와 함께하는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나도 이제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잠을 자는 아이만 두고 집을 나설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작은 집에 작업 공간을 마련하는 건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이 아이패드를 권유한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구입하게 된 아이패드는 내가 왜 고민을 했을까 할 정도로 나에게 너무 좋은 물건이었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짬 시간, 더불어 체력이 남아있을 때, 잠깐 그림이라는 것을 그릴 수 있었다. 그 그림이 어떤 그림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패드는 아이가 자면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아이가 깨면 바로 덮고 아이에게 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렇게 아이패드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그림뿐 아니라 다양한 어플을 알게 되었고, 나는 남편에게 너무 좋은 물건인 것 같다며 남편도 하나 들이자고 권했다.


내가 아이패드를 권할 때 남편은 만약 산다면 탭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이 탭을 사게 되면 내가 겪어서 좋았던 것들을 함께 공유하기 어려웠기에 난 적극적으로 아이패드를 권했다. 옆에서 계속 추천하는 통해 남편은 얼마나 좋길래 하며 아이패드를 구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강력한 추천으로 산 남편의 아이패드. 지금은 다른 이에게 넘겨주었다. 나에게 엄청나게 좋았던 물건은 남편에게 다가가기 어렵고 불편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아이폰만 써왔던 나와 달리, 갤럭시만 써오던 남편에게 아이패드는 익숙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에겐 쉽게 열어 볼 수 있는 물건이지만, 남편은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그것을 배워야 할 만큼 시간 그리고 동기도 없었고, 뭐 하나 하려 해도 불편했기에 손이 잘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횟수가 줄어들다 이 물건이 더 필요한 다른 이에게 넘겨주었다.


최근 아이에게 조금씩 영상 노출을 해주면서 핸드폰보다  화면이 필요했다. 티브이가 없는 우리는 이제 와서 티브이를 사는 것보다는 탭이나 패드를 생각했다. 패드와 ,   고민을 했지만, 아이들용으로는 탭을 많이 사용한다는 리뷰를 보고 탭을 구입하게 되었다. 탭으로 아이에게 주로 보여주는 영상은 호비였다. 내가 저녁을 하는  시간에 호비를 보여주며 시간을 보내는데, 이날은 처음 탭으로 호비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패드에 익숙해져 있던  탭을  순간 버벅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사실 패드나 탭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익숙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생각보다  차이가 있었다. 한참을 버벅거리며 아이에게 겨우 영상을 틀어주었다.


한번 불편함을 겪은  최대한 탭을 건드리지 않았다. 가끔 적막한 집에 혼자 있다가 탭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도 퇴근한 남편에게 맡기게 되었다.  새로움을 익숙하게 만들어야  만큼 그 물건이 나에게 필요가 없었고,  그저 아이에게 정해진 영상만  틀어주면  뿐이었다. 그러면서 이전 남편에게 패드를 권했던 내가 미안해졌다.  내가 너무나 좋았던 것이기에 당연히 남편도 좋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의 좋음을 공유하는 것에만 들떠 남편이 정작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모든 물건은 그런  같다. 누가 너무 좋다고 사용한 육아 용품들, 정작 사용해 보면 나에게 좋은 것은 손에 꼽는다. 내가 사용해 보고 좋다는 것들 역시 다른 이에게 추천해 줘도 그들은 나만큼 좋지 않았던 경우도 많다.


  사건을 계기로 내가 사용해보거나 겪어서 좋았던 것들을 타인에게 ...으로 추천하지 않기로 했다. 누가 물으면 그냥  좋음을 이야기해  . 결국, 판단은 그들의 몫이다. 반대로 누가 나에게 좋음을 얘기해 주어도 나의 상황에 맞게 한번 더 생각해 보고자 한다. 상대가 느꼈던 좋음이 정말 나에게도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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