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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쉬의 인사이트 Jun 21. 2021

꿈에서의 변화가 현실에서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가

영화 <인셉션>

<인셉션>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심리학 서적이기도 하다. 욕망, 무의식, 트라우마, 자가 치유 등 다양한 층위의 심리학적 개념들이 영화 전반에 위화감 없이 녹아든다. 정신분석학자 맹정현에 따르면 말(기억)은 하나의 장막이어서 충격적인 현실을 감추려고 하면 그 현실의 흔적이 남도록 한다. 잊기 위해 장막을 치는 순간, 쳐진 장막이 되려 잊고자 했던 것을 연상시키는 매개체로 작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코드가 제시한 해결책은 꿈을 최대한 정교하게 설계하고 가능한 긍정적인 감정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부정적이고 의심스러운 것은 항상 반발 심리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코끼리 우화에 대한 우려가 코브가 답변으로 해소됐다면 최종적으로 '꿈에서의 변화가 현실에서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와 관련해 심리학자 로잘린드 카트라이트가 진행한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카트라이트는 이혼 후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략 1년에 걸쳐 '꿈에 대한 내용, 기분'과 '이혼 이후의 정서'를 지속적으로 기록하게 했다. 두 항목의 기록지를 종합한 결과, 우울증을 극복한 실험자들의 절반은 배우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들이 긍정적으로 봉합된 꿈을 꿨으며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한 실험자들은 실험이 끝날 때까지 여전히 배우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이 점철된 꿈을 꾼 것으로 밝혀졌다.


카트라이트의 실험은 꿈의 정서와 현실의 행동이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인간의 정신세계는 이와 같은 무수한 톱니바퀴로 작동하는 셈이다. 이때, 톱니바퀴가 돌아갈 수 있도록 에너지를 공급하는 연료가 '무의식'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프로이트는 '꿈은 무의식으로 향하는 왕도'라고 말했다. <인셉션>에서 역시, 꿈의 세계는 놀란 감독이 무의식의 영역을 탐구하기 위해 소모하는 하나의 과정으로써만 존재한다. 무의식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진정한 우리 자신이다. 현실 속에서 억압당한 경험들은 무의식에 숨었다가 의식이 느슨해지는 꿈속에서 슬그머니 나타나 억제된 감정을 하소연한다.


<인셉션>은 이러한 무의식을 조작함으로써 성립된다. 대상의 무의식 일부를 변화시키면 그 변화가 마치 연쇄 작용처럼 꿈을 거쳐 현실에서의 행동 역시 바꿀 수 있다는 원리다. <인셉션>에는 크게 두 종류의 무의식이 등장한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코브의 무의식'과 '인정 욕구에 시달리는 피셔의 무의식'이다. 놀란 감독은 이들의 무의식을 이제는 하나의 공식이 돼버린 저명한 정신분석학 이론들을 토대로 분석하고 해석한다. '무의식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우리를 조종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인셉션>은 비로소 시작된다. <인셉션>은 결국, 이러한 질문에 대한 놀란 감독의 대답인 셈이다.


프로이트는 트라우마를 '자아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 흥분, 긴장이 나타났을 때 발생하는 충격'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실수로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눈 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코브는 죄책감과 공포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두려움의 유무를 떠나 이처럼 만남이 성취될 수 없는 존재를 맞닥뜨리는 것도 악몽의 한 측면에서 규정한다는 것이다. <자크 라캉 세미나>에는 이와 관련된 일화가 소개돼있다. 갓난아기가 아버지를 울면서 불렀지만 아버지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당시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아버지라는 존재는 '접근이 제한된, 그래서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대상'으로 각인된다. 이 일화는 이후에는 아버지가 아이에게 다가가도 아이는 곧장 잠이 들어버렸다는 내용으로 결론을 맺는다.


현실에서 극복되지 못하고 무의식의 세계로 유입된 경험이나 생각은 끊임없이 해결되기를 갈망하며 우리의 마음속에 불안을 조장한다. 고통이 신체의 생존 본능에서 비롯되듯, 불안은 정신의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다. 불안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정신은 머지않아 붕괴될 수밖에 없다. 코브의 무의식으로 만들어진 맬은 끊임없이 그를 찾아와 불안하게 만든다. 맬은 때로는 행복했던 과거의 모습으로 때로는 자살하기 직전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코브가 극복하지 못한 그리움, 죄책감, 원망 따위의 감정을 환기시킨다. 맬과의 만남은 코브에게 일종의 악몽으로 작용하지만 동시에 그의 정신 붕괴를 막기 위한 무의식의 '방어 기제'이기도 하다.


맬을 방어 기제로 작동하는 무의식으로만 단정 지어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무의식의 다른 측면을 봐야 한다. 무의식은 타인에게는 드러내고 싶지 않고, 자신에게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욕망의 총체다. 본질적으로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구성요건이다. 실제로 꿈에서 느껴지는 정서의 80%는 부정적이다. 무의식으로부터 파생된 맬의 존재 역시, 코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식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코브가 지향하는 긍정저인 이상향(의식의 세계)이라고 할 때, 맬은 계속해서 코브에게 자신이 속한 세계인 림보에서 그가 청혼할 때 했던 말처럼 영원히 함께하자고 유혹(무의식의 세계)함으로써 코브의 이상향과 대치되는 이상향을 제시한다.


무의식은 발화될 수 없는 우리의 욕망을 대변한다. 그렇기에 맬은 유혹은 결국, 무의식의 세계에서나마 맬과 함께함으로써 그리움과 죄책감을 해소하고자 하는 코브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자 애니 로저스는 "무의식은 들여보내 달라고 보채고, 되풀이하고, 말 그대로 문을 두드려 부숴버린다"라고 말했다. 무의식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호시탐탐 우리의 의식을 장악할 기회만을 노린다. 트라우마는 끊임없이 우리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과 대면하게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무의식과의 접촉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극렬한 트라우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코브에게 의식에 영역에 남을지, 무의식의 영역에 남을지 선택을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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