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닫던 누나가 부엌을 활짝 열었을 때

[누나의 부엌] 내 공간이 생겼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들

by 기록가 레이

솔직히 말하면, 나는 누나의 살림을 믿지 않았다.

결혼 전 본가에서 함께 살 때, 누나의 방문을 열면 언제나 한숨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벗어둔 옷무덤이 의자 위에 산맥을 이루고, 책상 위엔 마시다 만 물컵들이 화석처럼 놓여있던 풍경. 어머니의 잔소리와 등짝 스매싱이 일상이었던, 그 게으르고 정리 못 하던 사람이 바로 내 누나였다.


그래서 누나가 결혼하고 아이 둘(4살, 2살)을 키우는 집에 초대받았을 때, 나는 당연히 '전쟁터'를 예상했다. 그 게으른 성격에 육아까지 더해졌으니 오죽할까 싶었다.

하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렌티큘러의 왼쪽 시선은 '놀라운 반전'이다.

화이트 톤의 상부장, 잡동사니 하나 없이 말끔하게 비워진 조리대. 4살과 2살, 에너지 넘치는 아들 둘이 사는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갈하고 예쁜 풍경이다. "이게 정말 누나네 집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겨 문을 열어보면(Zoom-in), 그 놀라움은 '경이로움'으로 바뀐다.

보여주기식 청소가 아니다. 상부장을 열면 그릇들은 크기와 용도별로 '칼각'을 맞춰 정렬되어 있고, 하부장 서랍 속 양념통에는 직접 뽑은 라벨지가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 있다.

심지어 아이들의 알록달록한 식기조차 색깔별로 분류되어 '통제된 질서' 안에 들어가 있다.


과거의 그 게으른 딸은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가 그토록 치우라고 소리쳐도 꿈쩍 않던 사람이, 왜 지금은 시키지 않아도 쓸고 닦고 꾸미는 걸까.

그 이유는 단 하나, '내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모님 댁에서의 누나는 그저 얹혀사는 '구성원'이었기에 공간에 대한 애착도, 책임감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자신이 벽지를 고르고, 식탁을 사고, 그릇을 채워 넣은 온전한 '자신의 영토'다.


누나에게 부엌은 단순한 가사 노동의 현장이 아니었다.

작업 후, 육아 후, 유일하게 자신의 취향을 증명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우주였다. 4살, 2살 아이들이 어지르는 혼돈 속에서도 꿋꿋하게 예쁜 꽃병을 놓고 줄을 맞추는 행위는,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노력이었다.

작품 속 렌티큘러가 움직일 때마다, 과거의 너저분했던 기억은 사라지고 단정하고 야무진 현재의 누나가 겹쳐 보인다.


사람은 변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책임질 공간을 만났을 때, 숨겨져 있던 능력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

그 깔끔하고 예쁜 부엌은 누나가 어른이 되었다는, 그리고 이 집의 진짜 주인이라는 가장 우아한 증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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