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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쉬의 인사이트 May 11. 2021

평온이 깃든 공간을 짓는 건축가.
마리오 보타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 1943~)는 직육면체와 역원추형이 결합한 형태의 리움미술관 1관, 서울 강남 교보타워 설계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건축 언어는 고전의 규범에 충실하고 모더니즘의 합리적 해결 방식을 존중하며 지역성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빛과 중력을 통해 건축물을 해석하고 변화하는 계절과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도시와의 조화를 꾀한다.


스위스 멘드리시오 출생으로 15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스위스 남부 티치노주 루가노 건축사무소에서 견습생으로 일했다. 루가노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80여 km 떨어진 이탈리아권 도시이다. 이후 밀라노 예술학교와 크로르뷔지에 작품을 연구하는 베니스연구학회 회원을 거쳐 파리 르코르뷔지에 스튜디오에서 일했다. 1969년 베니스 건축 대학을 벗어나 베니스에서 루이스 칸을 사사하며 의회 건축물 전시 프로젝트와 콩그레시 궁전 작업에 참여했다. 이후 루가노로 돌아가 건축사무소를 개설한 때부터 주택을 설계하며 명성을 쌓아 갔다.


고향 멘드리시오에 지은 리고르네토 하우스(house at ligornetto 1976)는 3개 층의 직육면체 박스로 구성돼 있다. 지역 로마네스크 양식을 연상시키는 적색과 허연 회색의 수평 줄무늬의 외관과 스승 스카르파 건축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입면 구성은 보타 건축의 전형적 특징이 된다. 외피는 콘크리트블록(CMU. Concrete Masory Unit) 조적조(組積造)를 사용한다. 선택된 풍경만 조망할 수 있게 깎아낸 개구부(cut-out opening)를 도입한다. 방으로 들어가면 외부와 차단된 '다른 세계'를 만들려고 한다. 보타 스타일이 확립되기 시작한다.

2003년 준공한 교보생명 강남사옥인 교보타워는 좌우 대칭 구조에 벽돌 재질 외관이다. 단단한(hard) 느낌이다. 도시 대형 건축물 대부분 외관이 유리 재질인 점과 대비돼 보타 특유의 스타일을 표현한다. 강남대로 쪽 정면에는 창이 나 있지 않다. 단단함은 건축주의 취향과도 관련이 있다. 광화문 교보 사옥(1980) 또한 그렇다. 교보 창업주 고 신용호 회장은 일본의 주미대사관을 설계한 시저펠리(Cesar Pelli 1926~2019)에게 의뢰했다. 이후 전국의 교보 사옥은 광화문 사옥 디자인과 똑같이 지어진다. 1993년부터 설계 및 모형 작업을 시작한 보타는 시저펠리와의 차별도 고민한 듯하다.


보타는 가톨릭뿐 아니라 유대교, 이슬람교에 이르는 광범위한 종교 건축물로 지평을 넓혔다. 종교 건축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성장 및 교육 관정에서 싹텄다. 가톨릭 학교에서 공부했고, 성당 사제관에서 봉사한 복사(사동)이기도 하다. 그의 생애 첫 작품은 스위스 제네스트레리오의 사제관이다. 보타는 가톨릭이 쇠퇴해 가는 유럽에서 많은 가톨릭 성당으로 프랑스 파리 근교 에브리(Evry), 이탈리아 토리노의 산토 볼토(Santo Volto), 베르가모의 요한 23세, 포르데노네의 베아토 오도리코(Beato Odorico), 스위스 티치노 몬뇨 마을의 성 지오반니 바티스타, 스위스 타마로 산타 마리아 엘리 성당을 설계했다.


보타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현대 조각가인 줄리아노 반지(Girliano Vangi 1931~)를 파트너로 삼았다. 반지는 보타에게 "(자신이 작업한) 모든 그림을 피에트라 산타로 가져갈 것"이라고 말한다. '성스러운 돌'이란 뜻의 피에트라 산타(Pietra Santa)는 이탈리아 중서부 토스카나주 해변 도시로 인근에 있는 유럽 최대 산지인 카라라(Carrara)의 대리석을 가져와 가공한다. 반지의 작품은 대성당의 피날레를 장식할 것이다. 유럽 가톨릭의 역사가 2만여 명의 순교자를 낸 이 땅에 성당과 성상으로 구현되는 셈이다. 보타는 로마에서 기원된 원형극장(Amphith eatre)과 교회건축 형식의 기조를 이룬 집회장으로 쓰였던 바실리카(basilica)의 전통을 되살리려 한 듯하다.

외관으로는 제대 위로 40m가량 솟아오른 두 개의 탑은 빛을 내부로 끌어들인다. 두 개의 탑에 만들어진 천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내부에서 합쳐지면서 큰 빛의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성당의 중심인 제대를 밝힌다. 보타는 설계 의도를 인터뷰에서 밝혔다. "두 타워를 떼어 높은 것은 남쪽에서 빛이 타워 사이에 난 공간을 통해 빛의 살이 전체 계곡을 비춰 나침판의 바늘처럼 보이는 효과를 준다." 마리오 보타는 영성과는 멀어 보이는 세속 사회에서 성지가 필요한 것은 신비롭다고 말한다. 영성과 세속의 순환은 인간 삶의 운명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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