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쉬의 인사이트 May 11. 2021

접시 위의 예술.
미쉐린 별이 빛나는 도시

사진=노마

미식의 불모지가 '미쉐린 별'이 빛나는 도시가 되기까지 북유럽서 나는 재료 본래 맛을 살린 '뉴 노르딕 퀴진'이 있었다. 순수하고 조화로우며 절제된 맛으로 예술작품에 가까운 요리를 선보인다. 프랑스, 이탈리아의 화려함과 달리 미니멀리즘 강조된 북유럽의 디자인은 그들의 음식과 닮은꼴이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는 2010, 2011, 2012, 2014년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리스트에서 1위를 4번 차지한 노마(NOMA)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미식의 불모지였던 덴마크에 '뉴 노르딕 퀴진' 트렌드를 만들어 전 세계의 미식가들을 불러들이면서 덴마크의 관광산업은 물론 농업, 어업, 낙농업까지 성장시킨 곳이다. 오너 셰프인 르네 레드제피는 2012년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혔고, '뉴요커'의 표현에 따르면 "햄릿 이래로 가장 유명한 덴마크인"이 되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는 노마를 비롯해 미쉐린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 17곳이나 된다(2019년 기준). '미식 도시'가 발전하는 데는 3가지 핵심 조건이 필요해 보였다. 자연환경에서 나오는 풍부한 식재료, 여러 문화권에서 온 식재료와 사람들이 섞이며 융합될 수 있는 역사와 문화, 왕족 귀족들이 만든 미식전통 혹은 현재 가처분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먹고 마시며 즐기는 문화이다.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유럽 국가로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북유럽은 겨울이 일 년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식재료가 빈약하고, 서유럽이나 남유럽처럼 사람과 문화가 다양하게 섞이지도 않았다. 북유럽 사람들은 검소하고 소탈한 라이프스타일로 유명하지만,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인들처럼 먹고 마시는 것에 목숨 건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사진=제라늄

코펜하겐의 레스토랑, 제라늄(Geranium)은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순위가 2013년 45위에서 2019년 5위까지 뛰어오른 혜성 같은 곳이다. 미쉐린 스타는 노마가 2스타인 반명 제라늄은 3스타다. 미쉐린 3스타(2016년)를 받은 최초의 노르딕 레스토랑이자 덴마크 유일의 레스토랑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제라늄이야말로 더욱 가볼 만해 보인다. 미식가 중에서 제라늄을 추천하는 이가 더 많았다.


제라늄은 국립경기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8층 건물에 위치해 있다. 소박하지만 환한 정사각형 공간에는 테이블 몇 개가 한눈에 보이도록 놓여 있고, 제일 안쪽에는 오픈 키친이 펼쳐져 있다. 고기가 숙성되고 있는 재료실을 포함한 셰프 라스무스 코포에드와 직원들이 쾌활하게 웃고 떠들며 요리를 하고 있다. 흰 테이블보 위에 놓여 있는 봉투에 담긴 편지에는 "저희 미식의 우주에 여행 오신 것을 환영한다. 이제 당신은 채소, 허브 그리고 이 작은 나라를 둘러싼 빛나는 바다에서 나온 생선, 조개에 엄청난 열정을 가진 주방으로 들어갈 것이다." 편지에는 이 모든 요리가 환경보호를 위해 생명역동농법으로 키운 유기농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고 쓰여 있었다.


사진=제라늄

"먹읍시다. 마십시다. 웃읍시다. 춤춥시다." 초대하는 문구는 멋있었지만. 그 바로 아래에 쓰여 있는 가격 때문에 웃을 수가 없었다. 애피타이저 5가지, 요리 7가지, 디저트 4가지, 스위츠(sweets, 사탕 등 단 과자류) 2가지 등 총 18가지 요리로 구성된 '제라늄 여름 우주' 코스는 2500크로네(약 43만 원)이고, 와인 페어린 코스 3종류는 각각 1400~4200크로네(약 24만~72만 원)이다. 와인 전통도 없는 나라에서 음식값보다 비싼 와인을 마시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쉐린 가이드북에 의하면, 제라늄은 최상급의 유기농 식재료를 특별하게 관리하여 순수하고 조화로우며 기술적으로도 노련한 요리를 창조한다.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홈페이지는 "먹을 수 있는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작은 꽃과 허브들이 촘촘하게 들어간 요리들은 보면 볼수록 북유럽의 자연이라는 공간과 여름이라는 시간이 담긴 '예술 작품'에 가까웠다.


