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해 보이는 삶 뒤에는 설거지감이 쌓여있다.

[나의 부엌] 닫힌 문과, 열린 틈 사이

by 기록가 레이

인스타그램 속 타인의 삶은 언제나 매끄럽다. 잘 정돈된 화이트 톤의 주방, 각 맞춰 정리된 냉장고 속, 우아하게 차려진 브런치. 그 네모난 프레임 안에서 삶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나의 부엌은 정반대였다. 낡은 황토색 상부장은 둔탁했고, 싱크대 위에는 언제나 물기가 마를 새가 없었다. 처음 이 부엌을 디지털 캔버스로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의 무의식은 본능적으로 ‘미화(美化)’ 작업을 시작했다. 삐뚤어진 문짝의 선을 반듯하게 펴고, 타일의 묵은 때를 지우고, 나와 있는 잡동사니들을 그림 속 수납장 안으로 쓸어 넣었다.


완성된 그림은 예뻤다. 하지만 낯설었다. 그것은 ‘나의 부엌’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부엌의 페르소나(Persona)'였다.



그림처럼 아름답고 싶었던 욕망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진짜 모습이 궁금해졌다.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굳게 닫아두었던 상부장의 문을 열었다. 아니, 뜯어냈다.


그 안에는 나의 진짜 삶이 복작거리고 있었다. 짝이 맞지 않는 머그컵들, 언젠가 사은품으로 받은 플라스틱 물병, 빵봉지를 뜯고 나온 빵끈들, 그리고 배달 음식 용기들까지.


왼쪽에서 바라본 부엌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잘 차려입은 외출복’이라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마주한 부엌 안쪽은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나의 민낯’이었다.


렌티큘러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니, 이 두 가지 모습이 하나의 액자 안에서 공존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왼편에 서 있을 때 부엌은 침묵을 지키며 단정하게 서 있지만, 당신이 걸음을 옮겨 중앙을 지나 오른쪽으로 향하는 순간, 부엌은 참았던 숨을 토해내듯 감춰둔 속사정을 쏟아낸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평온해 보이는 누군가의 일상도, 그 각도를 조금만 달리해 들여다보면 치열한 생존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가 물밑으로는 치열하게 발버둥 치고 있듯이, 완벽해 보이는 식탁 뒤에는 언제나 치워야 할 설거지감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법이다.


나의 낡고 부끄러웠던 부엌을 기록하며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닫힌 문짝의 깔끔함도, 열린 문틈 사이의 무질서함도 모두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쌓여있는 설거지감은 우리가 오늘도 열심히 먹고살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니까. 그 복작거리는 지저분함이, 그림처럼 매끈한 가짜보다 훨씬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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