사진=노마

전 세계에 새로운 미식 유행을 전파한 뉴 노르딕 퀴진은 2004년 코펜하겐에 막 오픈한 노마의 두 셰프인 르네 레드제피와 클라우드 마이어의 주도하에 노르딕 국가들의 셰프와 음식 전문가들이 코펜하겐에 모이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이 그해 발표한 '뉴 노르딕 음식 선언' 10개 조항에는 오늘날 그들이 추구하고 음식으로 표현하려는 핵심 철학이 담겨 있다. 함께 음미할 만한 내용이라 소개한다.


"순수함, 신선함, 그리고 우리의 지역에서 함께하고픈 윤리를 표현할 것, 우리가 만드는 식사에 계절의 변화를 반영할 것, 우리의 기후와 땅, 물의 특성에서 나온 식재료에 기반한 요리를 중심으로 할 것, 건강과 웰빙에 대한 현대적 지식과 좋은 맛에 대한 요구를 결합할 것, 노르딕 생산물과 그 생산자들의 다양성을 진작시키고 그 밑에 깔린 문화를 퍼뜨릴 것. 우리 바다와 농장, 야생에서 동물복지와 건전한 생산 과정을 촉진할 것. 전통적인 노르딕 음식의 새로운 의미를 발전시킬 것. 외국에서 온 자극을 최고의 노르딕 음식전통과 결합시킬 것. 지역적인 자족감을 높은 품질의 지역적 재료를 나누는 것과 결합시킬 것. 노르딕 국가에 사는 모든 사람을 위해 소비자, 요리 장인, 농업, 어업, 음식 소매와 도매 산업 종사자, 연구자, 교사, 정치인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권위자들과 힘을 합칠 것."


사진=노마

지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보편성을 추구하는 철학은 한국의 '신토불이'구호와도 통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노마의 르네 레드제피는 스페인 엘불리(El Bulli)와 미국의 프렌치 론드리(French Laundry) 등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그는 식당을 오픈한 뒤 1년 만에 그때까지 배워온 것에서 떠나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 후 푸아그라, 캐비어, 올리브 오일, 레몬 등 북유럽에서 나지 않는 재료는 쓰지 않았다. 대신 살아있는 개미, 숲속의 이끼와 길가의 꽃잎 등을 채집해서 내놨다. 두 셰프 모두 프랑스 요리로 탄탄한 기본기를 쌓았기 때문에 '나와 우리의 요리는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두 셰프 모두 다른 나라의 요리를 공부했는데, 르네 레드제피는 팀 전체가 두세 달씩 일본, 멕시코, 호주로 옮겨다니며 팝업 레스토랑을 열기까지 했다. 그러다 노마의 성공이 10년 넘게 이어지자 관성이 창조성을 죽인다면서 식당을 닫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전 세계를 돌며 현지의 풍부한 식재료를 다뤄보고, 현지인들과 상호작용하다보니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노마

프랑스, 이탈리아의 화려한 인테리어와 달리 시크함, 미니멀리즘, 실용성을 강조하는 북유럽 디자인과 요리는 닮은꼴이었다. 이런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물건들을 써온 사람들은 음식도 예술적인 디자인을 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뉴 노르딕 레스토랑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높은 이들의 문화 수준에 기반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새로운 미식문화의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코펜하겐의 뉴 노르딕 식당들을 방문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뉴 노르딕 음식이 지금껏 익숙한 미식과 다르다 해도, 너무 비싸다 해도 말이다.



제라늄(Geranium)
장소 per henrik lings allé 4 8. sal 2100 københavn denmark


노마(noma)
장소 refshalevej 96 1432 københavn k denmark

작가의 이전글 운명을 바꾼 프로젝트. 공중목욕탕의 변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